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디 있는가? / 정운 스님
스스로 불성 지닌 존재임을 자각 항상 화두를 놓지 않고 정진하라
스님은 임제종 법맥의 선사이지만, 전세계 사람들에게는 위빠사나로 冥想을 지도하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스님의 명상 지도법이나 프랑스 플럼빌리지(Plum Village) 명상센터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스님의 현 (위빠사나)지도법은 북방불교의 禪思想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스님께서 젊은 시절, 북방불교 선을 하였기 때문에 위빠사나와 접목해 대중들에게 쉬운 冥想法을 보급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소리가 울리면, 도량에 있는 사부대중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머무는 그 瞬間에 集中한다. 사띠(sati)를 잊었거나 如一하지 못한 것에 對한 自覺의 效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북방불교 선사들의 제자 교육법과 유사하다. 수행자들이 애독하는 어록 가운데 황벽희운(黃檗希運, ?~856)의 <전심법요(傳心法要)>가 있다. 이 어록은 당나라 때 재상이었던 배휴(裵休, 797~870)가 아침저녁으로 황벽의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그가 없었다면 이 어록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황벽이 대중을 떠나 이름을 감추고 대안정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낼 때이다. 마침 배휴가 와서 불전에 참배하고 벽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벽화를 보던 배휴가 주지에게 물었다. “저 그림은 누구의 초상입니까?” “고승의 초상입니다.” “영정은 여기 있지만, 고승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지가 아무 말도 못하자, 배휴가 “이 절에 참선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요즘 어느 객승이 머물며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그가 참선하는 스님인 것 같습니다.” 곧 황벽이 도착하자, 배휴가 물었다. “제가 아까 스님들께 ‘영정은 여기 있는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스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배휴!” 황벽의 큰 일갈에 배휴가 놀라 얼떨결에 황벽을 쳐다보았다. “그대는 어디 있는가?”
實은 황벽의 스승인 백장(百丈, 749~814)도 이 方便을 자주 活用하였다. 說法이 끝나고 대중들이 法堂 밖으로 나가려고 뒤돌아섰을 때, 백장은 그들을 向해 ‘이보게’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대중들이 얼떨결에 고개를 돌리면, 백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고(是甚磨)?” 백장이 제자들 스스로 佛性을 지닌 存在라는 것을 념념(念念)에 잊지 않고 自覺시키고자 하는 敎育 方便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백장의 스승인 마조(馬祖, 709~788)도 이 方法을 活用하였다.
話頭나 사띠가 여일(如一)할 것을 警戒한 것이라고 生覺한다. 또한 황벽이 배휴에게 ‘고승의 초상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重要한 것이 아니라, 現在 그 고승을 보고 있는 自身의 存在 自覺이 더 重要한 것임을 경책하는 것이다. 물론 마조와 백장이 제자들이 放心하고 있는 틈을 타 충격요법으로 이름을 부른 것도 유사한 例라고 볼 수 있다. “그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이고, 이 글을 읽는 者는 누구인가?”
- 불교신문2917호/2013년6월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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