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사회로 가는 길
救苦行에 정진하자
올해는 8월 11일이 우란 분재일 이다. 이날은 우리에게 거의 민속화된 축일이다. 오늘날의 백중이란 과실 차려놓고 쉬는 날로 기억될 뿐, 그 본래의 뜻은 불자 사이에서만 살아서 전해 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날은 세존 당시 목건련존자가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해낸 날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받들어 승자자일(僧自恣日)에 백미오과를 스님들께 供養하고 現在父母와 多生父母, 一切 친속과 惡道에 빠진 衆生들을 건져내는 것이다. 목건련존자의 孝誠에서 부처님의 法門이 열리게 되고 우란분의 법식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先亡父母를 위한 孝의 精神이 우란분을 기하여 社會 大衆 救濟의 意味가 있는 것을 生覺하여야 하겠다.
[지장본원경]에는 광목이라는 여인이 어머니를 구하는 이야기가 보인다. 악도에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지성 염불 공양하여 어머니를 구해 냈는데 고통에 빠진 수 많은 악도 중생들을 보고 큰 願을 발한다.
‘일체 악도에 떨어진 죄고 중생들을 건져내어 악도에서 벗어나 모두 부처를 이루게 한 연후에 내가 성불 하리라’
고통에 빠진 모든 중생들을 건진 연후에 스스로를 돌아 보겠다는 이 정신이, 지장보살의 대비 위덕을 성취시킨 근거이고 지장보살 법문의 핵심이 된다.
[우란분경]이나 [지장보살경]은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불교가 행하고 있는 것은 대개 개인의 완성을 위주한 기도로 일관하고 있지 않나 돌이켜 보아 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대중구제를 통하여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된 自己의 執着을 버리고 많은 중생들의 利益을 도모하는 데서 自身의 完成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原來 밝은 눈에서 볼 때 自身과 衆生과는 둘이 아니요, '하나의 生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이렇게 말씀 하신다.
[모든 중생을 부모와 같이 생각하고 자식과 같이 생각하여야 한다. 보살은 이런 마음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고통에 빠졌을 때 어떤 경우에든 어떤 방법으로든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중생도 온갖 방법으로 언제나 모든 고통에서 해방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생들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중생이 곧 자기 자신일 때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그의 고통을 없이 하는 것이 나의 고통을없애는 것이 된다. 自他의 分別이 없는 것이다. 다만 온갖 고통에서 해방 되어야 한다는 의지와 노력만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와 같고 과거 성자들의 원과 행이 이러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불자 개인이나 불교 교단이나 불교 수행단체에서 얼마만치나 구고행(救苦行)을 닦고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고난에 빠진 이웃을 도와 함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데는 그 첫째가 지혜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허망한 것을 알아, 집착에서 벗어나고 고에서 벗어난 생명진실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고에서 벗어나도록 베푼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이 제일 요건이다. 가난한 이를 財物로 돕고 病든 이를 藥으로 돕는 것은 우선 당장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것 뿐이요, 窮極的인 解脫의 기쁨은 없다. 法은 窮極的인 解脫, 自由, 기쁨을 안겨 준다.
그런데 救苦行으로서의 전법행은 얼마만큼 행해지고 있는 가. 사실 몸에 오는 고통, 예를 들어 병고나 가난조차도 法門을 받아들여 그 마음을 바꿀 때 기쁨과 함께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베풀 것이 없어 주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처님의 法門은 보배중의 보배이고 무진장이 아닌가. 우리들은 이웃의 고통을 대하여 염불일구로써 그를 돕는 수행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오늘날은 세상이 비교적 풍요로워지고 생활이 윤택해 져서 우리의 생활 환경은 크게도 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난 때문에, 병고 때문에 또는 사고무친이어서 그늘에서 신음하는 형제들이 수없이 많다.
저들을 돕는 일은 먼저 깨달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저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며 저를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구할 길이 없으니, 나를 빛내는 길이 바로 저를 구하는 길이다. 부처님께서도 [自他 一身]이라 하였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저를 도우라] 하셨다….
우리는 깊은 깨달음에서 고난에 빠진 저들의 참된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 돈으로 돕고 힘으로 돕자. 혼자서 돕고 모여서 돕자. 일시적도 좋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救苦幸이란 나의 따뜻한 생명의 표현이며 자비스러운 불자의 체온이다.
그렇다면 비록 작은 액수라 하더라도 정성껏 지속적으로 행하여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精誠을 바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자기 완성이다. 받는 저 사람이 크게 도움을 받기 以前에, 精誠스럽고 慈悲한 마음의 主人公에게 먼저 毘盧遮那法身인 法性의 太陽은 빛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돌이켜 볼 때 자비 법문은 도처에서 끊임이 없고 자비를 배우는 보살학도가 절마다 법회마다 넘친다. 그런데도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救苦行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불광자 무식의 탓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법문은 화려하고 구호는 요란해도 自身의 實踐 救苦行의 實踐은 미약한 것이 우리 주변의 솔직한 현실이 아닐까? 救苦行이 없는 자비론사는 空論이 아니겠는가?
우란분재를 맞으면서 제성의 간곡한 가르침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구호에만 그치고 빈 메아리로 요란한 자비실천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새롭게 自他同體, 救苦實踐의 法門을 배울 것을 다짐한다. 불교의 존재가 살아있는 진리의 힘인 것을 우리 佛子들이 보여줄 때가 바로 오늘이라는 것도 생각한다.
형제들이여, 정진을 다짐하자.
<84>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476 – p480 밝은 사회로 가는 길에서, 불광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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