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성제(四聖諦)에 관하여 >
4성제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4성제는 고집멸도(苦執滅道)를 말하는 것인데 4제라고도 한다.
그런데 여기의 제(諦)는 "眞理"란 뜻으로서 빨리어로는 "아리야"라고 한다. 따라서 4성제라고 하면 "성인이 찾아낸 네 가지 진리(아리야삿쨔)"란 의미가 된다. 당시 인도는 세계 철학의 본거지였다. 왕들도 모든 사상과 성자를 존중하였다. 그것이 언어에도 반영되어 4 성제가 부처님께서 찾아낸 전혀 새로운 진리임을 인정하였다. 4성제에 관한 말씀은 매우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부처님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1. 고( 苦, 둑카)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제일 먼저, 로카(Loka)가 있음을 보셨다. 그것이 바로 고(苦, 둑카)다.
로카라는 것은 세계, 유정, 물질, 몸이라고 해석되는데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체라고도 하고 세계라고도 하셨다. 그것이 바로 6근이 6경에 부딪쳐서 6식을 하는 18계를 말한다. 그리고 "나는 세계를 정복하였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세계를 정복하였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복하셨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 혹은 로카의 自然的 性品(빠라마타)는 곧 고, 고통이다. 몸과 마음이 있는 한 고통은 있게 마련이다. 고통은 있는 것이다. 고통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볼 때에 진리를 보는 것이요 貪嗔癡 없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된다.
몸과 마음은 다른 말로 하면 5온(五蘊, 색수생행식, 다섯 가지 모임 혹은 무더기)을 의미한다. 이러한 오온의 성품을 알고 執着을 여의는 것이 바로 聖者의 마음가짐이다. 오온은 원래 그대로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바로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온이 아닌 다른 대상도 원래 그대로 있는데 우리는 그 성품을 바로 보지 못한다. 모든 대상은 원래 그렇게 있다. 그래서 "宇宙 안에 진리가 가득 차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眞理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요약하여, 로카는 몸과 마음(5온)이요 성품의 면에서 볼 때는 고통이다.
2. 집(執, 執着)
부처님은 또 둑카(苦)의 기원을 보셨다. 물질(로카, 몸)의 자연적 성품은 고통이라고 하였는데 苦의 원인은 5욕락이다. 그리고 집착이다.
부처님께 제자들이 이렇게 여쭈었다.“인류의 기원은 언제부터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인류가 언제부터 집착을 시작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어서 "인류가 언제 시작하였는가는 너희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너에게 박힌 독화살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열반은 條件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건은 곧 창조를 의미한다. 인간이 태어났다는 것은 태어나려는 마음(慾求)이 있어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존재, 나, 개체를 분석하여 보면 이와 같이 조건에 의하여 생겨났다. 부연하면, 물질적(色) 현상과 마음의 4가지 작용(受想行識) 뿐이다. 이런 조건들(五蘊,)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 중 어느 것이 나라고 할 것인가. 또한 恒常 하는 내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無我)다. 이 오온이 곧 둑카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의 핵심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들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조건지어진 것은 변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 내 몸이라고 하는 것,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조건지어져 있을 때 나도 있고 가족도 있다. 조건이 끝나면 흩어질 뿐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3. 멸(滅)
부처님은 이 로카를 멸할 길이 있음을 보셨다. 그리하여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욕망을 끊었다. 이것이 곧 닙바나(열반)다. "고통은 멸할 수 있다"는 말은 오직 부처님만이 하셨다. 그래서 열반을 지고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것이 바로 고통이고 둑카다. 그래서 세속적인 행복은 행복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욕망과 불만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부처님은 일러주신 것이다.
4. 도(道)
이 로카를 멸하는 길이 곧 8正道다. 둑카를 멸하는 길, 이것이 팔정도이며 팔정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길이 바로 위빠싸나다. 부처님께서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설하신 내용이 四念處 修行이다. 사념처(身受心法)는 팔정도를 실현하는 길이며 사념처라는 대상을 꿰뚫어 본다는 뜻으로 위빠싸나라고 한다. 그러므로 위빠싸나는 어느 특정한 단체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고통 받는 모든 인류의 것이다.
고통, 즉 둑카( dukkha)는 괴로움, 슬픔, 불만족, 하찮은 것, 비어있다는 뜻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둑카를 흔히 염세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고통이라는 용어자체가 염세주의를 상상케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통도 알아차리고 보면 고통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냥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행복도 알아차리고 보면 놓칠까봐 우려되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지고한 행복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없는 세계를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행복을 추구하였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감각적 쾌락이라는 것이며 이것은 행복이 아님을 일러주신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현재를 알아차림으로써만 올 수 있으며 탐진치가 불타버린 열반의 세계에서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이 고통 그 자체임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태어남이 둑카요, 늙음이 둑카며, 병들고 죽는 것이 둑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슬픔, 고통, 육체적 아픔, 절망, 좌절, 그 어느 것 하나 둑카 아닌 것이 없다. 그 뿐이랴.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요,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또한 고통이다. 다섯 가지 모임에 집착하는 것도 고통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고통은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요, 하찮은 것이며,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면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苦)라는 말보다는 둑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불만족"이라고 하는 것이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생님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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