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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복지로 푼다??? 복지에 앞서서 생각할 문제들---

장백산-1 2011. 7.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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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복지로 푼다?
복지에 앞서 생각할 문제들
2011년 07월 14일 (목) 00:59:02 김병준(前참여정부정책실장) webmaster@socialdesign.kr

노무현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김병준 기념강연 제5강

   
 
‘난쏘공,’ 그 강력한 메시지

1970년대 말, 그러니까 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땅’ ‘죽은 땅’ 이야기였죠.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듣고 또 듣고 해서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지금도 그 안의 몇 구절은 그 때의 감정 그대로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제 가슴을 때렸던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건너 편 동네 3층집 가정교사인 지섭이 난장이에게 묻습니다. 딱한 심정으로 말이죠.......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합니다.”

 

또 한 장면. 난장이 가족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철거반원이 들이닥쳐 집을 부수죠. 그 때 지섭이 나섭니다. 그리고 철거를 지휘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난장이의 먼 조상부터 남의 집 종이나 머슴으로 살았다는 이야기이죠.

   
 

이런 판잣집 하다도 가지지 못한 채 말이죠. 그리고 그 집이 다시 부숴 집니다. 얼마의 세월이 걸려 이런 집을 다시 지을지 모르는 거죠.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이 낮은 상태에서 계층이동이 불가능 했고, 또 지금도 여전히 불가능 하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일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까지 해도 잘 살 수 없는 사회. 한 번 잘못되면 자신은 물론 자식과 손자ㆍ손녀까지 대를 물려가며 못살게 되는 사회. 이런 사회를 온전한 사회라 할 수 없죠. 조세희 선생의 표현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땅은 ‘죽은 땅’이 되고 ‘썩은 땅’이 됩니다.

 

‘죽은 땅’이나 ‘썩은 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살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행동을 할까요? 경제학자 허시먼(Albert Hirschman)은 상품이나 정책, 그리고 소속한 조직 등에 대해 사람들은 통상 세 가지 유형의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또 참고 순종하며 살거나(loyalty), 목소리를 내고 불만을 표출하며 저항하거나(voice), 못 참고 떠나거나(exit) 한다는 거죠.

 

조세희 선생이 보여주는 답은 두 가지입니다. 아마 허쉬먼도 같은 답을 했겠습니다만....... 하나는 떠나는 겁니다(exit). 난장이는 ‘썩지 않은 땅,’ 달나라로 떠납니다. 굴뚝 맨 꼭대기에서 달나라로 가는 쇠공을 쏘아 올리며 말이죠. “Exit.......” 떨어져 죽은 겁니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주검을 들쳐 업고 나오는 큰 아들과 그 옆에서 울며 따라오는 딸의 대화를 통해 제시됩니다. “울지 마, 영희야.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큰 오빠는 화도 안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Voice........" 죽여 버리는 겁니다.

 

죽거나 죽여 버려라! 20대 후반의 젊은 시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강력한 메시지를 어떻게 지워야 할 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세희 선생이 설정한 상황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아니다. 선생이 잘못 보셨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누구든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사회다. 정주영 회장 같은 사람을 봐라. 소 한 마리 몰고 나와 이 나라 최고의 재벌이 되지 않았느냐? 이 나라는 결코 ‘죽은 땅’이 아니다.”

 

그러나 조세희 선생의 메시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살아 있었죠. 세월이 가면서 오히려 점점 더 새롭게 닥아 오기도 했죠. 최근에는 더욱 그러고요. 보십시오. 양극화로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고, 사회안전망이 약한 가운데 한번 패자는 대를 물려가며 패자가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높은 사교육비에 비싼 등록금은 계층이동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심지어 결혼도 이제는 끼리끼리 합니다. ‘신데렐라’도 ‘바보 온달’도 보기가 힘들어 진 거죠. 선생의 그 강력한 메시지가 큰 설득력을 가지고 닥아 옵니다.


지니계수: 이만하면 괜찮은 나라?

‘0.31’
실제로 우리 상황은 어떨까요? 소득격차와 양극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번 알아보죠. 흔히들 그렇게 하듯 우리도 지니계수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무슨 ‘계수’라고 하니까 머리를 돌리는 분이 계신데요. 머리 아프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Gini라는 이태리 사람이 만들어서 지니계수라 하는데요, 완전평등이면 0, 완전불평등이면 1이 된다는 것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0.2에서 0.5 사이에 있는데, 통상 0.4 이상이면 불평등의 정도가 심한 것으로 봅니다.

 

우선 <그림 1>인데요. 여러 개의 선이 있죠.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 그리고 도시근로자 지니계수와 전국가구 지니계수, 이렇게 네 개입니다.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세금이나 의료보험 등,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공적 지출을 하기 전의 소득을 대상으로 하는 지니계수입니다. 그리고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이런 것들 다 빼고, 정부로부터 받는 현금지원 등 넣을 것은 넣고 한 금액을 대상으로 하는 지니계수입니다. 실제 손에 쥐는 돈을 기준으로 하는 거죠. 도시근로자 계수와 전국가구 계수는 대상에 따른 것이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겠고요.


 

   

 

 

네 개의 계수 모두 똑 같은 모양으로 올라가죠. 다 상승추세입니다. 소득불균형 또는 소득격차가 심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전국가구 가처분소득 지니계수(회색 점선)의 경우 2003년에 0.29가 채 안 되던 것이 2008년에는 0.30을 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통설이 일단 맞는 거죠. 2007년에 와서야 상승추세가 꺾였고, 그 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 0.30~0.31을 오가고 있습니다.

 

별도로 소개하지 않겠습니다만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도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득5분위배율이라는 게 있는데요, 최상위 20%의 소득이 최하위 20%의 몇 배가 되는지를 살펴보는 거죠.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만 이 역시 소득격차와 소득불균형이 악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2003년에 전국가구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4.80배였던 게 2008년에는 5.15배로 커진 거죠.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소득격차가 그만큼 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0.31의 상대적 의미
자, 그러면 지니계수 0.30~0.31은 어떤 의미를 갖는 수치일까요? 다른 나라하고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일단’ 양호합니다. 수치상 말이죠. 0.30 정도로는 조세희 선생의 메시지가 가슴 속에 와 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일단’이라고 했죠. 다른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일단’ 왜 그런지, 수치가 지니는 의미만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2>를 봐 주십시오. OECD 주요 국가들의 지니계수입니다. 최근 자료를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비교 가능한 상태로 정리된 자료가 이것뿐이라 할 수없이 이 자료를 소개합니다. 2006년 자료입니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계수인데, 보시다시피 북유럽 국가들이 낮은 반면 미국이나 멕시코 등은 높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0.31 정도로 OECD 평균과 거의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경제발전의 속도 등을 감안하면 말이죠. 미국을 물론이고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이 모두 우리 뒤에 있습니다.(* 그림에 있는 주황색 점과 오른 쪽 수치는 빈곤선, 즉 중위 소득의 50% 이하에 사람들의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009년 발표된 CIA의 지니계수 지도도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림 3). 우리나라를 한 번 보시죠. 연두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 국가들, 그리고 호주 등과 같은 급입니다. 북유럽 국가 몇을 빼고는 우리보다 나은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이나 뉴질랜드 등이 모두 우리 뒤에 있습니다.

 

   
 

 나빠지는 속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빠른 편이 아닙니다. 중국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시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0.4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중반 들어 0.4를 넘어섰고, 이제는 0.45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거죠. 우리는 5~10년에 0.1~0.2 정도 올라갔습니다. 비교가 안 되죠.

미국도 만만치 않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지니계수는 1990년대에 0.4 권에 완전히 들어섰고, 이제는 0.46~0.47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 인구통계청(Census Bureau)도 2009년 현재의 미국 지니계수를 0.468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우리와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 수준이나 나빠지는 속도 모두에 있어서 말이죠.

 

사실 미국의 소득격차 확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속도도 빠르고요. <그림 2>는 1980년대 이후의 계층별 소득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붉은 선이 최상위 1% 그룹입니다. 노란 선이 최상위 20%, 옅은 청회색 선이 가운데 20%, 그리고 푸른 선이 최하위 20%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죠? 최하위 20%의 소득이 16% 느는 동안 최상위 1%는 281%, 최상위 20%는 95% 늘어났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소득격차가 더 벌어져 왔습니다. <그림 5>는 19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OECD 주요 국가 지니계수 변화입니다. 보시다시피 적지 않은 국가들에 있어 그 수치가 악화되어 왔습니다. 뉴질랜드와 핀란드는 0.6 이상이 올라갔고,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도 0.4 정도가 올라갔습니다. 우리만 예외적으로 올라 간 게 아닌 거죠.

 

   
 

 결국 지니계수로만 보면 “이만하면 꽤 괜찮은 편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소득5분위 배율도 그렇고요. 상황이 악화되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더 나쁜 상황은 아닌 거죠. 미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서는 더욱 그렇고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만 누군가가 우리사회에 있어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하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이런 내용의 댓글을 남겼더군요. “우리나라의 지니계수가 0.31밖에 안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세요.”

 

정말 그럴까요? 지니계수가 이 정도니 우리 사정이 다른 나라보다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니계수의 함정
먼저, 지니계수는 소득만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집이나 땅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리고 그게 올라 자산가치가 크게 늘어나도, 팔아서 소득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카운트 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숫자이지 ‘빈부격차’나 양극화 정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란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상승이 빈부격차나 양극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그 한계가 두드러집니다.

 

사실, 부동산 등의 자산을 모두 합친 자산 지니계수를 산정하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높지 않을까요? 정확성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이를 산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죠. 그 결과, 상당히 극단적인 값들이 제시되었습니다. 0.7 혹은 그 이상 된다는 거죠.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이거나 그 가까이 있을 겁니다.

 

여담입니다만 누가 묻더군요. 정부가 왜 이런 것 빨리빨리 계산해서 발표하지 않느냐고요. 일부러 값이 ‘적당한(?)’ 지니계수 같은 것만 발표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건 못하죠. 계산결과의 안정성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간차원에서 참고로 해 보거나, 어림잡아 보는 거야 괜찮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정부가 조사해서 발표하기는 곤란하죠.

 

그건 그렇고요....... 지니계수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인데, 경제학을 하시는 분들이나 소위 진보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이 부분을 잘 간과하시더군요. 다름 아닌, 지출부문의 문제입니다. 앞서 시장소득과 가처분 소득을 이야기 드렸죠. 소득격차를 재는 데 있어 시장소득, 즉 벌어들인 돈 그 자체는 의미가 떨어집니다. 세금이나 4대 보험 등, 내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내어야 하는........ 사실상 이미 내 돈이 아닌 게 들어있기 때문이죠. 진짜 소득은 이들 지출을 뺀 나머지 가처분소득이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이러한 의무성 지출이 세금이나 공적 보험 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출하고 싶지 않아도 지출해야 하고, 심지어 빚을 내어서라도 지출해야 하는 비용들이 있습니다. 다들 짐작 하시죠? 교육비, 통신비, 주거비 등입니다. 특히 교육비는 정말 빚을 내어서라도 지출해야 되는 항목입니다. 국민들 수입의 7%를 차지하는 지출항목이기도 하지요.

 

최근 급격히 상승했던 전세 값이나 월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돈이죠. 때로는 세금보다 먼저 지불해야 하기도 하고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어려운 사람에게는 실질소득을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까지 만들 수 있는 항목들입니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달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고요.

 

하버드대학 법대의 워렌(Elizabeth Warren) 교수도 양극화와 관련하여 지출부문을 매우 강조합니다. 양극화 현상이 수입에서도 발생하지만 지출부문에서도 크게 발생하고 있다는 거죠. 정부가 의료비와 교육비, 주거비 등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국민들은 스스로 이를 감당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간의 차이가 더 심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득에서 이러한 의무성 지출을 모두 뺀 다음에 지니계수를 계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수치가 어떻게 될까요? 크게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수준 높은 공교육이 이루어지고 저가 임대주택이 많이 보급되어 있는 나라와는 큰 차이가 나는 거죠. 지니계수 숫자가 같다고 해서 실질소득의 격차나 양극화의 수준이 같다고 하면 큰일 납니다. 우리의 0.31과 복지체계가 잘 갖춰진 유럽 국가들의 0.31은 그 질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니계수가 어찌되었건, 또 소득5분위배율이 어찌되었건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합니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도죠. 소득 최하위 20% 가구가 월 평균 38만원의 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는 가운데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이 10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토지소유는 어떻습니까? 인구의 1%가 전체 민간소유 토지의 60% 가까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을 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는 양극화는 그 극단을 향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부르는 문제들

 

사회적 갈등: 높아지는 과정비용
양극화가 심화되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크게 두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은데, 그 하나는 사회적 갈등입니다. 힘든 분들, 그리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재미있는 데이터가 하나 있는데요. 경제적 불평등이 수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겁니다. 미국 이야기입니다만 2007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24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지니계수가 0.5 정도 내려가 있었다면 그 수가 150만 명 정도로 줄었을 것이라는 겁니다(그림 6).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입고, 제대로 치료받고, 생활에 대한 고민이 좀 덜 했으면 약 90만 명이 더 오래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죠. 못살게 되면 수명까지 짧아진다는 뜻입니다. 의미가 통하죠?

 

 

   


그러니 왜 목소리를 내지 않겠습니까? 사회에 대해서,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지요. 허쉬먼의 개념을 빌리면 ‘voice’ 혹은 ‘exit’이죠. 난장이처럼 굴뚝 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아니면 그 아들처럼 “내가 다 죽여 버릴게” 하는 거죠. 특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되죠.

 

실제로 최근 우리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 잘 알고 계시죠. 특히 노인 자살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떠나는 거죠. ‘Exit’입니다. 반값등록금이다 최저임금이다 하여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요. 이건 ‘voice’죠.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워지면 그 사회는 그만큼 더 높은 과정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쉽게 풀리는 것이 없죠. 여기저기서 싸움이 나고 밀고 당기고 하죠. 싸우느라 아무 일도 못하고, 쉽게 합의할 것도 합의하지 못해 결정이 느려지고, 그래서 정부도 시장도 엉망이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Self-blaming 형,’ 즉 ‘자기비난형’이죠. ‘내가 못나서........’ ‘내가 못 배워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아니면 ‘조상 묘를 잘못 써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그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조건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Other-blaming 형,’ 즉 ‘타인비난형’입니다. ‘대기업들이 빼앗아 가는 바람에.......’ ‘정부가 잘못해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는 자기비난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많이 달라졌습니다. 타인비난형이 오히려 주류를 이룹니다. 그만큼 요구도 많아지고 불만도 많아지고 있는 거죠.

소비축소: 지속가능하지 않는 시장
사회적 갈등에 이어 또 하나 꼭 이야기 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양극화가 시장을 불안하고 하고, 또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 소비대중, 즉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내려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시장은 축소될 수밖에 없지요. 이건 다시 저투자를 불러오게 되고요. 결국 저소비가 저투자로 연계되고 이것이 다시 저소비롤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 그 자체가 위협받게 됩니다..

 

물론 양극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소비가 바로 줄지는 않습니다. 일정기간 동안은 부채가 이를 받쳐주죠. 말하자면 빚을 내어 쓰는 겁니다. 미국이 좋은 예인데요.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에도 소비는 괜찮았습니다. 빚을 내어 썼기 때문이죠. 1990년대 후반만 해도 가처분소득의 100%에도 채 미치지 않았던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를 앞두고는 145%까지 올라갑니다. 집값이 올라가니까 돈을 더 빌려서(mortgage extraction) 차도 사고 여행도 다니고 한 겁니다.

 

그러나 이런 거품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소비도 내려앉고 시장도 경제도 내려앉고 말았죠.

우리도 비슷해지는 것 아닙니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내려 앉았죠. 그 자리를 가계부채와 국가부채가 메우고 있습니다. 가계부채만 해도 이미 1,000조원을 향하고 있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이미 150%에 이르렀습니다. 금융위기 직전의 미국의 145%를 넘어서고 있죠. 당연히 세계최고 수준이고요. 게다가 국가부채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소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가죠? 언제까지 이대로 갈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는 이 문제, 즉 내수시장이 약화되는 현상에 다소 둔감합니다. 수출중심의 경제를 운용해 왔기 때문이죠. 수출비중이 높다보니 그만큼 내수시장이나 소비대중의 구매력에 대해서는 관심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죠. 우리 경제가 이제 더 이상 남을 따라가기만 해도 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앞서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당연히 내수시장이 제대로 서 있어야 하죠. 내수시장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 그리고 혁신이 제대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장품이 되었건 자동차가 되었건, 또 아니면 K-Pop이 되었건 국내 소비가 이루어지면서 경쟁력이 생기는 겁니다. 수출만 한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수출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양극화의 원인

 

글로벌화, 지식정보사회화, 자동화ㆍ기계화
그런데 이 양극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기본적으로는 개인적 조건과 역량의 차이에서 오죠.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잘 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해 못살기도 하는 거죠. 공부 잘 해 잘 살기도 하고 공부 못해 못살기도 하는 거고요. 하지만 이걸 원인이나 배경이라 할 수는 없죠.

 

우리가 관심을 갖는 건 이러한 개인적 조건과 역량의 차이가 부의 축적에 ‘과도하게’ 반영이 되고, 이렇게 과도하게 반영되어 축적된 부가 다시 개인 간의 차이를 키우는 악순환이죠. 그래서 무엇이 이러한 악순환을 만드는지를 묻는 겁니다. 간단히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큰 환경적 요인을 몇 가지 들 수 있습니다. 글로벌화,

   
 

지식정보사회화, 자동화ㆍ기계화 등의 변화들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생산력 격차가 커지고, 그런 만큼 양극화도 심화되는 거죠.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 하는 설명입니다.

상식적인 것이라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다른 동네와 많이 떨어진 작은 동네에서 두 사람이 장사를 한다고 생각해 보죠. 한 사람은 장사를 잘 하는 반면, 한 사람은 그저 그렇게 한다고 가정해 보죠. 경쟁력이나 생산력에 있어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한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시장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차이가 나 봐야 별 것 아닐 수 있고요. 작은 마을이다 보니 시원찮은 장사꾼에게도 손님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면과 안면 때문에 사 주는 거죠.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그래서 시장이 동네를 넘어 확 커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경쟁력 있는 장사꾼은 그 넓어진 세상이 다 자기 시장이 됩니다. 반면, 경쟁력이 약한 시원찮은 장사꾼은 옆 동네로부터 오는 장사꾼들에게 그 나마의 작은 시장마저 뺏기게 됩니다. 두 사람간의 소득과 사회적 위상은 큰 차이가 나게 되죠. 글로벌화가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지식정보사회로 바뀌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식정보사회라는 게 뭐겠습니까? 양질의 지식과 정보가 돈도 되고 권력도 되는 사회 아니겠습니까? 그걸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가 커지는 거죠. 조금 앞서는 것, 조금 더 잘하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더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있던 자리까지 위협받게 됩니다. 기계화와 자동화까지 이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이들 간의 임금이나 소득의 격차도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정치경제적 구도: ‘단절’
이런 환경적 요인과 함께 정치경제적 요인도 중요한 원인이 되죠, 이와 관련해서 꼭 쓰고 싶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단절’입니다.

 

뭐가 단절되어 있느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단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단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절, 남성과 여성의 단절, ‘특권집단’과 ‘비특권집단’의 단절......... 이런 단절입니다. 이 단절로 인해 성장의 과실이 한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즉 수도권과 대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남성....... 그리고 특권집단으로 흐르고 있는 겁니다.

 

‘단절’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전략과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운영과 같은 정책적 요인도 있고요, 국가권력 또는 공적 권한의 잘못된 운영도 있습니다. 앞의 것은 더 이상 설명할 이유가 없겠죠. 너무나 자명한 거니까요. 그러나 뒤의 것, 즉 ‘특권집단’의 문제는 한 두 마디 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질서유지 기능 등의 공적 기능을 특정 국가기관이 독점하는 예가 많습니다.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세청과 같은 기관들이 대표적이죠. 공정거래와 금융감독 부분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집단소송 등을 통해 일반 소비자가 직접 기업 등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이 그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나 기소권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여기에 시장과 사회일반에 영향을 미치는 힘도 일종의 과점 상태에 있습니다. 재벌, 언론 등이 과도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죠. 특히 언론과 같은 경우는 사회적 견제도 매우 약한 상태입니다. 신문만 하더라도 독자에 의한 통제도 제대로 안 되는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공적ㆍ사적 기관과 조직들이 반 의무적으로 구독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건데요. 이러한 특권을 바탕으로 우리사회에는 광범위한 ‘특권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즉 관-기업-법무법인과 회계법인-정치권-언론 등이 삼각 내지는 사각의 특수 관계를 맺어 가는 거죠. 정치ㆍ행정적 권한과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전문성과 돈이 결합하는 고리가 만들어 지는 겁니다. 물론 합법적인 고리들이죠. 과거의 정경유착과 같은 유치한 관계가 아니죠. 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때로는 도덕적 명분까지 갖춘 고리들입니다.

 

그 수가 뭐 그리 많겠느냐고요? 글쎄요........ 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때로는 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강한 고리가 만들어 내는 정책과 제도가 온 나라의 힘과 부의 관계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종편’이나 ‘법인세 인하’ 같은 것도 다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렇게 서로 의존하는 관계는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관계로까지 이어집니다. 친구를 맺고 혼인을 하고, 서로 소개를 하면서 고리와 고리가 이어지죠. 그러면서 거대하고도 광범위한 특권적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학연과 지연 등이 매개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안에서 정보가 교환되고 상호 호혜적인 행위가 이루어지죠. 특권집단 전체의 정치경제적 지위가 더욱 단단해 지는 겁니다.

 

산업구조: 또 하나의 단절
산업구조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여기도 ‘단절’이 존재합니다.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많은 중견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견기업은 독자 기술을 가지고 대기업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품과 소재, 장비들을 만듭니다. 대기업이 큰 소리를 칠 수 없는 상대죠. 당연히 이들과 대기업의 관계는 권력적이거나 수직적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과실을 나누는 과정이나 방식, 그리고 결과가 그만큼 ‘공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종업원 수나 매출규모 등이 모두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중견기업은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기술력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매출규모 등에 있어서도 일본이나 독일의 중견기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죠(그림 7).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협력업체란 이름으로 대기업의 하청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독자적인 기술력도 갖추지 못한 채 말이죠. 그 결과 기업 간의 관계는 권력적이고 수직적이 됩니다. 종업원들의 임금부터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영세자영업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더욱 ‘단절적’이죠. 이들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양극화 문제의 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규모인데요.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림 8>을 한번 보시죠. 경제 인구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 미국이 7.4%, 일본이 13.8%, 그리고 OECD 평균이 16.5%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32.8%입니다. 국내에서 소개되는 최근 통계는 이 보다 조금 낮은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30% 이하는 아닙니다. 어쨌거나 대단히 높다는 사실이 중요한데, 이들의 대다수가 영세자영업자입니다.

 

 

   
 

이들은 우리 경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데 있어서는 마치 섬처럼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 등 좋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제일 먼저 그 피해를 봅니다.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는 거죠. 골목시장의 영세상인, 화물연대 등이 다 그렇죠. 말이 영세 상인이고 영세자영업자이지 사실상 반실업의 상태에 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양극화 문제의 핵이라 말씀 드리는 겁니다.

 

시장, 그리고 그 뒤의 무엇
양극화는 일차적으로 시장으로부터 옵니다. 시장은 개인의 모든 조건과 역량을 소득으로 전환시켜 주죠. 재산, 네트워크, 판단력, 도전정신, 기술, 신용.........등, 이런 모든 것을 반영해서 소득을 결정해 줍니다. 때로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또 때로는 그렇지 못한 방법으로 말이죠.

 

이런 걸 모두 이야기 드릴 수는 없겠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안 되고요. 그래서 그렇다는 이야기만 드리고요, 두 가지 환경적 요인만 이야기 드렸으면 합니다. 먼저 그 하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양극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죠.

 

인플레이션은 못사는 사람에게 최대의 적입니다. 잘사는 사람들은 평소 주식도 가지고 있고 금이나 부동산도 사 놓고 있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도 이들 자산의 가격 또한 상승하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재미를 보기도 하죠. 그러나 못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금이나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게 많을 리 없죠. 치솟는 전세금과 생활비에 빚만 지게 됩니다. 빈부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플레이션이 시장이 돌아가다 보면 우연적으로 일시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그 뒤에 상당한 인위적 요소들이 있는 것 같습니까? 물론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하죠. 시장이라는 게 그렇게 해서 자기조정을 해 가는 거니까요. 그러나 상당부분 그 뒤에는 주요 국가의 정부 등 중요한 플레이어들의 의도적 작용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 국가 간의 경제전쟁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중국 보십시오. 자국화폐 위안화를 평가절하 시켜놓습니다. 그리고는 세계의 돈을 다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자국 상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서 거둬들이는 거죠. 여기에 투기성 핫머니가 들어갑니다. 언젠가는 위안화가 평가절상 될 것이고, 그 때 환차익을 보겠다는 거지요. 이리저리 엄청난 양의 달러가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 온 달러를 가지고 중국은 뭘 하죠?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겁니다. 들어 온 달러를 위안화로 바꾸게 되면 통화량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될 수도 있죠. 그러니 안으로 들이지 않고 ‘미국 국채 매입’으로 바로 내 보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죠. 그래서 자그마치 7천5백억 달러가 넘는 미국 국채를 사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국채를 대거 사 들이니 미국 금리가 영향을 받습니다. 낮아지는 거죠. 중국이 국채를 사들이는 만큼 돈이 풀렸으니까요. 그리고 이 낮아진 금리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합니다. 부동산 가격도 뛰게 만들고요. 올라간 부동산 가격이 결국 금융위기로 연결되고요. 무역적자에 재정적자, 쌍둥이 적자가 미국을 괴롭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한 방 맞은 거죠. 중국이 원흉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조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하느냐? 위안화 평가절상 하라는 압력을 넣어 왔죠. 모든 게 여기서부터 출발하니까요. 그러나 하란다고 중국이 쉽게 그렇게 합니까? 안 하죠. 결국 미국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요. 부실금융기관도 살리고 실물경제도 구할 겸 조 단위의 달러를 찍어 풀어 버립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조치죠. 그 바람에 달러화 가치가 10% 정도 떨어져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무역수지가 20% 이상 적자이던 것이 도리어 30% 가까운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죠. 그 대신 인플레이션 위험은 더욱 커지게 되었죠. 돈이 그만큼 풀렸으니까요.

 

미국만 돈을 찍어 푼 게 아닙니다. 일본도 2009년 이래 여러 차례 양적 완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30조엔 이상을 찍었죠. 일본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이라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도한 거죠. 또 영국도 2천억 파운드 이상을 찍었고, EU 역시 7천억 유로 가까이를 찍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찍고 있는 겁니다. 얼마 전 외국 뉴스 채널을 보니까 나라마다 돈 찍는 기계를 통해 돈을 마구 찍어대는 만화를 내 보내더군요. 최근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컷이죠.

 

<그림 9>은 여러 나라의 최근 인플레이션 상황입니다. 2010년이죠. 인도 같은 경우는 9.41%네요. 끔찍한 거죠. 중국이 5.3%, 영국이 4.5%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데로 일본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낮은 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림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지금 3.3%에서 4.5% 사이를 왔다 갔다 하죠. 그렇지 않아도 유동성이 넘치는 판에 수출 드라이브 걸고 기업 돕는다고 고환율에 저금리를 고수하고,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훼손시킬 대로 훼손시켜 버렸으니 그렇게 안 되겠습니까? 다들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더 심해질 거라 예상하네요.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하나 더 이야기 드리고 싶은 건 부동산문제입니다. 이 역시 우리나라 양극화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어 왔죠. 개인적으로도 아찔한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88년도였는데, 아파트 값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죠. 전세 들 돈에 주택은행에서 나오는 주택융자를 적당히 받으면 집을 사고도 돈이 남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집을 샀는데, 만일 그 때 사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생 집을 가지지 못할 뻔 했습니다. 사고 난 다음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한 2년 만에 두 배 세 배가 오르더군요. 제 소득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일단 한 번 사고 나니 쉽더군요. 융자를 받아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옮기고 했죠. 지금 생각하면 재산이 늘어난 게 모두 이사 두 번하면서 늘어난 것 같습니다. 미리 융자받아 사서, 살면서 갚고 했죠. 부동산이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유가 있어 투기라도 한 사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월급이나 작은 사업해 가지고는 평생 모을 수 없는 돈을 부동산으로 모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부동산 가격이 그냥 올랐을까요? 경제가 성장하고 토지나 건물에 대한 수요가 커지니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올라간 걸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정부의 의지나 정책이 상당히 반영된 것이죠. 수도권 중심의 개발전략 같은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정책들이 부동산 가격 앙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나의 예가 되겠습니다만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시절에는 부동산을 투자위험을 완화시키는 수단으로도 썼습니다. 정부가 그렇게 한 거죠. 무슨 이야긴가 하면요. 공장을 지어 사업을 하다 그 사업이 망해도 땅 값은 올랐던 거죠. 손해 본 돈을 보전하고도 돈이 남곤 했죠. 땅을 필요한 하는 투자는 겁 낼 이유가 없었죠.

 

정부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나? 방법은 많습니다. 은행의 지불준비금만 조금 내려도요, 시장은 크게 달라집니다. 지불준비금이 낮아질수록 돈은 그만큼 더 많이 풀리게 되고, 그 돈이 부동산에 가서 붙게 되지요. 사실 우리나라 은행의 지불준비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이 10% 정도가 되는데 우리는 평균 4% 정도밖에 안되거든요.

 

이 외에도 많습니다. LTV, DTI에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등 워낙 강력한 조치를 해 놓아서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유동성 자금이 몰릴 수 있습니다. 금리를 조금 내려도 그렇죠. 재개발 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조금만 풀어도, 또 신도시 개발계획만 발표해도 그렇고요. 이런 것이 ‘부동산 불패,’ ‘강남 불패’의 신화를 만들었고,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더 문제인가?: ‘복지’와 ‘정의’

강화되어야 할 복지


이제 오늘 강의의 마지막 부분입니다만, 그러면 어떻게 하죠? 제일 확실한 것은 개인적 조건과 역량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겠죠. 재산도 비슷하게 하고, 지적 능력과 정보력 그리고 네트워크 역량도 비슷하게 하고요. 하지만 이건 불가능 하죠.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어떤 분들은 홧김에 토지를 국유화 하느니 어쩌고 하는데, 가당치 않은 이야기죠. ‘달’을 동경하는 ‘난장이’ 마음 정도로 알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역시 사회정책 분야를 강화하는 일입니다. ‘복지’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고요. 복지를 통해 개인적 조건과 역량의 차이가 소득이나 재산축적에 과도하게 반영되는 부분을 교정해 주어야 하는 거죠. 예컨대 소득부문에서는 최저임금을 현실에 맞게 올려주고, 생계비 보조 등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지출부문에서는 저가의 임대주택을 공급이나 공교육 강화를 통해 주거비와 교육비 등을 줄여 주는 노력 등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시장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지원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패자부활의 기회를 주거나 패자가 되기 전에 다른 데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겁니다. 평생교육을 강화하여 시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주 일이나 각종의 경제적ㆍ사회적 인센티브를 통해 근로의욕을 고취시켜 주는 일......... 등,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돈 쓰는 것 보면 알지요.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국가들의 GDP의 30% 안팎을 사회지출로 쓰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겨우 7% 정도를 쓰고 있습니다. OECD 평균도 21%를 넘고 있는데 말이죠. 이런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키워 나갈 부분이죠.

 

돈: 얼마나 더 거둘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지출이나 복지지출을 확대하기 위한 돈은 어디서 나오죠? 일부에서는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출구조를 잘 조정하고 낭비되는 예산을 찾아 줄이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원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4대강 사업’ 예산 줄이고. 재정효율 10% 높이고........ 어떻게 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요. 그러나 제 경험으로 말한다면 쉽지 않습니다. 구조조정하고 줄일 항목을 찾아 낼 수는 있죠. 그러나 찾아낸다고 다 자르고 줄일 수 있을까요? 그 하나하나에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이해관계와 정치경제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집권기간 내내 밀고 당기고 씨름만 하다 그야말로 몇 푼 건지는 정도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스톡크만(David Stockman)이라는 젊고 유능한 사람이 백악관 관리예산처(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의 처장으로 임명이 되었죠. 굳이 이야기하자면 예산장관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죠.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을 줄이라는 특명을 받았죠. 당연히 큰 꿈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쓸데없는’ 예산은 모두 잘라 내겠다고 말이죠. 결과는 스스로 비참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은 ‘쓸데없는’ 예산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목소리 약한 사람들을 위한 예산’만 자르고 말았죠.

우리도 말이죠. 이제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대통령이나 그 참모, 그리고 장관이 손가락 하나로 이 항목 저 항목 자르고 싶은 대로 자르고 붙이고 싶은 대로 붙이고 하는 나라 아닙니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을 기존 항목을 잘라 마련한다? 저에게는 잘 와 닿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흔히들 ‘4대강 예산’을 이야기하는 데요. 그것 자르고 나면 또 다른 분야의 수요가 생깁니다. 복지 분야로 다 가져오지 못합니다.

 

결국은 돈을 더 거두어야 됩니다. 조세부담률이건 국민부담률이건 높여야 하는 거죠.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과 국민부담율은 매우 낮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더욱 떨어졌죠. 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20%가 채 되지 않고요, 4대 보험 등을 합친 국민부담률도 GDP 대비 25%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복지국가는 50% 정도, 다른 유럽 국가들도 대체로 40% 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낮은 그룹에 속하는 미국과 일본도 30% 안팎은 됩니다. 모두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조세부담률이 이렇게 낮으니 정부재정의 소득교정 효과도 매우 낮습니다. 양극화 문제에 있어 가장 모범적이라 할 수 있는 북유럽국가들도 시장소득의 불평등은 매우 심합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심한 걸로 나타나기도 하죠. 스웨덴을 보시죠(그림 10). ‘2000년대 중반’의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0.43입니다. 우리는 0.331밖에 안 되는데요....... 그런데 가처분 소득 지니계수는 어떻습니까? 0.23입니다. 정부의 재정작용이 있고 나니 수치가 반 가까이 떨어 진 겁니다. 다른 나라들도 비교적 큰 차이가 나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0.331이 0.301로 변한 정도입니다. 소득교정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웨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더 거두어 더 쓸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말 거둘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쉽지 않습니다. 국가 간의 조세경쟁이나 ‘capital flight 현상,’ 즉 세금 부담으로 기업이나 자본이 도망을 갈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번에 이미 말씀 드리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꼭 말씀 드려야 할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그림 11>을 잠시 볼까요. 미국 경제인구 중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의 비율입니다. 몇 퍼센트냐? 최근에 와서 35% 정도까지 올라왔죠. 경제위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낼 만큼 돈을 못 번거죠. 그 전에는 대체로 20~25% 선이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그렇게 내려갈 겁니다. 따로 그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만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20%에서 25% 사이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40%가 넘습니다. 많을 때는 48%까지 갔습니다. 양극화 때문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앞의 지니계수에서 보셨죠? 시장소득 격차에 있어서는 우리 형편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러면 왜 그러냐? 권위주의 정부시절,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될 수 있으면 세금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일종의 조세 포퓰리즘이죠. 재산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낮은 것도 다 이러한 영향입니다.

 

 

하나 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그림 12). 텍스 웻지(tax wedge)라고 하는 건데요.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조세격차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용은 시장소득에서 빼는 세금과 공적보험 등의 총액입니다. 국민부담률을 구성하는 것들이죠. 그림의 자료는 각 나라의 평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겁니다. 소득이 아주 높은 사람이나 아주 낮은 사람이 아니고요........ 대충 그 경향만 보시면 되겠는데요, 저 위에 있는 유럽 복지국가들의 tax wedge는 약 50% 안팎입니다. 그러니까 소득 중에서 반을 세금이나 연금 등로 내놓는 겁니다. ‘Average wage,’ 즉 평균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저 밑에 위치하고 있고, 그 비율도 20% 정도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중간계층이 비교적 적게 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앞으로 증세 이야기가 나오거나 국민부담률을 더 높이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이들을 건드리지 않고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 어느 정당이, 어떤 정치지도자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고소득자들에게도 더 거두겠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35%에 여러 가지 부가세를 합치면 40% 가까이 되는데요. 스웨덴 같은 나라도 최고세율이 50%입니다. 미국과 같은 경우는 우리와 차이가 없고요. 과연 얼마를 더 올려 우리가 원하는 복지수순에 맞는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누군가 시뮬레이션을 해 봤다는 거 아닙니까? 고소득자를 겨냥한 과세구간을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계산을 해 봤더니 4천억 5천억 원 정도밖에 더 안 나오더라고......... 이것 가지고 되겠습니까? 결국은 중간계층을 건드리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누가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또 용기가 있으면 되는 건가요?

 

증세를 해야지요. 당연히 해야지요. 지금과 같은 재정으로는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힘이 듭니다. 사회전체의 혁신역량 강화가 더 절실히 요구되고, 고령화가 더 깊이 진행되는 등의 변화를 생각하면 말이죠. 그러나 동시에 쉽지 않다는 것,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에 앞장 선 적이 있습니다. 많은 공격을 받았죠.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당시의 여당으로부터 오는 공격이었습니다. 그 때 그것을 그렇게 반대하던 분들 중에 지금 ‘증세’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진실성이 있을까요? 그 때는 여론이 노무현 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있으니까 증세를 반대하고,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여론이 등을 돌리고 있으니까 증세를 주장하고....... 이런 것 아닙니까? 진실성을 가지고 제대로 알고, 제대로 이야기하라는 말씀입니다.

 

1차 분배와 2차 분배: 단절의 문제와 정의담론
복지가 중요한데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는 힘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다른 대안에 관심을 기울여야죠. 어디에 관심을 둬야 할까요? 사실, 앞서 원인을 설명하면서 다 말씀 드렸습니다. 시장을 봐야 합니다. 정치경제구조를 봐야 합니다. 양극화의 많은 부분이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를 봐야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복지는 2차적인 처방입니다. 이미 격차가 난 것을 교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교정한 것이 시장에서의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할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셨죠. 시장에서의 분배를 1차 분배로, 그리고 사회정책을 통한 재분배를 2차 분배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1차 분배, 즉 시장에서의 분배가 가지는 의미를 중시하셨습니다. 시장구조나 정치경제적 구조가 잘못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모두 2차 분배, 즉 복지를 통해 감당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이죠. 그러기에는 우리의 정치경제적 구조나 시장에서의 배분구조가 너무 왜곡되어 있고, 국가의 재정 또한 확보하기가 너무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204년 9월 있었던 MBC 특별대담에서의 말씀입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 분배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일어납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서 나누어주는 것은 재분배입니다. 재분배로서 일차적 분배를 시정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금을 많이 거둬서 많이 나누어 주려고 해도 세금 거두는데도 한계가 있고 주는 데도 한계가 있고 그야말로 무리하면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재분배로는 한계가 있고........


정치경제구조와 시장에 무엇이 그리 문제일까요? 양극화 해소를 위해, 또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까요? 많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벽을 쌓은 일에서부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문제, 부동산 가격의 앙등을 막는 문제 등이 모두 중요한 과제가 되겠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경제와 시장에 있어 ‘단절’의 문제를 극복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2005년 대기업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무현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 더욱이 더 어려운 것은 제1차적인 분배의 영역에 있어서 수출을 해서 엄청나게 돈을 벌어 와서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고 대기업의 노동자들까지 엄청나게 배당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중소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또 일반 다른 서비스산업으로도 확산되지 않는 소위 생산과 분배과정이랄까, 산업간 분배과정이랄까 이 부분에 있어서의 단절이 어떻게 극복돼야 될 것이냐에 관해서 아직 어느 두뇌집단도 정부를 포함한 어느 두뇌집단도 그 점에 관해서 ‘이것이다’라고 우리가 할 만한 정책제안을 해 온 곳이 없습니다. 정말 밤잠 안자고 고심해도 거기에 대한 해답을 준 우리 한국의 두뇌집단은 없습니다.


단절! 그렇습니다. 바로 이 단절입니다. 앞서 이미 설명을 드렸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단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단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절, 특권집단과 비특권집단의 단절, ........ 이러한 단절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완화될 수 없습니다. 이를 그대로 두고는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문제를 뒤로 하고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거나, 아니면 복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복지는 기본으로 우리가 가져가야 할 문제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담론에만 갇혀서는 안 됩니다. 특히 복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구도 속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러한 단절을 푸는 과제들을 복지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로, 아니면 복지에 앞선 과제로 챙겨 가야 합니다.

 

그러면 단절을 어떻게 풀죠? 많은 과제들이 도출 되겠죠. 금융개혁 등을 통해 중소기업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요,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어야 되겠지요. 금융감독 기구나 공정거래 기구 그리고 검찰 등의 권한 독점을 막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고요. 지역균형발전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양질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도 해야 되겠지요.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자본시장 육성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거고요.

 

특히 특권집단과 비특권집단의 단절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동산 가격의 앙등, 인플레이션, 대기업과 협력기업간의 불합리한 관계 등을 포함하여 시장에서의 분배를 왜곡하는 많은 부분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죽은 땅’으로 만들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난쏘공’의 그 강력한 메시지를 되새기게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단절적’ 구조가 지금처럼 강력히 버티고 있는 한 2차분배로서의 복지는 그 빛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막을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단절의 문제, 특히 특권집단과 비특권집단 간의 단절의 문제는 정의의 문제로 풀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김대호 소장이 제기하고 있는 정의담론은 유용합니다. 제2강에서 진보개혁 버전의 성장의 담론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정의담론 역시 우리사회가 정성을 다해 가꾸어 나가야 할 담론입니다. 성장담론과 정의담론, 그리고 아직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만 평화담론과 복지담론이 어우러져서 우리의 내일을 위한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강의록은 라디오21이 주최한 ‘고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 강연의 제5강(2011년 6월 8일)을 녹취하여 읽기 편한 문장으로 재정리 한 것입니다.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첨삭과 일부 내용의 전후 이동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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