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如來藏 / 淨法身

장백산-1 2013. 6. 10. 12:17

 

 

 

운거선원(雲居禪院) 단상(斷想) / 월암스님|영원한 나를 찾아서
유당 | | 조회 0 |추천 0 | 2013.06.10. 06:28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2845

 

 

운거선원(雲居禪院) 단상(斷想)

                                                    - 한산 월암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이상의 예불에 참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선당(禪堂)에서

새벽 정진에 임하고, 아침 공양을 마치고 한 시간 가량의 간경 ․ 강설에 참여하면 벌써 하루가

지나간 느낌이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차밭에 나가 풀을 맨다.

백여 대중이 함께 하니 그다지 힘드는 것 같지는 않으며 효율성도 높은 것 같다.

아침공양으로 미엔빠오(麵包) 하나를 먹었으니 배가 고프기는 늘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점심공양이 기다려지니 발우 공양도 번거롭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후에 또한 대중이 논밭에 나가 보청(普請)에 임하니

한국 절에서 운력하는 정도의 노동은 이미 약과가 되어버렸다.

말이 봄이지 운거산의 4월은 아직 늦은 겨울이다. 농사 준비와 차밭 가꾸기로 온종일

운력중이니 말 그대로 勞動禪의 現場에 서 있는 느낌이다. 고달프고 힘이 든다.

그런데 왠지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오히려 便安한 것 같다.

道는 온몸으로 부딪쳐서 체득(體得)하는 것이란 말이 옳은 것 같다.

 

   저녁 精進에 졸음이 엄습한다. 화두 반 졸음 반이다. 옛날 어른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낮에는 나무하고 농사짓고 탁발하는 작무로 할애하고 새벽과 밤에 정진을 했다고 하는 것이

지금 中國 禪院에서의 하루일과와 대동소이하리라 여겨진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앉아 있는 젊은 수좌들을 보면서 속으로

중국 땐놈들에게 지면 안되지 라는 오기가 발동되어 억지로 버티기 일쑤다.

온 힘을 다해 밤 10시까지 졸다가 지친 몸을 바로 뒤로 눕힌다.

선방 구조가 좌복 뒤에 침상이니 말이다. 선당이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

나도 이미 중국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좋은 말로 염정일여(染淨一如)가 다 된 것 같으니 말이다.

반은 졸고 앉아 있지만 그래도 앉아 있을 때가 便安하고 安心이 된다.

 

   雲居禪院에 온지 벌써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번 봄 선칠(禪七)에는 특별히 오전 조과 시간에

1시간 씩 祖師語錄을 열람하고 간간히 선강(禪講)도 하기로 하여 방장스님이 노구를 이끌고 성의를

다하는 강설이 의미가 큰 것 같다.

노장이 사투리가 심해서 백퍼센트 다 이해는 안되지만 그래도 선방에서의 전통 논강식의 강의가

독특하고 재미가 있어 다행이다. 지금은 조사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조어록을 교재로 하여

법석을 펼치고 있다. 노장님의 똑같은 톤의 강의에 조는 대중이 절반이다.

나도 살짝 졸다가 망상을 피워 중국에 건너와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면서

강호를 헤매고  다닌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佛菩薩의 조그마한 恩惠를 입어 今生에 일찍이 佛法을 만나 공문(空門)에 들어와

수선(修禪)의 청복(淸福)을 누리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多劫生의

業障이 무거워 뜻을 세워야(立志) 할 나이(30세)에 病을 얻어 面目이 온전치 못하게

되었으니 호사(好事)에 다마(多魔)인지 모를 일이다.

 

   삼십 초반 비교적 만학(晩學)의 시절에 中國으로 遊學을 왔다. 말이 유학이지 좋은 醫院을 만나

身病을 완전하게 치유하고, 한편으로 履歷過程에서 배우고 익히며 마음 속으로 동경한

선림조정(禪林祖庭)을 참배하고 숨은 道人을 만나 개오안심(開悟安心)할 기연(機緣)을 만나는 것이

最高의 希望事項 이었다.

 

   전국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름 있는 명의(名醫)로부터 시작하여 강호에 묻혀 있는

이름 없는 의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진료와 치료를 받아 안면(顔面)의 와사증세는

몰라보게 호전되었으니 佛菩薩님의 加被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生覺해 보면 내가 前生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독한 로 가슴을 아프게 하였기에

今生에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果報로 돌아와 수 만개의 침이 되어 나의 얼굴을 찌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분대로 내키는 되로 함부로 말하여 말의 침으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 반드시 쇠침이 되어 되돌아오게 마련이니 입조심 하여 부드러운 말로 주위를 便安하게 하는 것도 修行임이 틀림없다.

 

   健康에 조금의 自信이 생기니 넓은 중국 천하의 장로 선지식을 만나 한 마디 말 아래

바로 활연대오(豁然大悟)하리라는 객기가 발동되는 것이 애초에 작심한 중국유학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선종의 초조 달마로부터 근대 중국의 대종장

허운대사에 이르기까지 조종(祖宗)의 역대 전등(歷代傳燈)의 유적을 모두 참배하리라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문수도량 오대산을 필두로 하여 보타산 관음성지, 구화산 지량도량, 아미산 보현회상,

설두산 미륵도량까지 오대성지를 참배하는 데만도 몇 개월의 고된 일정이 지나갔다.

지금까지 참배한 조정만 해도 조계혜능의 남화사, 임제의현의 임제사, 조주종심의 백림사,

 남악회양의 복엄사, 석두희천의 남대사, 청원행사의 정거사, 위산영우의 밀운사,

운문문언의 대각사 등등 수많은 조정을 참배하고 많은 장로대덕들을 친견하였다.

그리고 남화사 보림선원, 백림사 조주선원, 정거사 조계선원을 거쳐 지금은 운거도응선사의

조정 운거산(雲居山) 진여선사(眞如禪寺)의 선원에서 정진하는 운수객이 되었다.

행각에 지치면 머무르고 머무름에 싫증나면 걸망 메고, 땅 넓어 좋고 갈 데 많아 더 좋은

중국 천지를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가는 절마다 받아주니 더욱 고맙다.

전생에 중국에서 중노릇 좀 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하는 모양새를 보아서는 틀림없는

 땐놈 행색이니 말이다.

 

   어제 저녁 조금 무리하게 앉아 버틴 탓인지 오늘 아침 조과(朝課)에 들자마자 방아를 찧기 시작한다.

은근히 한국 스님의 자존심도 있고 나이 어린 중들 가운데서 구참의 위신도 있으니 그래도 억지로라도

자세를 바로하고 방장노화상의 고구정녕한 말씀에 집중한다.

노장의 입에서 여래장(如來藏)정법신(淨法身)에 대한 강설이 이어지고 있다.

제서야 나도 어록의 문장을 똑똑히 들여다본다.

 

재전을 이름하여 여래장이라 하고(在纏名如來藏, 재전은 煩惱에 덮여 있는 마음 상태),

출전을 이름하여 정법신이라 한다.(出纏名淨法身, 출전은 번뇌가 空한 마음 상태)

법신은 실로 무궁하여(法身無窮),

그 본체가 늘거나 줄지 않아서(體無增減),

능히 크게도 될 수 있고 작게도 될 수 있으며(能大能小)

네모나게 할 수도 있고 둥글게 할 수도 있다(能方能圓).

대상을 따라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應物現形)

마치 물에 비친 달과 같아서(如水中月)

도도하게 작용할 뿐(滔滔運用)

뿌리를 내려 머무르지 않는다(不立根栽).

 

그런데 “대상을 따라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應物現形),

마치 물에 비친 달과 같다(如水中月)”라는

구절에 이르러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통쾌함이 밀려왔다.

고단한 몸 졸리는 가운데도 한 생각 “이뭣고”를 챙기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문득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적셔오니 환희용약(歡喜踊躍)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선열(禪悅)의 즐거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 수 읊조렸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조계대사가 말했건만                 曹溪亦說無一物

지금 목전에 보고 듣고 알아차리는 이것은 무엇인가?     現前覺知是甚麽

중국으로 달려와 숨은 선지식 찾아다니며                     來中參訪隱知識

산에 오르고 물 건넌 세월이 그 얼마였던가?                 攀山渡水何歲月

오늘 마조가 가리킨 물속의 달을 한 번 처다 보고서       一見馬祖水中月

대천세계 그대로가 여여한 경계임을 명백히 알았네.      明白大千自如境

 

그날 이후로 몸은 가볍고 마음은 상쾌함을 느꼈다.

 

(이 글은 1994년 중국 유학시절 운거산 진여선사 선원에서 정진할 때의 소회를 밝힌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