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무상, 무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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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비춰 보는 이 훈련은 줄타기에 견줄 수 있습니다. 줄 위를 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줄 위를 걷는 동안 시야에 여러가지가 스쳐가듯 우리의 수행 중에도 여러가지 정경과 소리들 그리고 감동, 생각, 깨달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그 경험들이 즐거운 것이면 우리들 마음은 그들을 가까이 하고 붙들고 늘어지며 오랫동안 함께 하려 합니다. 반대로 그것들이 불유쾌하면 싫어하고 멀리하려 합니다.
어느 경우나 우리 마음이 움직이고 집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균형을 잃게 됩니다. 대상을 향한 좋은 반응, 나쁜 반응 모두 똑같이 위험합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나 ,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나 마음의 균형을 잃게 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균형을 잃으면 줄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그러한 경계들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하지 않는 조용한 마음을 개발하려 노력합니다.
즉,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무엇이나 오고 가는 것을 그저 비추어 보는 마음의 개발입니다. 무상을 꿰뚫어 보는 일은 죽음의 블가피성과 긴박성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이 죽으리라 믿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망각 속에서 물건을 모으고 소유하며 또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우리는 야심과 욕망과 자아를 채우는 일을 생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적은 마음'의 행위들로 분주합니다. 그러므로 큰 마음의 시각, 죽음으로부터 생을 조명해 보는 그런 시각을 잃고 있습니다. 돈 쥬안은 죽음을 우리들 생의 충고자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죽음을 후회나 슬픔, 걱정 없이 맑은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은 우리들 생의 순간순간, 행위의 하나 하나를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온전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을 그렇게 하도록 하는 스스로의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그 경향은 성냄이나 자기 비하와 같은 파괴적인 습성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을 마음 속에 새겨두고 그것이 우리들 삶의 일거 일동을 증거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죽음을 생의 충고자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생의 순간순간을 내가 금생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하듯이 힘과 완전함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항상 눈앞에 있는 사실로 의식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훨씬 덜 분주하고 눈 앞에 있는 여러 가지 욕망을 채우는 일에 그렇게 무리하지 않게 됩니다. 욕망과 환상에 사로 잡히지 않을 때 물건이나 소유에 덜 집착하게 되고 자비롭고 너그러운 열린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의식은 나의 존재를 더 밝게 알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무상에 대한 통찰은 모든 것들이 순간순간의 흐름 속에 있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매 순간순간 마음과 몸의 움직임, 나아가서는 전 우주가 생하고 멸하며 또 죽었다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엄청난 변화와 흐름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개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음명상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눠 보셨읍니다.
그럼, 우리 안에 깨어있는 불성의 빛으로, 우리 모두 행복한 부처님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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