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경 이야기 네 번째 - 마음, 마음, 마음이란 무엇인가?
불교가 타종교와 다른 것은 창조론적 사고가 아닌 진화론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타종교는 어떤 절대자가 이 세상을 만들었고, 모든 생명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는 것이 연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화의 길을 간다고 주장한다. 이 두 차이로 인해 불교와 타종교간의 교리와 신앙의 차이로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후대 대승불교에 오면 일부 종파에서는 방편상 창조론과 비슷한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이 낮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궁극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면 결국 연기론으로 결론짓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보는 인간의 모습은 연기에 의해 진화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내 속에 어떤 절대 불변한 영혼이나 그 다른 어떤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인간의 모습은 변화하는 것이고,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다. 나의 물질적인 육체도, 그 육체를 움직이는 정신도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이다.
부처님은 이 몸의 주인을 마음이라고 했다. 이 말씀을 요즘 말로 하면 뇌의 현상(마음)이 육체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육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육체와 정신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마음’ 이 하나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그럼 그 마음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 이 말에 적절한 말이 없어서 당신이 직접 용어를 만들었다. 그 용어가 빨리어로 ‘citta(찟다)’이다. 이 citta를 중국에서 ‘심(心)’이라 번역하였고 우리는 ‘마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알려면 이 citta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부처님은 citta란 mano(意), vinnana(識), anussati(기억), sati(마음챙김) 등이 연기론적으로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풀어 보면 마음이란 뇌에 있는 각종 뉴런들의 전기화학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6근(안, 이, 비, 설, 신, 의)이 밖에 있는 6경(색, 성, 향, 미, 촉, 법)과 접촉하여 뇌에 전달되면 각각의 담당 뉴런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서로의 정보교환을 통해 통합하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전두엽에 전기화학적 반응을 생기게 하면 그 전두엽에서 이것을 판독하는 뉴런이 이것을 무엇이라고 인식 한다. 그기에 또한 그것이 무엇이라고 아는 뉴런이 작동해야 정확한 인식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부처님은 sati(마음챙김, 알아차림, 깨어있음)의 작용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citta(마음)이란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화학적인 반응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무상), 항상 불안정하며(고),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무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음은 실로 변덕스럽고 요사스러워
이를 보호하고 다스리기는 매우 어려운 것
지혜로운 사람만이 그것을 다스려 바르게 한다.
마치 화살 만드는 사람이 굽은 화살을 펴듯이.《법구경 33》
마음은 가볍게 움직여 다스리기 매우 힘든 것
어느 곳이건 좋아하는 곳에 쉽게 머문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진정 훌륭한 것
잘 다스린 마음이 행복을 가져 온다. 《법구경 35》
오래지 않아 이 몸은 흙바닥에 버려지고
마음 또한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그때 덧없는 이 몸은 실로
썩은 나무토막보다도 소용이 없으리. 《법구경 41》
마음은 항상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며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통해 마음의 현상을 조절할 수가 있다. 만약 변하지 않고 고정불변한 것이라면 우리들이 마음 수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불교는 마음을 깨닫고 마음을 수련하는 종교이다. 이 말은 곧 마음이란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 다만 연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체의 마음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마음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란 다만 하나의 흐름일 뿐이라고 아는 것이 불교의 첫걸음이다. 이것을 모르면 불교 전체를 모르는 것과 같다.
타 종교에서는 이런 이론을 가르치지 않고 다만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 마음을 실체시 하고 그 마음에 믿음이 있으면 좋은 곳에 가고 믿음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이 바로 공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좋은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나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대자유인의 삶을 최고의 삶이라고 가르친다.
사람이 바른 마음을 쓸 줄 알면 모든 존재가 기뻐할 것이다. 마음을 항복 받아 부드럽고 순하게 가지라. 마음 가는 대로 따라 가서는 안 된다.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며 귀신이나 축생 또는 지옥도 만든다. 그러니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 《장아함경 대반열반경》
어머니도 할 수 없고 아버지도 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친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바르게 인도되는 마음만이
모든 이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다. 《법구경 43》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고, 불교 심층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식사상에서는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한다. 모두 모든 것은 마음의 장일 뿐이라는 뜻이다. 극락도 지옥도 모두 나의 마음이 만든다. 모든 것은 한 생각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스린다. 불교는 어떤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의해 스스로 구원되는 되는 것이다. 이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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