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실상은 인간성의 본바탕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에너지이며 부처의 자리다

장백산-1 2012. 12. 20. 15:56

 

 

 

 

고행정진해 온 뜻을 묻다 /청화스님

 

     평생을 고행정진해 온 뜻을 묻다 /청화스님

    사람들이 나에게
    “평생을 고행정진해온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종종 묻습니다.

    부처님과 중생들에게 빚진 게 많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해야 참사람이 됩니다.
    修行이란 '人間性의 本來 자리를 깨닫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불교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實相이라고 알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그것은 꿈 같고 허깨비 같은 虛相일 뿐입니다.
    虛相이 虛像임을 알고 實相을 깨달아야지요.

    實相은 人間性의 본바탕인 同時에
    宇宙의 生命에너지이며 부처의 자리입니다.
    하루라도 공부하면 그만큼 실상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本來는 부처의 性品을 가졌는데,
    이를 가리고 있는 것을 없애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람이 되지요.
    聖者가 되는 게 人間으로서 最善의 理想이요,
    幸福 아니겠습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수행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해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환희심이 충만해집니다.
    수행을 하면 潛在的으로 可能性으로 있던
    慈悲와 智慧, 幸福이 啓發되는 것입니다.

    절제하고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행복과 평화란 없습니다.
    인간이 지금처럼 방만하게 살면
    결국엔 자신도 사회도 파멸에 이르게 되지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구가 급팽창한 것만큼
    인간의 욕망은 이성적으로 줄여야 합니다.
    자원이 고갈되면 사람도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自然科學的으로 따지자면,
    人間의 몸은 여러가지 物質이 因緣따라 모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내 몸의 細胞조차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릅니다.

    참으로 無常하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몸을 내 몸이라고 生覺하고
    實際로 ‘있다’고 生覺해서 假相인 줄을 모르고 있어요.

    生命이란 本來 모양도 이름도 없지만
    無量無邊의 可能性을 가진 것이 生命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5척 남짓한 몸뚱이에 들어있는
    意識만 生命이라고 生覺하지만,
    實相은 온 宇宙의 森羅萬像이 다‘한 生命’입니다.
    天地 宇宙가 오직 '한 생명'이므로
    모두의 性品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때그때 결단을 내려서 잠시라도,
    가령 사흘 정도라도 冥想을 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意志를 가지고 實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聖者들이 荊棘을 헤쳐 밝혀놓은 永生의 길을
    瞬間의 欲望 때문에 外面해서야 되겠습니까? 
     

    해솔님이 올린 법문 - -무진장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