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미국 선거 한국에서 재현되나?
시사INLive | 안병진 | 입력 2011.07.14 09:34
독점기업 규제하고 생태 가치 좇은 루스벨트
미국의 경우에 비유하자면, 한나라당이 루스벨트(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아니라,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의 당이 되느냐, 골드워터의 당이 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의미를 지닌다. 미국 26대 대통령을 지낸 루스벨트는 이른바 미국판 재벌체제를 규제하고 생태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안보에서는 강한 미국을 좇은 개혁적 보수 정치의 상징이다. 두 차례 대선 도전에 실패한 골드워터는 고삐 풀린 시장만능주의와 강경안보 노선을 추구한 극우적 보수 정치의 상징이다. 오늘날 미국 공화당에서 전자는 거의 다 박물관의 유물로 사라지고 후자만이 득세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차라리 민주노동당으로 가라고 조롱하지만 원래 보수란 공동체의 안정과 균형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그러하기에 루스벨트는 극단적 양극화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탐욕스러운 독점기업에 대해 규제 조처를 주도했다. 심지어 그는 극단으로 일그러진 힘의 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자와 협상을 거부하는 기업주에게는 경영권 몰수라는 협박까지 던졌다. 또 아날로그의 가치를 추구하는 복고적 보수답게 생태 대통령으로서 환경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 한나라당 일각의 흐름이 일시적 흥행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으로 루스벨트 같은 개혁적 보수로 대접받으려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도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재벌 총수의 자의적 지배체제에 외과수술의 칼을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날로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4대강 사업 따위 토건경제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의 칼날을 겨누어야 한다. 심지어 노사 간 균형을 추구한 루스벨트처럼 난쟁이로 전락한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민주노동당 대표가 아니라 루스벨트와 같은 정통 보수가 해야 할 일이다.
지난 한국 대선 때 보수 진영은 미국식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해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당시 뉴라이트 운동은 골드워터의 극단적 보수 이념에 근거한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이제 한국에 양심과 지혜를 가진 보수가 있다면 진정으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는 재벌체제 개혁과 생태 정치를 위한 시민정치운동이다. 진보·개혁 진영에서 지금 진행되는 시민정치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도 이와 경쟁하며 건전한 시민사회 형성과 극우 정당의 혁신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미국에서 루스벨트의 개혁적 보수는 당의 기득권자에게 밀렸고, 루스벨트는 1912년 제3당인 진보당의 후보로 다시 출마했다. 이 같은 보수의 분열 속에서 민주당 우드로 윌슨이 당선해 진보주의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 뒤 공화당은 결국 극우 보수의 길을 걸어가고 말았다. 이 극우적 보수는 한때 레이건 시대를 열며 시장만능주의의 화려한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파산 속에서 2008년 대선에서 실패하고 미국을 경제위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2012년 한국의 대선은 1912년 미국 대선만큼이나 역사적 선거가 될 것이다. 당의 다수가 기득권 체제의 안락함에 젖어 공동체가 파괴되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한나라당이 과연 루스벨트의 정당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만약 변신에 실패한다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보수의 분열로 인한 진보의 집권일까, 아니면 개혁하지 않은 보수의 집권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골드워터 노선이 대몰락하는 결과로 나타날까? 한나라당과 대한민국에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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