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 깨침이란 무엇인가?
단박 깨침이란 무엇인가?
설정 스님
불가의 게송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원각산중생일수(圓覺山中生一樹)
개화천지미분전(開花天地未分前)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
부재춘풍부재천(不在春風不在天)
圓覺山에 자라는 한 그루 나무
천지개벽 以前에 꽃을 피웠네
그 꽃은 푸르지도 희지도 검지도 않고
봄바람 안 불어도 無所不在하게 피어 있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사람이 죽어 地獄에 갈 때 佛性도 따라갑니까.”
“안 따라갑니다.”
“왜 안 따라갑니까.”
“마음자리가 常住不滅하여 生滅法이 아니기 때문에
地獄이나 天堂에 가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地獄에 들어갑니다”라고 말합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地獄에 들어가는 것은 중생업연(衆生業緣)이라.
우리가 苦痛 받는 것은 業緣으로 苦痛 받는 겁니다.
業緣은 生滅法입니다.
法門은 理論을 갖다 붙여 말로 表現할 수 없습니다.
眞理는 말에서 떠나 있는 겁니다.
生覺으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법화경〉에서
“이 法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禪師들의 말은 많습니다.
唐나라 때 유명한 선사였던 마조 스님(馬祖道一ㆍ709~788)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자주 쓰셨습니다.
어느 스님이 마조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은 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합니까.”
“어린아이 우는 것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다.”
그 스님이 또 짓궂게 묻습니다.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을 때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부처도 마음도 아니다.” 그 스님이 또 물었습니다.
“어린아이 울음도 그쳤고 그 狀態가 아닌 사람이 보면 뭐라 할 겁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위 세 가지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오면 어떻게 말씀하실 겁니까.”
“대도(大道)나 닦아라"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선방에 가면 大門에 ‘이 속에 들어왔으면 모든 알음알이를 다 놔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佛敎에서 말하는 無念은 보리심, 眞如, 正念을 말합니다.
그럼 정념(正念)은 무엇이고 사념(邪念)은 무엇입니까.
有無, 善惡, 苦樂, 取捨를 나누는 生覺을 하면 邪念입니다.
이 邪念을 떠나면 正念, 旽悟입니다.
日常生活에서 어떻게 禪을 해야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우선 마음부터 變化시켜야 합니다.
衆生은 業과 環境에 끌려다니며 삽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環境이나 狀況에 절대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팔풍(八風)에 흔들리지 말라고 注門합니다.
살다보면 苦痛스러운 것도 괴로운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조계종 종정이셨던 효봉 스님(曉峰ㆍ1888~1966)도
‘이쪽저쪽에도 떨어지지 마라. 이쪽저쪽에도 발붙일 수 없는 見解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무위진인(無位眞人)을 만날 것이다. 그것이 너의 本來 面目이다’라고
게송을 지으셨습니다.
看話禪을 하는 우리들은 話頭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禪家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활구하(活句下)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와 더불어 스승이 되지만
사구하(死句下)에 얻은 바가 있다면 自身도 救濟하지 못한다.’
부처님의 眞面目을 가르친 것이 화두선입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趙州ㆍ778~897)께 물었습니다.
“祖師가 西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佛敎의 眞理가 무엇입니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똥 막대기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떤 스님이 또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生命이 있는 모든 것에 佛性이 있다고 했는데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다.” 그 때 무(無)는 유무(有無)의 無가 아닙니다.(絶對의 無)
이것이 간화선입니다.
선사들이 상대에게 화두를 던져줄 때는 生覺으로 헤아릴 수 없도록 합니다.
나옹 스님(懶翁慧勤ㆍ1320 ~ 1376)은 한 刹那 사이에 9百 생멸(生滅)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生滅이 일어나고 꺼지고 할 때 그 瞬間에 話頭를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話頭를 들다보면 모든 妄想은 끊어지지만 話頭가 없어지고 그냥 즐겁고 便安하기만 하는 겁니다. 그것을 무기(無記)이라고 합니다.
煩惱妄想이 끊어졌을 때 話頭가 分明히 잡혀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寂寂惺惺)하다고 합니다.
話頭 들 때 앞뒤가 다 끊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동정일여(動靜一如)해야 합니다.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恒常 話頭가 가만히 자리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오매일여(寤寐一如)해야 합니다.
잠잘 때도 들어가 있어야 하고 깨어있을 때도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절에 가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표현을 합니다.
百尺이나 되는 까마득한 대나무 끝에서 죽기를 무릅쓰고 한발을 내딛는다는 겁니다.
모든 煩惱妄想 다 쉬어버린 것은 아라한과(阿羅漢果)쯤 됩니다.
그것을 멸진정(滅盡定)이라고 합니다. 滅盡定에 간 사람을 見性했다고 합니까?.
八風에 덜 흔들리면서 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점차로 나아가다 보면 한번에 꿈을 깨는 極的인 狀況이 옵니다.
모든 煩惱妄想의 먹구름이 없어지고
淸淨한 自性이 나타나서 永遠히 사는 길이 佛法에 있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核心입니다.
수지왕사일륜월(誰知王舍一輪月)
만고광명영불멸(萬古光明永不滅)
누가 알 것인가
왕사성 위에 높이 떠 밝게 빛나던 달빛은
永遠히 꺼지지 않는 眞理의 빛이라.
부처님은 왕사성에서 成道해 모든 衆生들에게 眞理의 빛을 아낌없이 나눠주셨습니다.
그 빛은 부처님뿐만 아니라 一切衆生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永遠한 智慧의 빛을 찾아 다시는 生死에 헤매지 않도록
熱心히 正進해 주실 것을 부탁을 드리면서 오늘 법회를 마치겠습니다.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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