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理는 아는 게 아니라 보는 겁니다
큰스님은 한평생 유명산천을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며 오직 念佛과 參禪 修行에만
專念함으로써 마음의 눈이 열린 善知識으로 알려진 분이다.
▷ 어떤 修行法으로 마음을 닦는 게 좋습니까?
“염불이 근기에 맞으면 염불을 하고 참선이 맞으면 참선을 하면 된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모든 것에 道가 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一念이 되면 부처의 길이 열린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一念으로 가면 道를 이루는 길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다만 부지런히 工夫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工夫하지 않으면 百千億 劫을 살아도 괴로움에서 못 벗어난다.”
▷ 看話禪에는 1700공안이 있는데 어떤 화두로 공부하는게 바람직한가요?
“어떤 것이든 다 중요한 공안들이다.
다만 1700공안 중에서도 이치로 아는 선, 즉 의리선(義理禪)은 곤란하다.
따라서 마땅히 ‘이뭣고’ 공안이나 ‘판치생모(板齒生毛)’,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공안을
들어야 한다.
나머지 공안은 지식과 이치로써 풀어낼 수 있어 궁극의 경계에 도달하기 어렵다.”
염불이든 참선이든 一念이 중요
▷ 화두를 잘 드는 방법이 있습니까?
“화두를 제대로 참구해야 일념도 된다.
예컨대 처음에는 ‘조주 스님이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점차 화두가 ‘왜 그랬을까?’ ‘왜?’로 짧아지게 되고 그렇게 지속되다 보면
의문만이 가득한 一念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一念 또한 번뇌망상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一念에는 着도 妄想도 없다.
一念인데 거기에 어떤 것이 붙을 수 있겠는가.”
▷ 工夫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조주 스님 이후 지금까지,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조주 이전보다도 도인이 나오지 않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믿음이 부족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믿는다.
工夫를 하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초보불자의 경우 믿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지장경』을 읽어야 한다.
『지장경』을 천독 이상 독송하게 되면 믿음이 견고해진다.
이 바탕 위에서 염불도하고, 참선도 해야 한다. 『지장경』 독경은 일종의 기초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장경』에 대해서는 스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왜 하필 『지장경』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나오는 소리다.
살생하지 말라, 사음하지 말라 등 마땅히 행해야 할 것들을 적어 놓은 경을 두고 비하의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아직 基礎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금강경』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際相非相 卽見如來’의 사구게를 들려준 들 알아들을 理 있겠는가.
지장경은 세속의 학력으로 친다면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집을 지을 때 터전에 해당되는 경이다.
지장보살은 이 宇宙에 안 계신 곳이 없다.
宇宙에 꽉 차 있는 菩薩이다.
지장보살은 중생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보살이고 기본이 되는 보살이므로 大源本尊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보살이다.”
▷ 이곳에 오다가 『금강경』의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을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덕산 스님이 어떻게 했어야 노파에게 떡을 얻어먹을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 이런저런 思辨을 붙이는 것은 妄想이다.
마음자리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分別心이 자리할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事實 法이란 것이 물을 것도 답할 것도 없는 것이다.
묻고 답하는 사이에 이미 그르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知識일 뿐이고 修行을 通해 깨닫는 것이 重要하다.
마음과 지식은 서로 相關이 없다. 허깨비일 뿐이다.
佛性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도 허깨비 놀음이다.
오직 한 法으로 돌아가 一念이 되어야 한다.
一念이면 모든 것이 끊어진다.”
▷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다. 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당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한 까닭은
가르침 自體가 方便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着을 끊으려면 一念이 되어야 한다.
一念이 되면 妄想이고 着이고 붙을 곳이 없다.
과거 미래 현재 어디에건 마음엔 과거와 안팎이 없다.
내가 질문 하나 던지겠다. 여기에 컵이 있다.
이 컵이 네 마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 밖에 있는가?
아는 이 있거든 일러보라.…(침묵)… 마음엔 안과 밖이 없다.”
믿음 견고해야 깨달음도 가능
▷ 염불과 참선의 병행은 어떻습니까?
“염불로 신심을 다지고 화두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니 공부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안 될 것은 없겠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에 전념하는 것보단 못하다.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수행을 하면서 경계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부가 좀 된 사람들은 자칫 驕慢心에 빠지거나 自己도 모르게 相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道가 높아질수록 魔場도 거세지는 법이다.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돼 헤매는 것이 무릇 거의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된 병이다.
요즘 보면 간화선만이 최상이고 묵조선은 하급으로 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一念의 경계에 오르게 되면 話頭건 相이건 着이건 아무것도 없는 義斷의 狀態가 되어
말이 끊어진 狀態에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 外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묵조라 했는데
이를 두고 分別心을 갖는 일이 횡행하니 한심한 일이다.
처음부터 비쳐볼 수 있다면 화두가 무슨 소용인가?
날개도 나지 않은 새끼 새가 날겠다고 날치니,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떨어져 죽을 것이 확실해 대혜 스님께서 화두(공안)를 제시한 것인데, 이제와서 화두선이 최상이고 묵조선은 보잘 것 없다고 하니 개탄스런 일이다.
허깨비 놀음에 휘둘리지 마라
▷ 저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修行을 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財産을 모으더라도 아무 所用이 없다.
수행해서 마음공부를 한 結果라야 끝내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데에 허깨비 놀음에 휘둘려선 안된다.
나라는 生覺,
너라는 生覺,
영원하다는 生覺,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生覺을
깨뜨리고 그 허깨비 妄想에서 完全히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면 성낼 것도, 욕심을 부려야 할 것도 다 사라진다.
딱히 꼬집어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욕을 먹든 칭찬을 듣든 흔들릴 연유가 무엇인가.
어떤 狀況에서든 平常心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道를 이룬 것이다.”
<법보신문에서>
-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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