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天上天下唯我獨尊

장백산-1 2013. 5. 13. 12:50

 

'方向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끝없이 황량하기만 한 사막이지만

어디에선가 한 줄기 地下水가 흐르고 있는 까닭에, 그 사막은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 이라는 말이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린 昏迷 속의 歷史라고 하지만, 人間의 魂을 일깨우는 우렁찬 소리이자 눈부신 빛이 있었기에

歷史를 人間의 歷史이게 했음을 알아야 하리라.

 

" 이 세계는 한 줄기 빛,

  한 덩어리 生命,

  緣起性을 떠나서 世界도 眞理도 存在할 수 없는 것.

  眞情한 創造主는 本來의 빛인 緣起일 뿐이라.

 

  世界의 實相,

  生命의 實相,

  人間의 實相,

  그대 自身의 實相이여.

 

  不生不滅이요,

  歡喜의  法悅이요,

  大自由自在요,

  淸淨하여 迷惑이 없도다.

 

  이와 같은 創造的 生命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대 自身, 宇宙 自體라네."

 2600여년 전 부처님께서 正覺을 成就하신 후 當當하게 사자후 하신 眞理의 宣言이다.

 

이것은 불교의 核心的 生命이자 人類史의 魂을 밝히는 人間의 根源的 精神인 것이다. 부처님의 宣言이 살아 있을 때 불교는 歷史속에 빛이었고 또한 時代를 일깨우는 先覺者일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사자후하신 宣言의 內容이 所重하게 받아들여질 때 人間 精神에 立脚한 歷史가 展開된다는 事實을 明心해야 할 때가 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昏迷의 꿈속을 헤매이는 人類의 精神을 일깨우는 아픈 채찍으로써 意味를 갖는다.

그러므로 불교의 存在 價値를 外面하려는 조짐은 단호히 척결되어야 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緣起의 論理로 解釋해야 합니다. 緣起的으로 解釋하면 "온 宇宙가 그대로 나 自身이요, 나自身이 그대로 宇宙 自體이므로 이 世上 그 무엇도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에 依持해서 내가 存在하듯이 흙, 물, 바람, 산소 등에 依持하여 내가 存在하므로 이 世上 그 어디에도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主張할 수 있는, 分離되고 獨立되고 固定 不變하는 것은 本來부터 存在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곧 '無我'를 뜻합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큰 意味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存在의 尊貴함'입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은 存在의 本質이 永遠하고 無限하고 完成的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比較할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無限함과 完全함이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尊貴한 存在라는 것입니다.

 

存在의 尊貴함은 바로 緣起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緣起의 存在이고 法의 存在입니다.

그 무엇과도 比較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것 自體로 唯一한 價値를 지닙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기의 존재라면 緣起를 벗어났을 때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緣起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緣起가 眞理인데 어떻게 緣起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또 "무상게에서, 12연기를 消滅하고 벗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을 것입니다.

 

無相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연기를 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存在의 實相, 곧, 緣起法에 對한 迷惑과 執着을 여읜다는 것이지, 緣起法을 여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도 緣起의 人格者입니다.

緣起法의 人格化인 것입니다.그래서 緣起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緣起애 對한 迷惑과 執着을 깨는 것입니다.

 

둘째는 "菩薩行에서 獨步的임"을 뜻합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은, 善根 功德을 짓는 菩薩行으로 보면 "내가 最高이며 獨步的인 存在이다" 하는 內容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迷惑과 苦痛에서 헤매는 중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삶이 이 세상의 어떤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天上天下 無如佛, 곧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부처님 같은 存在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불교인들이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그저 自我의 永遠함, 完全함, 無限함을 强調하는 것쯤으로 解釋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解釋은 한국 불교가 불교의 본뜻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불교를 두 눈으로 온전히 보지 못하고 외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또 눈은 있는데 발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발이 없으니 실천이 따라 주지 않습니다. 두 눈과 두 발이 함께 갖추어져야 온전히 알고 또 온전히 실천할 수 있을 터인데, 더러는 눈은 있으되 발을 무시하거나 더러는 눈은 무시하면서 발만 강조합니다.

 

한국 불교는 이렇게 變質되고 왜곡되어 병이 깊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과연 불교는 있는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오늘, 이 땅에 과연 불교가 살아 있는가 하고 뼈아프게 자문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살피지 않은 데에서 緣由합니다.

 

"天上 天下에 오직 나 홀로 尊貴하다"고 한 부처님의 선언은, 그 무엇으로도 代身할 수 없는 存在의 尊貴함과 더불어, 迷惑과 苦痛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 삶의 내용이 獨步的임을 意味합니다.

 

도법스님 / 내가 본 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