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연기 /緣起

장백산-1 2013. 4. 27. 21:28

 

 

숭산스님 법어 법문 5

            숭산스님 법어 법문 5

 

     무명(無明)이란

     밝지 못한 마음, 가려진 마음이다.

     밝지 못한 마음이 나면

    本來 밝고 깨끗한 自己를 잊어버리고 바깥 境界에動搖하게 된다.

    어떤 처녀가 한 농군을 보았다. 인물이 훤칠하게 잘 생겼고 직분도 좋고 가문도 좋았다. 남이 알까 모르게 사랑하고 싶은 衝動이 일어났다.
    “아, 저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남몰래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습니다.’

    相對方도 그 편지를 받고 알아들었다.
    “좋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나를 좋아한다면 언제 한 번 만납시다.”
    그렇게 해서 만나고 나니 마음이 더욱 通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저를 어떻게 내 愛人을 만들까 하는 生覺에서 눈·귀·코·혀·몸 뜻을 지속적으로 接觸하였다. 받아들이는 것이 따뜻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서는 좋지 않은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좋지 않은 것은 다 버리고 좋은 점만 사랑하였다.

    사랑하다보니 통째로 갖고 싶었다.
    그래서 結婚式이라는 것을 하였다.

    그랬더니 뜻밖에 거기서 아이를 배더니 아이가 태어났다.

     
    그래서 좋아서 어찌나 기쁘던지 “어허둥둥 내 사랑아 - ” 하고

    먼저 사랑하던 애인 이상으로 그것들을 사랑하고 기쁘게 길렀다.
    그랬더니 나이가 드니 점점 老衰해지더니 病이 들고 갖가지 苦痛거리가

    생겨 슬픈 정경을 바라보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괜히 왔다 가는구먼 -.”
    그때사 깨달았다.
    “낳아도 안 낳아도 相關없는 것. 내 가슴만 이렇게 찢고 간다.”
    고 後悔하였다.

     

    이것이 12因緣이다.

     

    最初의 一念 남자와 여자를 보는 最初의 一念, 그것이無明이다.

     

    남자라는 것을 보지 않았으면 그 다음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를 보았기 때문에 그 最初의 한 生覺에 依해서

     

    편지를 쓰는 행(行)이 이루어지고,

     

    피차가 서로 알게 되는 식(識)이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좋아한다는 명색(名色)이 붙고,


    눈·귀·코·혀·몸·뜻(六入/六根)으로 接觸하여 그 좋은 것을 받아들여〔受〕

     

    사랑하고〔愛〕, 사랑하다보니 아주 自己 것을 만들어〔取

    한 살림을 차리고〔有〕 한 살림을 차려 살다 보니 아이를 낳았다〔生

     

    난 것이 어느새 늙어〔老〕 병들고〔病〕 갖가지 苦痛事를 演出하다가

     

    그만 죽어버리니〔死〕 그것이 人生이었다.

     
    ‘차라리 한 生覺(一念)을 일으키지 아니하였다면

    이런 結果는 없었을 것’하고 後悔를 하여도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었다.

    어떤가?

    人生이란 이런 것이다. 어디 人生뿐이던가? 이 世上 모든 것이 이렇게 되어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 生覺도 하지 말고 그냥 바보처럼 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無明에 의해서 일으키는 結果는 이렇지만

    명(明)에  對한 일은 이런 結果가 없다. 밝고 밝은 마음에는

    取하고 버리는 것(捨)도 없고(無取捨), 예쁘고 미운 것도 없고(無美醜)

    나고 죽는 것도 없으므로(無生死) 

    그 明 속에서 일어나는 萬가지 行事는 生死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불교의 생활은 명(明)의 生活이요, 智慧의 生活이다.

    明·智慧가 없는 生活은 苦痛의 生活이다.

    明에 依한 삶은 설사 苦痛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苦痛으로 받아들여지지않으므로 늙든지, 죽든지, 병들든지 相關이 없다.
    늙으면 늙어서 좋고 병들면 병들어서 좋은데

    工夫하고 죽으면 죽어서 敎訓을 남긴다. 諸佛菩薩들이 죽어서

    ‘선명(善名)’을 남긴다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면 그 無明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갑자기 바람처럼 생기는 것이므로 ‘홀연무명(忽然無明)·무명풍(無明風)’이라 말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波濤가 생긴다. 한 파도가 생기면 萬 파도가 생긴다. 그래서

    일파자동만파수(一波磁動萬波隨)라고 하지 않는가?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그런데 꼭 누가 시키는 것과 같거든, 그것은 神이 시키고 鬼神이 장난한 것이 아니고 前生에 맺었던 인연력(因緣力)이 通한 것이고, 慾心이 動한 것이다. 똑같은 사람을 보는데도 좋은 사람이 있고 싫은 사람이 있거든,

    다 이것도 因緣 때문이야.


    그래서 불교학자들은 이 12因緣을 時間的으로 3세에 배대하여 無明·行·識은 過去의 業力에 依해서 일어난 것이요, 名色·六入·觸·受·愛·取·有까지는 今生에 맺어 일어난 因緣이며, 生·老·死·憂·悲·苦·惱는 未來의 結果다.
    이렇게 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를 組織하였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心理學的인 측면에서 無明을 맹목적인 삶에 비유하여 목적 없이 눈에 띄이는 대로 집착된 생활을 한 결과를 이 12인연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고, 하나의 인생을 생리학적인 면에서 설명하여 놓은 사람도 있다.

     

    예컨대, 부모님들의 盲目的인 사랑은 無明·行·이요, 어머니 胎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精神과 肉體가 分離되고, 눈·귀·코·혀·몸·뜻이 생겨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名色·六入·觸이며,
    태어나서 온갖 것을 받아들이고(受)·사랑하고(愛)·取하여 자기의 所有를 만드는 것은 受·愛·取·有며, 다시 제2의 生命을 낳아 늙고 病들어 죽게 한 것은 生·老·死·憂·悲·苦·惱다. 이렇게 설명한 이도 있다.

     

    어쨌든 12因緣은 이 世上 萬物이 時間 속에서 어떻게 成·住·壞·空하고

    生·住·異·滅 하느냐 하는 問題를 提起한 것이다.

     

    그러니까 12緣起를 만드는 것은 自己의 마음이다.

    콩을 갖다가 두부를 만들 때 갈아서 간수를 치고 엉기게 하여 순두부를

    만들어 놓고 가다를 들이대는데, 그 틀을 둥글게 할 것이냐 모나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 여하에 달린 것 아니다.

     
    만들어 놓고 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쁘다·밉다·잘 생겼다·못 생겼다 하지만 結局 그 놈이 뚝배기 속에 들어가 보글보글 끓다가 입 속에 들어가면 진국만 다 빨리고 나머지는 똥이 되어 화장실에 배설된다.
    虛妄한 일이지, 그러니 無常하다고 않겠는가?

    그러나 그 無常 속에서 이 世上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그것도 우습게 生覺하니까 우습지 멋있게 生覺하면 또 멋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生覺이고 마음이다.

    마음에 속지 않으려면 無明心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6.선악은 위대한 스승

     

    막강한 神들

     

    本來에는

     

    感情도 없고

     

    知覺도 없고

    意志的 衝動도 없고

     

    意識도 없네.


    잡고 있다해도 얻을 수 없고
    놓아버려도 얻을 수 없네.
    얻고자 하는가
    虛空의 뼈를 타고 金剛力士의 눈으로 들어가라.


    注意하라 注意하라 注意하라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있다.
    慈悲롭게 여기고 죽이지 말라.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은 있다하고 조주(趙州)는 없다 하네.
    누가 옳은가
    그대 입을 연다면 地獄에 떨어지리.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고
    땅에 비가 내리네.

     

    부처님 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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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전충효님이 올린 법

    *무진장-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