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겉모습과 행동은 각양각색이어서 비교할 수 있다. 몸이 큰 놈이 있고 작은 놈이 있으며, 행동이 느린 놈이 있고 빠른 놈이 있으며, 힘이 센 놈이 있고 약한 놈이 있다. 기는 놈을 제치고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다.
객관의 세계에서는 비교가 가능하기에 우열이 있고, 강약이 있고, 미추(美醜)가 있고, 대소(大小)가 있다. 객관세계의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다. 진화생물학에서 규명해 온 갖가지 형태(Morphology)들이다. 마치 밖에서 본 자동차와 같이 무수히 많은 생명이 있고 그 모습과 행동 역시 제각각이다. 그러나 주관은 하나다.
나에게 보이는 자동차의 외형은 여럿이지만 그 내부가 보이는 것은 내가 탄 자동차 하나뿐이듯이 주관은 오직 하나다. 내가 맛 본 소금 맛을 남이 알 수 없고, 내가 맡은 국화 향기를 남이 알 수 없으며, 내가 겪어온 감정의 질곡을 남이 알 수 없다. 이 모두 남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체험’들이다.
객관은 우열 있지만 주관은 하나
부처님 관점…진화 초월한 절대적 삶
불교에서는 일체(一切)를 5온(蘊)으로 구분한다. 5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데 간략히 번역하면 ‘형상, 느낌, 생각, 의지, 마음’이다. 이는 자동차 내부에서 자동차를 보듯이 내가 나의 심신을 바라봐서 발견한 구성요소들이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의 12처 분류도 그렇고, 이에 6식을 추가한 18계의 분류도 그렇다. 내가 주관적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다.
객관에서는 비교가 가능하기에 우열이 있다. 남이 생각하는 나, 남에게 비친 나는 상대적이지만, 주관은 오직 하나뿐이다. 객관화된 허구의 나를 지우고 주관에 충실할 때 열등감도 있을 수 없고 우월감도 있을 수 없다. 나의 감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비교가 불가능한 절대유일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 화려함과 초라함, 우월과 열등이라는 상대성을 초월하여 누구나 우주의 중심이 된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보셨던 방식이고 부처님께서 살아가셨던 방식이다. 진화를 초월한 삶이다. 우리 모두 따라야 할 절대적 삶이다.
[불교신문 2873호/ 12월15일자]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