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禪宗의 宗門異類

장백산-1 2013. 4. 23. 23:18

 

 

 

                                    선종(禪宗)의 종문이류(宗門異類)

 

  

  

 

선종(禪宗)의 종문이류(宗門異類)  / 일붕 서경보 큰스님

 

 

宗門異類 라는것은  말로는 能히 이를수가 있으되,

智慧로는 미치지 못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예를 들면 고봉화상의 선요 가운데,

 

바다밑의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거늘

바위 앞의 호랑이가 새끼를 안고 졸도다

쇠뱀이 금강의 눈을 뚫고 들어가고

곤륜산이 코끼리를 타니 해오라기 물새가 끌도다.

 

라고 한 것이라든가,

 

다비문(茶毘文)가운데,

 

눈 있는 돌 사람이 눈물을 흘리니

말없는 동자가 가만히 탄식하도다

나무로 된 말을 거꾸로 타고 한번 뒤집으니

크게 붉은 불꽃 속에서 찬 바람이 나도다.

 

이런 것을 일러 宗門異類 라고 한다

이와 같이 고봉화상의 선요 가운데 있는 송이라든지 다비문 속에있는 송은

言說의 말로는 지꺼릴 수가 있으되,智慧로는 理解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古人도 이것은 '말로써는 能히 미치되,

智慧로써는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그 外에도 '돌사람이 밤에 나무닭 소리를 듣는다'란 말이 있다.

이런 것을 言說로는 미칠 수가 있으니 이것을 류 (類)라고 한다.

그러나 돌사람이 어떻게 들으며 나무닭인데 어떻게 울 것인가!

이런 까닭으로

智慧가 이르지 못함이니 이것을 일러서 이(異)라고 한다 .

그러므로 理解할 수가 없는 文句를 宗門異類라고 하는 것이다.

 

이밖에 또 보살이류가 있고, 사문이류가 있으니

菩薩異類란 것은 宗門異類와 달라서

應身으로 化生하는 것은 "류(類)'요

變치않는 소증(所證)의 理致를 "이(異)'라고 한다.

 

또 사문이류란 것도 종문이류 와는 다르다.

예를들면 위산 영우선사가 法을 보이되

"영우가 죽어서 산밑 村家의 물소로 태어나

두 뿔 위에 위산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나타낼 것이니

이것을 위산 이라고 불러야 옳으냐.

물소라고 불러야 옳으냐? 했다

이것은 위산이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것은 "類"요,

영우가 곧 '수고우'인지라 自體가 變하지 않는 것은 "異"라고 한다.

이것을 사문이류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宗門異類가 나오게 된 데는 출처가 있으니.

옛날 남전화상이 어떤 강사에게, '무슨 경을 강하느냐?'하고물었더니,

'열반경을 강한다'고 했다. 남전화상이 다시,

'열반경 가운데는 무엇을 極勅으로 삼는가?' 하였더니 강사 이르되,

'여여(如如)로써 극칙을 삼는다'고 했다.

 

이에 남전화상이 이르되,

'無形한 如如의 理致를 불러서 如如라고 하면 벌써 變해진 것,

모름지기 이류 중을 향하여 이류중사(異類中事)를 불러 지어야 비로소 옳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對하여 법진일 선사가 송하되,

 

涅槃寂滅이란 本來 이름이 없으니

如如라고 불려져도 벌써 變한 것이라

'만약 경 가운데 어떤 것이 극칙이냐' 하고 묻거든

돌사람이 밤에 나무닭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리라.

 

이에 대하여 함허 득통 선사는 이르되,

'涅槃 寂靜이 本來명자(名字)가 없거늘

만약에 名字를 세운다면

변이(變異)하여감을 免치 못할지니

모름지기 이류중행을 향하여 이중사(異中事)를 일러 취해

원전(圓轉)하여 다치지 아니 하여야 비로소 옳으리라'고 했다.

 

그런 즉 無形한 마음

부처라고 하던지, 법(法)이다, 각(覺)이다, 보리다, 열반이다 라고 하여도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차라리 常識으로 能히 推測할 수 없는

돌계집(石女)이니, 돌호랑이니, 나무닭목이니, 또는

구멍없는 피리니, 진흙소 라고 하는 등 이중사로 표현하게 되고.

時間도 想像할 수 없는 劫밖의 봄 이라든지 당나귀 해(太)陽라는 것 등으로

표현하게 되고,또 거북이 털이나 토끼의 뿔이라는것과 같은 말로 사용한다.

 

이밖에도 무봉탑이니, 무저선, 무영수, 무형탑, 무음양지, 무음향산곡이니

하는 것도 이류(異類)의 말로써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함허 득통선사는

구태어 이렇게 변명을 지을 것도 없다 하여 이르되,

 

"또한 일러라,

變하여 무슨 곳으로 向하여 갈것인가,

어지럽게 달리지 말라.

만약에 變하고 비치지 않음 등으로 想量 할 것 같으면

도리어 옳지 못한 것이니 필경에 어떻게 할것인고,

涅槃寂滅이 本來 이름이 없으나 또한 이름만 說할 때에는

바람이 불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것이라.

다만 한 조각의 통신한광(通信寒光)이 있을 뿐이니

여여(如如)라고 불러지은들 무슨 變異가 있으리오". 했다.

 

그러나 禪家에서는 표전(表詮)을 쓰는 것보다 

차전(遮詮)의 隱語를 쓰기 좋아하기 때문에

普通사람이 理解할 수 없는

별난 소리 쓰기를 좋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常識的으로 理解할 수 없는 道理를 말할 때나

말로써 表現할 수 없는 때에

想像밖의 말인 木鷄, 石女 등으로 表現한다 .

*무진장-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