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只有文殊知此數 前三三與後三三 (지유문수지차수 전삼삼여후삼삼)
只有文殊知此數 前三三與後三三 (지유문수지차수 전삼삼여후삼삼)
일반 세간의 數를 초월한 수. 前三三與後三三, 앞에 셋셋 뒤에 셋셋. (벽암록 碧巖錄 35則 頌)
법회 [法會]: 특별법회(개원법회, 동사섭법회, 무차선법회, 방생법회,
只此更無回僻處 (지차갱무회벽처) 森森頭角畵不成 (삼삼두각화불성)
只有文殊知此數 (지유문수지차수) 前三三與後三三 (전삼삼여후삼삼)
千峰盤屈色如藍 (천봉반굴색여람)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誰謂文殊是對談 (수위문수시대담) 어느 누가 문수보살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하는가? 堪笑淸凉多少衆 (감소청량다소중) 어이없고 우습구나, 청량산에 대중이 몇명 되냐고 묻다니,前三三與後三三 (전삼삼여후삼삼) 앞에도 3. 3이고 더불어 뒤에도 3. 3 이라네.
금강굴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푸른데, 어느 누가 문수와 이런 이야기 나누었다 말하는가.우습다, 청량산에 수행자가 몇이냐고 묻다니, 여기도 셋 셋, 저기도 셋 셋이라네.千峰盤屈色如藍. 誰謂文殊是對談. 堪笑淸凉多少衆, 前三三與後三三.(천봉반굴색여람. 수위문수시대담. 감소청량다소중, 전삼삼여후삼삼.)
문수보살이 자주 化現한다는 오대산을 무착이 유람하고 있었다. 유람하는 중에 어느 곳에서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왜 이곳에 왔느냐는 물음에 무착이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왔노라 대답하자 노인은 앞장 서서 어떤 절로 안내했다.균제동자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고 갔다.
노인이 무착에게 ‘요즈음 어디 있다가 이곳으로 오는가.’ 묻자 남방에서 왔다고 하였다.‘남방의 불법은 어떠한가.’ ‘말법시대의 비구들이 계율이나 조금 받드는 정도 입니다.’‘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 ‘한 삼백에서 오백명 정도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무착이 노인에게 물었다. ‘이곳의 佛法은 어떻습니까.’‘범부와 성인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네.’‘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여기도 셋 셋, 저기도 셋 또 셋이라네.’
황금으로 장엄된 法堂에서 무착은 유리잔으로 차대접을 받았다. 노인이 유리찻잔을 들고서 말했다. ‘남방에도 이런 物件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평소 무엇으로 차를 마시는가.’ 무착은 끝내 대답을 못했다. 무착이 하루밤 머무름을 청했으나 노인은 허락하지 않고 균제동자를 시켜 문 밖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무착이 도중에 균제동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여기도 셋셋 , 저기도 셋셋 이라고 말씀하였는데 그건 대체 몇사람을 말하는 것일까.’그러자 균제동자는 대답 대신에 무착에게 ‘대덕(大德)이여’하고 불렀다. 무착이 얼떨결에 대답을 하자, 균제동자는 ‘이것은 몇 사람이나 됩니까.’하고 되물었다. 무착이 대답을 못하였다.
절 문밖으로 나오자 균제동자는 게송을 하나 읊었다. ‘ 한 순간(瞬間)의 마음 닦음이 칠보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탑을 세움보다도 낫다. 칠보탑은 언젠가는 무너져 먼지가 되고 말지만, 일념으로 맑은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若人靜坐一須臾 勝造恒砂七寶塔 寶塔畢竟壞微塵 一念正心成正覺’ (약인정좌일수유 승조항사칠보탑 보탑필경괴미진 일념정심성정각). 이에 무착이 균제동자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여기가 무슨 절이냐고 묻자 균제동자는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뒤를 가리켰다. 무착이 머리를 돌리는 순간에 균제동자도 절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텅~빈 산골짜기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노인을 만났던 곳에서는 흰구름이 솟아올라 계곡 전체를 순식간에 덮어 버렸다. 그 때 문수사리보살이 큰 사자를 타고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갑자기 동쪽에서 검은 구름이 솟아오르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무착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이었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그곳을 금강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선화(禪話)에 대한 설두화상의 위의 송에 빗대어 다음과 같은 송을 붙인 사람도 있다. ‘사바세계 확 터져 두루두루 빼어난 법당이어서, 어디서나 모든 것이 문수보살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네. 이 말 끝에서 부처의 눈을 열 줄 모르면, 돌아서서 보아도 단지 푸른 산과 바위만 보일 뿐이로다. 廓周沙界勝伽藍 滿目文殊是對談 言下不知開佛眼 回頭只見翠山巖’ (확주사계승가람 만목문수시대담 언하부지개불안 회두지견취산암), 일천 봉우리는 굽이굽이 쪽푸른데 어느 누가 문수와 이런 이야기 했다고 말하는가.
무착은 문수보살과 하루 종일 이야기 나누고도 정녕 문수보살을 몰랐었다. 범부와 성인이 섞여 살고있고 용과 뱀이 함께하는 청정도랸(淸淨道場)에서 末法 時代의 비구들이 계율을 받드느니 안받드느니 하는 分別心만 보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세상 사바세계 어디서나 모든 것들이 문수로서 法(진리)를 말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것들이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시시때때로 치솟아올라오는 貪瞋癡 (탐진치) 三毒心이라는 검고검은 구름에 文殊 즉, 텅~비어 밝은 空의 지혜(空性), 本性, 佛性, 法性, 眞性, 眞心, 깨달음, 진리, 참나, 진짜 나가 가려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텅~빈 본바탕의 밝은 空의 智慧인 문수는 영원히 언제나 이 세상 모든 것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맑고 투명한 유리보배잔 즉, 텅~빈 맑고 밝은 본바탕의 空의 智慧(空性)으로 매일 차 즉,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것들이 보배잔, 眞理 즉, 텅~빈 맑고 밝은 본바탕의 空의 智慧인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청량산에 수행자가 몇이냐는 물음 자체가 우스운 질문일 뿐이다. 삶의 순간 순간(瞬間 瞬間)에 모든 사람들은 수행자가 되기도 하고 또한 마구니 즉, 시비 분별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망상 번뇌 상념 의식 마음 즉, 삼독심으로 꽉찬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의 노예인 중생이 되기도 한다. 앞에도 셋셋 뒤에도 셋셋, 옛날에도 지금 여기에도 다음에서도 수행자와 마구니가 함께 뒹굴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살펴보자. 탐심, 진심, 치심(貪心, 眞心, 癡心 즉, 욕심 내는 마음, 화 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三毒心에 뿌리가 없으니 수행자이거나 마구니에게 뿌리 즉,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實體가 있을 수 없다. 과거 옛날에서도 지금 여기에서도 다음 저기에서도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만물이 모두 참다운 수행자들일 뿐인 것이다. 모두들 우주허공(宇宙虛空)에 충만한 文殊, 즉 智慧의 法門 즉, 법비(法雨)를 깜냥껏, 스스로의 근기(根機)껏, 스스로의 마음크기 만큼만 받아들여 누리고 있을 뿐이다. 텅~빈 바탕 空의 智慧를 상징하는 文殊가 머물고 있다는 淸凉山 뿐만이 아닌 이 세상 사바세계 전체가 모두 빼어나고도 뛰어난 가람, 청정도량, 법당이다. 處處法堂 事事佛供(처처법당 사사불공)이다. 이 세상 어디나 법당 아닌 곳이 없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불공이 아닌 일이 없다.
비바람 먹구름 뒤에 영원하게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항상 빛나고 있듯이, 이 세상 이 현실 이 삶에서 마주치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을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으로 부처로 보던지 마구니로 보던지 언제나 영원히 그것들의 天眞佛性, 宇宙大光明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평소에 마시는 찻잔과 차 즉, 천진불성, 우주대광명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나 하자.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언제나 영원하게 지금 여기 이 순간 텅~빈 본바탕, 공간의식 하나 이 자리뿐이다. 행행본처 지지발처, 역천겁이불고 선만세이장금, 즉시현금 갱무시절 총무실법(行行本處 至至發處,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卽時現今 更無時節 總無實法)이다. 가도 가도 본래 그 자리고 도착하고도착해도 출발한 그 자리다. 천겁의 세월이 흘렀어도 옛날이 아니고 무한한 시간이 돌고 돌았어도 언제나 영원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뿐이다. 즉,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뿐이다. 다른 시절은 없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만물이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제행무상 제법무아(諸行無常 諸法無我)이다.
-得路득로, 선도회 금수산 영하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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