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행복 만들기 / 종범스님
生活을 행주좌와(行住座臥) 또 시청언동(視聽言動)이라 표현 하였다.
또 예전 분들이 편지를 쓸때에 면식(眠食)무탈 한지, 언동(言動)이 平定한지를 묻곤 하였는데,
이러한 것이 形式的으로 나타난 日常生活이라 하겠다.
이 外에 內面的인 欲求가 있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五欲이라 정의 하여,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라 하였다.
財는 재물로 財物慾을 말하는데, 재물로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재물로 인한 고통이 더 많은데 이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色은 이성에 대한 욕구를 말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필요이상으로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食은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구로 적당한 음식은 섭취해 줘야 하지만
많이 먹어서 생기는 고통이 먹지 못해 받는 고통보다 더 큼을 알아야 한다.
名은 이름 즉 명성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는데,
이름이 있어 기쁘기도 하지만 이름을 내어 고통을 받음도 큰 것이다.
睡는 수면에 대한 욕구, 즉 편안함에 대한 욕구이다.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은 과로 하거나 과식 함으로써 생기는데,
필요 이상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맹자는 말하길 민(民)은 식색(食色)이라 判斷 하였다. 옳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 옛말에도 금강산도 食後境이라는 말도 있고,
民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이라 하여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하여
먹는 것을 중히 여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알맞게 먹고 毒氣가 없는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빛깔과 맛을 좋게 한다며 食品添加製나 調味料를 많이 쓰는데,
이들은 毒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을 잘 수정하고 산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幸福이란 기쁨이다. 기쁨은 基本環境이 만들어 져야 하는데
첫번째는 平和인데 사람과 사람, 또 여러가지의 關係를 잘 만들고 維持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自由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위에서 自身을 拘束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結局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執着을 함으로써
빠지고, 매이고, 얽히고, 눌려 自由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獨立하여야 한다.
自身의 問題를 自己가 責任을 지고, 自己의 問題를 스스로 解決 해 갈 때 自由는 온다.
세번째는 安樂이다. 便安하고 즐거움이 있어야 기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이 없으면 뭘 하든 허탈해지고,
未來에 대한 幻想을 希望으로 알고 살다보면 나이가 들수록 힘이 빠지고 허망해 지는 것이다.
젊을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살지 못했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젊을 때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산 사람은 죽음도 즐거이 맞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막연한 希望만을 가지고 산 이들은 죽음에 直面하여 虛妄해지는 것이다.
기쁨은 自己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기쁨은 生活 속에서 만들어 가야 하는데
첫째는 이루는 것이고,
둘째는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것이 第一 좋다. 나누기 위해서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目的과 價値觀이 없이 이루려고만 하고있다.
財物도 各者의 主人이 있을 때 그 빛을 發하게 되므로 成就가 아닌 나눔이 第一 重要한 것이다.
모은 財産을 保管하고 지키기만 한다면 倉庫지기 머슴밖에 되질 못하며,
나눌 때에야 비로소 그 財物의 主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布施가 더 중요하므로 第一 먼저 나오는 것이다. 財物도 그렇지만 知識이나 技術, 기쁨등 모든 것은 나눌 때에 價値가 있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서 고통을 받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忍辱을 설명하고 있다. 고통을 당할 때에 같이 행동을 한다면 고통을 주는 이와 똑같을 뿐이다. 無生忍이라 한다. 精進은 熱心히 할 일을 하는 것인데, 할 일에만 集中해서 해야 한다. 보시는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精進으로 이루어야 하는데 精進은 集中하는 禪定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고, 살피는 智慧로 뒷받침 될 때 完全한 精進이 되어 이룸을 이룰 수 있고, 육바라밀을 크게 둘로 본다면 布施와 精進이 되고, -결가부좌 생활(명상) 참선센타 -
나눔을 불교에서는 布施라 하였다. 보시는 투자도 아니고 뇌물도 아니다.
어떤 生覺으로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눔을 위해서 이룸이 필요한 것이다.
나눔을 위해서 육바라밀 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 가 必要하다.
육바라밀의 性格을 보면 이룸과 나눔이다. 이룸은 精進이요, 나눔은 布施이다.
精進으로 이루어서 布施로 나누면 거기에 幸福이 있는 것이다.
보시, 지계, 인욕은 이타행(利他行), 자비행(慈悲行) 이라 하며,
정진, 선정, 지혜는 자리행(自利行), 지혜행(智慧行)이라 한다.
自利行도 基本條件이 갖춰져야 하고, 利他行도 基本條件이 있어야 하므로
各 세가지씩 條件을 明示한 것이다.
나누더라도 다른 이에게 苦痛을 주면 안된다.
이것이 持戒인데 고통을 준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므로
고통을 주지 않기위해 戒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한쪽에 나누어 주기위해 다른 쪽에게 고통을 준다면
보시의 意味가 없으므로 지계가 따라 오는 것이다.
누가 먼저 하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완전한 보시가 되려면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하고, 고통을 받을 때에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忍辱이 어렵다고 한다. 忍辱의 基礎는 감내(堪耐)이다.
苦痛을 느꼈을 때에 견디어서 참아내는 것이다.
그 다음은 조복인(調伏忍)이라 하여 어렵지만 좋은 일이라 生覺할 때에 中斷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무생인(無生忍)인데, 금강경의 인욕선인의 인욕을 말하는데,
가리왕인이라는 폭군이 인욕선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도 火내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하여
火를 내지 않기 때문에 참을 일도 없는 것이다.
火를 내지 않는 마음의 狀態에서 布시를 할 수 있다면 이것이 眞情한 布施인 것이다.
이것이 禪定이다. 禪定을 다른 말로 하면 그침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그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智慧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觀察하는 것,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分看하는 것이다.
幸福의 完成은 布施에 있다고 하였는데,
布施도 다른 이에게 損害를 끼치지 않고 해야 하는 持戒와,
내가 損害를 입더라도 報複하고 對立하지 않아야 한다는 忍辱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하나로 보자면 布施이다. 보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結局 幸福은 나눌 때에 있다.
나눌 때에 自由도 생기고 安樂도 생기며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자비보시를 하라 함은 결국 幸福의 主人이 되도록 하기 위한 삶의 智慧인 것이다.
그러므로 육바라밀로써 생활 속에서 행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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