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신이 하는 단 한가지

장백산-1 2012. 5. 25. 19:13

신이 하는 단 한 가지

 

우리가 삶에서 문제를 넘치도록 안고 사는 이유는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존재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존재가 무한하게 사는 것은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것인데

스스로 한계 안에 가두고 본성을 억제하니 삶이 어려운 것입니다.

또 무한한 존재가 무한하게 사는 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새가 새로 살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을 새의 본성을 버리고

물고기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 삶이 얼마나 고단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자신의 실체를 알고 무한한 존재로 살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그렇게 될 일이라면 지금은 왜 안 될까요?

무한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미 깨달은 존재요 이미 완벽한 존재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많은 책을 읽고 각종 수련 끝에나 알 수 있는 거라고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10층짜리 건물 중 1층에 있다고

나는 10층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1층짜리 조그만 건물 안에 있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1층에 있던 2층에 있던 심지어 지하주차장에 있어도 이미 10층 건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손에 이끌려 10층 꼭대기에 올라가고 난 다음

나는 처음부터 10층 건물에 있었노라고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아무리 번뇌가 많고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완전한 <>

이미 있고 그런 실체를 찾는데 먼저 마음의 온갖 번뇌들을 다 지우고 난 다음

찾으려고 하니까 즉 초점을 실체가 아닌 온갖 잡념에 맞추고 그 시끄러운 마음을

다 정화하고 나서 실체를 만나려고 하니까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갖 부정적 기억과 감정으로 에고를 강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에고에서 벗어나고자 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지만 내가 내가 되는 것에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본성으로 사는 것은 쉬운 것이고 에고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이미 10층 건물 안에 있는 자신을 깊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수련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 보다는 인식의 전환이 더 중요합니다.

 

초점을 에고가 아닌 실체로 향해서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보다 더 크고 강렬하게 집중하면

한 번에 하나씩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수십 개씩 정화할 수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6개월 정도면 본성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만 명 중에 한 명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실체에 강렬하게 집중하면서 그 틈새로 빠져나오는

잡념들을 정화하는 것이 순전히 한 번에 하나씩 정화하는 방법만 하는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최대한 강렬하게 실체에 집중하고 정화나 수련은 부수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방법은 한 번에 하나씩 정화하는 것인데 이게 가장 느립니다.

그 많은 번뇌들을 하나씩 해결하려고 하니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정화는 본성으로 향하는 방편이긴 하지만 정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에고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한 걸음 나아가고 반걸음 물러서는 형국이라

본성을 향해 가긴 가지만 그 걸음이 더디고 느리기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은 거울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고 그 환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거울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시 나에게 비추는 것이 거울의 역할이고

거울에 이미 완성된 모습을 보여야 그 완성된 모습이 다시 내게 비춰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도달하지 못해서 정화하고 수련하는 모습을 거울에 보인다면

또 그렇게 늘 정화만 하고 있는 모습이 되돌아와서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그러니 깨달음은 어렵다는 왜곡된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완전한 존재라면 또는 신이라면 ~~수련을 하겠는가? >

하고 스스로 질문해본다면 그럼 답은 대부분 <아니요> 하고 나올 것입니다.

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수련이 필요하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렇게 어떤 수련도 필요 없고 어떤 흠도 없는 완전한 <>의 느낌에 강렬하게 집중한다면

그 느낌이 여러분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확 끌어올릴 것입니다.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목표는 깨달음 자체나 공에 도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깨달음의 삶을 사는 것, 공의 삶을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과정일 뿐이고 깨달음의 삶을 사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몇 년씩 보낸다는 것은 생각해볼 일입니다.

 

<내가 완전한 존재라면 혹은 신이라면 지금 무엇을 하겠는가? >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고 눈을 감고 무엇을 할지 잠시 생각해보세요.

만약 <나는 그저 스스로 존재 한다>라는 대답을 하셨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신이 하는 단 한 가지 일은 오직 스스로 존재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신이다> 라고 하다보면 빠르게 궁극에 도달할 거라고 전에 말했습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나는 신이다> 라고 하면서 신이라면 존재하는 것 말고는

결코 하지 않을 심상화나 여러 특별해 보이는 기술적 측면에 열중한다면

한쪽에서는 위로 들어 올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밑으로 잡아당겨서 진전이 늦을 것입니다.

 

신처럼 스스로 존재만을 할 때 세상이라는 거울에 그 신의 모습이 비춰져서

가장 빠르게 신과 똑같이 무한하고 전지전능하고 만물과 하나인 신의 영역에 있게 됩니다.

먼저 그것인 것처럼 그것이 이미 되어있는 존재의 상태일 때 그것이 됩니다.

쉽게 말해 신이 하는 것처럼 존재만을 할 때 우리는 신이 됩니다.

 

당신은 창조자라는 말을 많은 곳에서 듣다보니 창조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느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자라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고

창조란 말을 알든 모르든 우리는 항상 창조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마음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항상 생각하는 우리는 항상 창조하고 있습니다.

심상화란 말을 알든 모르든 하나의 생각을 저항 없이 꾸준히 지속하면 현실로 나타납니다.

생각의 유일한 기능은 그 생각을 물질화 시키는 것이라서 현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창조를 넘어서는 궁극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존재함은 창조할 필요도 없는, 창조를 넘어서는 신의 영역입니다.

모든 것이 애쓰지 않아도 조화롭게 자리를 잡는 완전함의 영역입니다.

지금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완전함의 영역에 있는 것이고 존재하는 만큼 완전합니다.

 

삶이란 결국 무엇과 동일시하고 무엇을 받아 들이냐 입니다.

무한한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본성을 받아들일 것인지

에고에 초점을 맞추고 에고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신과 직거래?를 해야 합니다.

나와 신 사이에 번뇌뿐만이 아니고 예수나 부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정화해서 깨끗한 상태나 제로나 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로나 공의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 자체가 아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신이고 신이 나인 것입니다.

 

이 길은 어렵고 엄청난 수련을 해야만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선생들을 넘어서보세요.

선생은 추종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넘어서라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보다 내면의 완전함에 인도를 맡기세요.

본성은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으니까요.

 

제가 전에 백 만 번의 사랑과 감사를 말했을 때 많은 분들이 계수기까지 사서

하신 걸로 압니다.

( 그럴 줄 알았으면 그 때 계수기 회사 차리는 건데 때를 놓쳤습니다.~~)

 

그런데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분리의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사랑이 필요하고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또 나는 누군가 혹은 무엇엔가 감사합니다.

<~~합니다> 에는 나와 남이 따로 있는 이원성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 안에서는 사랑하고 감사할 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사랑과 감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고 좀 더 깊이 살펴보는 겁니다.

전 지금도 주변사람들에게 다른 것보다 이 두 마디의 말을 권하고 있고

예전에 새마을 운동 했듯이 온 국민들이 하면 개인과 나라의 운명이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아직 이원성 안에서의 움직임이라 99점 정도의 수련입니다.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과 감사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과 감사로 존재하는 그 존재의 느낌을 느껴보세요.

 

글이 길어졌습니다만 결론은 죄의식, 두려움, 온갖 번뇌 등은 나쁘고

그런 나쁜 것들을 가지고 있는 나는 불완전하고 아직 멀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신의 마음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것들을 다 지우고 난 다음에야 완전함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무한은 유한한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고

완전은 불완전해 보이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불완전해 보이는 것도 신의 눈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우리의 본성은 완전함의 영역에서 그 어떤 나쁜 것도 제외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 모습 이대로 완벽합니다.

 

모든 분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완전함을 받아들여서

영성 단체, 카페, 책들이 모두 사라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 봅니다.

 

작성자 ; 징검다리

출처 : 신인류 항우생명
글쓴이 : 心宇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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