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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龍樹, 불교를 이론적으로 완성
불교는 具體的으로 實行 可能한 實存的인 가르침입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려는 것, 그래서 죽어서 천국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人間이 살아낼 수 있는 가장 自由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의 精神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불교는 이론적으로 이미 2,000 여 년 전 완전히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한 사람의 탁월한 思想家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바로 나가르주나(Nāgārjuna, 150?~ 250?)입니다. ‘나가(naga)’가 용(龍)이라는 뜻을, 그리고 ‘아가르주나(agarjuna)’라는 말이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흔히 용수(龍樹)라고 부르기도 하는 불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나가르주나는 흔히 제2의 싯다르타이자 동시에 대승불교 여덟 종파의 시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가르주나는 튼튼한 理論的 土臺를 제공하여 싯다르타가 열었던 불교 思想을 盤石에 올려놓은 중요한 理論家입니다. 그래서 後代의 大乘佛敎 傳統은 이론적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나가르주나가 만들어 놓은 굳건한 대지 위에 다채롭게 피어난 꽃들이라고 할 수 있 수 있습니다. 同一한 장미 씨앗도 어느 곳에 자라는지에 따라 相異한 모습의 장미로 피어나는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多樣한 大乘佛敎 宗派들도 이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實踐的인 차원에서만 差異를 보였던 것입니다. 간단히 후대의 다양한 종파들은 깨달음에 이르는 具體的인 實踐 方法에서만 差異를 보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가르주나 以後 발전한 모든 大乘佛敎 傳統이 共有하고 있던 그의 核心 思想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나가르주나의 思想은 ‘공(空, Śūnyatā)’이라는 한 글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의 主著 ‘중론(中論; Madhyamaka-śāstra)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어떤 存在도 인연(因緣)으로 생겨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存在도 空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나가르주나의 말대로 모든 것은 그 自體로 存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分析해보면 모든 것은 直接的인 원인[因]과 間接的인 조건[緣]이 만나서 生긴 것이고, 當然히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이 헤어지면 모든 것은 消滅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겨울이 되면 유리창에는 성에꽃이 활짝 핍니다. 방 안의 습기, 그리고 당시의 온도가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방 내부를 떠돌던 습기가 술에 취한 아저씨의 탁한 호흡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연의 아픔 때문에 흘린 아가씨의 서러운 눈물과 흐느낌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동일한 온도라고 해도 성에꽃의 모양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습기라고 해도 온도가 달라지면 성에꽃의 모양은 달라지겠지요.
2. 常見과 斷見 함께 버려야 中道
지금 유리창 표면에 기묘한 모양으로 활짝 피어 있는 성에꽃은 特定한 습기와 특정한 온도가 만나서 發生한 것입니다. 當然히 성에꽃 自體에는 不變하는 實體란 있을 수 없지요. 特定한 습기나 특정한 온도가 다르게 變한다면, 지금 보고 있는 성에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저 因緣이 맞아서, 혹은 因緣이 서로 마주쳐서 무엇인가 生기는 것이고, 反對로 因緣이 다해서, 혹은 因緣이 서로 헤어져서 무엇인가가 消滅할 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인가 생겼다고 기뻐하거나 무엇이 허무하게 사라진다고 해도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空’이라는 槪念으로 나가르주나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혹은 ‘여여(如如)하게’ 보는 사람, 즉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을 空하다고 보기에 그것들에 執着하지 않는 것입니다.
結局 싯다르타처럼 나가르주나의 가르침도 ‘있는 그대로’, 혹은 ‘여여(如如)’하게 事態를 보는 데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核心은 ‘있는 그대로’라는 말로 표현되는 불교의 강력한 現實主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人間 대부분이 事態를 있는 그대가 아니라 무엇인가 色眼鏡을 끼고 본다는 것을 前提하는 겁니다.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色眼鏡으로 事態를 보는 生覺에는 크게 두 種類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견(常見, śāśvata-ḍṛṣti)이고, 다른 하나는 단견(斷見, ucchesadarṣana)입니다. 常見에 따르면 이미 습기, 온도, 유리창 표면의 物性에는 성에꽃이란 結果가 이미 씨앗처럼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反面 斷見에 따르면 성에꽃은 습기, 온도, 유리창 표면과는 아무런 相關이 없다는 겁니다.
常見은 아주 强한 絶對的인 因果論이고, 斷見은 因果論에 對한 철저한 否定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常見도 버리고 斷見도 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 事態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싯다르타가 중도(中道, Madhyamā-Pratipad)를 이야기했고, 나가르주나는 자신의 주저를 ‘중론(中論; Madhyamaka-śāstra)’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싯다르타나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原因과 結果는 絶對的으로 連結되어 있는 것도, 그렇다고 絶對的으로 無關한 것도 아닙니다. 當然한 것 아닐까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 사이의 사랑이 原因이 될 수 있지만, 부부가 아무리 사랑을 나누어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부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3. 因果에 對한 執着 또한 病弊
‘無門關’의 두 번째 關門을 통과할 준비가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제자에게 因果를 잘못 이야기해서 여우가 되어버린 어떤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크게 修行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까?”라고 제자가 물었을 때, 당시 그 스님은 “因果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對答했던 겁니다. 그 罰로 스님은 五百 번이나 여우의 몸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여우가 되어버린 스님의 잘못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모든 것이 因緣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否定했던 것입니다. 結局 그는 常見과 斷見 사이에 위태롭게 펼쳐진 中道라는 길을 걷는 데 失敗했던 겁니다. 中道란 因果關係를 絶對化하는 것도 그렇다고 否定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誤解의 여지가 있지만 中道란 느슨한 因果關係를 肯定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熱心히 修行했다고 해서 모두가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熱心히 修行하지 않는다면 부처가 될 수 있는 可望性 自體도 없어지는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부처가 되었다면, 그에게는 치열한 自己 修行이라는 原因과 좋은 스승이라는 條件이 갖추어져 있었을 겁니다. 同時에 치열한 자기 수행을 그치거나 스승과 같은 좋은 조건들이 사라진다면, 부처도 사실 消滅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마치 온도가 올라가거나 습기가 사라지게 된다면, 성에꽃도 허망하게 消滅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백장(百丈, 749~814) 스님의 가르침, 그러니까 어느 不幸한 스님이 여우의 몸을 벗어나서 마침내 自由를 되찾을 수 있도록 했던 백장 스님의 가르침이 빛을 발합니다. “불매인과(不昧因果)!” 그러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
因果를 超越할 수 있다는 生覺과 因果에 어둡지 않다는 生覺 사이에는 이처럼 건널 수 없는 江이 흐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前者가 싯다르타의 中道나 나가르주나의 空을 否定하고 있다면, 後者는 肯定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重要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不昧因果’와는 달리 ‘不落因果’라는 生覺에는 因果에 對한 强한 執着이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황벽(黃檗, ?~850) 스님이 因果에 아직 執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백장 스님은 뺨을 후려갈기려고 제자를 가까이로 부릅니다.
執着에는 방(棒)이나 할(喝)처럼 强力한 衝擊 효과가 卽效藥이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자 황벽 스님은 自身이 결코 因果에 執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승 백장의 뺨을 먼저 후려갈깁니다. “스님이야말로 因果에 執着하고 있었기에 저를 때리려고 했던 것 아닌가요.” 얼마나 후련하고 장쾌한 일입니까.
강신주 conting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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