祈禱, 念佛, 坐禪하라 _ _ _ 혜명(慧命)을 具足하리니
/종범 스님/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범부(凡夫)와 보살(菩薩)의 差異가 무엇이라고 生覺하십니까.
凡夫라 함은 깨치지 못한 衆生을 말하는 것이고
菩薩이라 함은 깨치고 살아가는 衆生을 뜻합니다.
凡夫는 欲求, 欲望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곧 중생의 삶을 말하는데,
恒常 不滿을 갖고 있으며 生命을 유지하기 급급한 삶을 사는 이를 말합니다.
凡夫의 삶은 옷 입고, 밥 먹고, 물 마시고, 호흡하는 것을
끊임없이 連續해 가는 欲求的인 삶입니다. 따라서 그 生名을 延長시키고 保護하기 위해
凡夫는 끊임없이 財物과 權力, 名譽를 貪하게 됩니다.
人間이 求하고자 하는 것을 區分해보아도
이 세 가지 財物, 權力, 名譽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죽기 直前까지도 欲求를 버리지 못하고
‘나를 어떻게 해 달라, 내가 어디로 가느냐’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이런 모습들은 모두 마지막까지도 ‘求하는 欲求’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感情들입니다. 따라서 중생은 生命하나 유지하기 위해 온갖 것을 求해야 하기 때문에
凡夫로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生命은 本來, 원성실성(圓成實性)입니다.
生命은 圓滿하게 이루어졌고(圓成). 참되게 이루어졌는데(實性)
凡夫는 이 生命의 眞實을 圓成으로 안보고 죽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結局 永遠한 것이 아닌데 永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生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중에 生命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모두 生命이 있다고 해도 다 같은 生命은 아닙니다.
凡夫의 生命과 菩薩의 生命은 같은 生命이라 해도 根本的으로 다른 것이지요.
生命이란 本來 취산(聚散 : 모이고 흩어지고))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가 흩어지는 것,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이슬이 맺혔다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必要가 없습니다.
이런 이 事實을 아는 것이 바로 智慧입니다.
生命은 本來부터 삶과 죽음을 超越한 存在이며 이 眞理을 確實히 알고 나면
恐怖感이 전혀 없는 無有恐怖가 되는 것입니다.
곧 求하면 머슴이 되고 드러내면 主人이 되는 것입니다.
연못에 가서 달을 봤는데 智慧가 없는 凡夫는 달이 연못 속에 있는 줄 알고 그 달을 貪합니다.
그리고 달을 건지기 위해 연못으로 ‘풍덩’ 빠져버리지요. 그런데 달은 연못 속에 없습니다.
그런데 凡夫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問題가 생기는 겁니다.
끝없는 欲求.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菩薩의 삶은 무엇을 추구하는 삶일까요?
菩薩의 삶은 自己 靈魂을 있는 그대로 實現시키는 드러내는 삶입니다.
어디에서 求하는 것이 아니라
自己 魂 , 自己 힘을 그대로 나타내고 實踐하는 삶이 바로 菩薩의 삶입니다.
靈魂을 佛性이라고도 하고 또 마음(心)이라고도 하는데,
靈魂의 길
마음의 길
佛性의 길이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佛道입니다.
불도(佛道).
따라서 菩薩은 佛道로 살아갑니다.
불(佛)이 무엇입니까.
깨우침입니다.
깨우침의 길로 살아가려면 우선 智慧가 있어야 합니다.
이 智慧가 나타나면 慈悲, 그것 慈悲가 나타나면 원력(願力)이 되는 것입니다.
慈悲는 두려움 없는 能力을 드러내는 行爲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慈悲가 안 나올까요 ?
그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 없이 自己 靈魂의 힘, 自己 佛性의 힘, 自己 靈魂의 能力을 자꾸 드러내면
그게 慈悲가 되는 것입니다.
願力은 그 慈悲를 끊임없이 實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願力입니다.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凡夫의 삶과 菩薩의 삶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뒤집어보면 종이 한 장 差異입니다.
왜 종이 한 장 차이냐.
答은 智慧에 있습니다.
智慧를 얻으면 됩니다.
또 智慧를 얻는 過程이 곧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智慧를 얻기 위한 過程, 實體를 바로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꾸자꾸, 하루하루 만들어 가면 됩니다.
智慧를 만들어가는 길, 우리는 祈禱를 通해 그 길에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祈禱가 점점 깊어지고 安定되면 生命이 活發해지고
祈禱가 얕아지고 不安定하면 삶이 거기서 그치는 것입니다.
菩薩은 欲求의 삶이 아니라 靈魂의 힘 佛性의 힘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 實現의 삶입니다.
求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삶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밀(波羅蜜)이라고 말합니다.
波羅蜜은 ‘이룬다, 된다’ 라는 뜻이며 그 根本이 智慧波羅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입니다.
이러한 般若波羅蜜을 慈悲願力으로 끊임없이 드러낼 때
거기에서 삶의 깊은 意味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凡夫衆生은 般若波羅蜜을 慈悲願力으로 끊임없이 드러내는 일 그게 잘 안됩니다.
그 理由는 智慧가 不足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智慧를 키우는 訓鍊을 反復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된 否定的인 生覺을 하면 濁한 氣運이 몸속에서 돌아 눈과 귀를 막아
自身을 나쁘게 變化시킬 것이며, 坐禪을 많이 하고, 경(經)도 많이 읽고, 기도도 하고,
보시도 많이 하면 내 몸에 있는 두려움 없는 좋은 生覺의 힘이 善行을 通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安定을 주는 것이 重要하며
마음의 安定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경과 기도, 좌선이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절로 智慧가 깊어지고 感情이 安定돼 菩薩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父母는 나에게 生命을 주었고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혜명(慧命)을 주셨습니다.
菩薩의 삶은 生命에 依해 사는 게 아니라 慧命으로 사는 것입니다.
慧命은 智慧의 世界를 말합니다 곧 生命의 實體를 바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凡夫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菩薩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慧命을 얻기 위해 精進합시다.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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