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출가 동기

장백산-1 2013. 6. 24. 00:25

 

원덕스님의 법문 - [부처님의 출가동기]  [원덕스님의 출가동기]|     자유게시판

광제 | | 조회 18 |추천 0 | 2013.06.23. 17:52 http://cafe.daum.net/pokyodang/7jO0/18486

 

[유연경柔軟經  중아함경 제29권-117경 참조 ]

 

柔軟經은 前半部에는 부처님께서 출가 하시기 前의 쾌락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생활을

세세細細하게 표현 하였고, 後半部에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고통을 알게 하여 우리들에게

生老病死를 벗어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印度 가비라 국에서 王子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경經에서 봤듯이 인도 고대국가의 왕과 왕자의 신분은

그 권력과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왕이나 왕자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때였습니다.

王과 王子는 국법國法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民主主義라고 해서 國會가 있고 여당 야당이 있어서 대통령도 탄핵하고

대통령 아들도 감옥에 가는 시대가 됐지만은 부처님 당시에는 왕과 왕자의 세력은

무소불위無所不爲(하지 못할 것이 없는)로써, 그야말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권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왕인 정반대왕은 왕자를 위해서 봄에는 아름다운 꽃동산 만들어 그곳에다 궁전을 지었고, 여름에는 바람이 잘 부는 시원한 곳에다,

그리고 가을에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궁전을 지었습니다.

겨울에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 바른 곳에 궁전을 지어 아름다운 궁녀들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였습니다.

 

또한 항상 왕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왕자의 주변에는 일체의 잡인雜人을 통행을 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다르타 왕자는 농경제農耕祭에 참석 하였습니다.

 

염부수 그늘 밑에서 왕자는 농부가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왕자의 눈에 띈 것은 벌레가 농부의 연장에 찍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참새가 날아들어 꿈틀거리는 벌레를 입에 채어 蒼空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일순간 또 큰 독수리가 달려들어 그 참새를 덮쳐서는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형언 할 수 없는 感情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이 自然에는 冷酷한 現實이 있었던 것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농부의 거친 손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  농부의 채찍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힘든 노동을

감수해야 되는 소에 대한 측은함, 이러한 삶에 대한 괴로움에 대해서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되는 데 이것을  “염부수 아래의 정관靜觀”이라고 합니다.

 

왕자는 이때 이미 초선初禪을 이룬 것입니다.

그 후 어느 날 왕자는 우연히 城門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東門에서는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인을 보고 인간은 누구나 그처럼 늙는 것임을 알았고.

 

西門에서는 육체의 고통에 신음하는 병자를 보고 병고에 시달려야 하는 인생의 괴로움을 알았습니다.

 

南門에서는 죽은 사람의 장례행열을 보고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事實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

 

北門에서는 出家한 修行者를 만나 생로병사의 苦에서 벗어나는 解脫의 길이 있음을 듣고 마침내 出家를 決心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왕인 정반왕은 별별 수단을 다 써가며 출가를 만류 했지만 왕자는

“불타는 집을 떠나려 하는 사람을 붙잡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란 명언을 남기고 출가를 한 것입니다.

 

우리 佛子님들 중에는 부처님의 出家動機에 대해서 모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유연경]을 보게 되면 부처님의 호화스런 생활과 권세가 어떠한지 한눈에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자는 물론이지만, 재가 불자들에게 중요하게 시사示唆하는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그 시사하는 바를 알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왕자 신분으로서 모든 富貴榮華와 權勢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生死問題를 解決하기

위해서 그 것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出家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보잘것없는 世俗의 삶에 執着하여 貪 嗔 痴 三毒에 빠져서 生死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스스로 生覺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世俗의 업연業緣이있어 出家는 못했을 망정 在家에 있으면서도 쉬지 말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마음을 닦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를 불길에 싸인 집과 같다고 해서 火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괴롭고 苦痛스러운 바다와 같다고 해서 苦海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하루하루를 나침반 없는 배처럼 茫茫大海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세연世緣이 다하면 自己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목숨을 마치는 것입니다.

生死問題를 解決하는 方法은 佛法 以外는 어떠한 學文이나 宗敎로도 解決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는 부처님과 똑같은 如來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참 부처이니 쓸데없는 것에 執着 하지 말고

生業에 종사하면서라도 熱心히 修行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불자님들은 幸運兒입니다.

절에  가족들을 위해서 불공드리러 왔다가 正法을 修行하는 도량과 因緣이 되어서

自己도 모르게 彼岸의 언덕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산승에게도 出家動機가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새벽 3시면 自動的으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우리 집하고 직선거리로 1km쯤 떨어진 곳 산위에 절이 있었는데

새벽3시면 어김없이 도량석 목탁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린 나는 이불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그 목탁 소리를 들으면 아련한

내 마음의 고향인 듯 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처럼 아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산에 가서 아버님의 시신을 묻는 것을 보고 나도 언제인가는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죽으면(땅에 묻으면)그 後 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죽으면 끝인데 나는 무엇인가?

 

어떤 때는 그 生覺 때문에 공포가 엄습해 왔고 학교 공부보다는

“내가 죽으면 그 후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生覺 때문에 어린 나는 말을 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나의별명은 말이 없다고 해서 “돌부처”였고,

무슨 음식이던 음식타박 하지 않고 잘 먹는다고 돼지라고 했는데

나의 姓氏가 白家라서 “백돼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가 절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자주 절에 갔었습니다.

절에는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비구스님이 살았는데 그 스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은 머리를 이부머리로 깎게 되어 있는데 나는 스님들이 삭발하는 것처럼 이발소에 가서 부탁하여 면도로 머리를 밀고 다니기도 하였는데 훈육부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면도로 삭발하고 그 스님에게 부탁하여 사진관에 가서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승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영락없는 스님이었습니다.

 

나는 出家하기 前에 서울에서 6년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스님과 因緣을 맺고 佛敎와 參禪에 대해서 많은 討論을 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서울시 城東區 馬場洞에 있는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간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도축장屠畜場(도살장屠殺場 이라고도 하며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도살하는 곳) 이었습니다.

 

돼지를 가득 실은 대형트럭을 도살장 문 앞에 세우더니 트럭 뒷문을 열고는

뒤에다가  미끄럼틀 같은 커다란 쇠판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더니 뚱뚱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쇠 파이프를 들고 트럭위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트럭위에는 돼지들이 움직일 공간도 없을 정도로 꽉 차있었습니다.

 

멀리서 왔는지 차멀미해서 그런지 입에는 흰 거품을 흘리며 비실대며

서로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비좁은 돼지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더니 돼지의 머리를 사정없이 쇠 파이프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돼지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 하면서 미끄럼틀 쇠판으로 도망가는데

거의 미끄러지다시피 하며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돼지들은 거의 자동으로 도살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돼지들이 전부 도살장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잠그더니 커다란 검정 고무호스로 돼지들에게 무차별로 물을 뿌리는데 그 수압이 얼마나 센지 돼지들이 놀래 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도살장 문을 잠갔지만 문의 높이는 성인 허리춤 정도의 높이밖에 되지 않아서 밖에서 안을 훤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오물을 씻어내기 위해서 미리 목욕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어떤 사람이 커다란 해머를 어깨에 메고 들어오더니 자기하고 가까운 돼지부터

해머로 내리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해머를 내리쳤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장면 이었습니다.

 

해머를 자세히 보니 그냥 해머가 아니고 해머 앞부분에는 4-5cm되는 굵은 쇠못 같은 것이 나와 있어가지고 그 해머로 돼지의 머리를 내려치면 내려치는 충격도 크지만 그 쇠못 같은 것이 돼지 뇌속을 파괴하여 죽게되는것 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얼마나 숙달됐는지 해머로 한번 가격하면 정확하게 돼지의 이마에 찍혔습니다.

 

도살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고 아비규환阿鼻叫喚(산채로 칼로 코를 베어내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 또는 고통이 쉴 틈을 주지 않는 다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고도함)그 자체였다.

돼지들은 쉽게 죽지를 않았습니다.

“꽥꽥!!”소리 지르며 여기 저기 한참을 뛰어 다니다가 쓰러졌습니다.

 

도살장은 피바다를 이루었고 도살 하는 사람은 눈은 살기에 가득 하더니 나중에는 눈의

초점이 없어가지고 자기 정신으로 내려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돼지에 비하면 소는 정말 점잖게 죽었습니다.

소를 잡는 해머는 돼지에 사용되는 해머보다 훨씬 크고 무거워 보였습니다.

소를 그냥 세워놓고 앞머리를 두 방만 내려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져 네 다리를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뒀습니다. 아무리 큰 소도 세 방 이상은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소는 눈물을 흘리는지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는 소도 봤습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삶의 의욕을 잃고 한 동안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습니다.

決定的인 것은 지인知人의 죽음 이었습니다.

그 知人은 人物도 좋았고 財力도 좋은 사람인데 갑자기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을 한 것입니다.

 

화장터에서 가서 화장을 하는데 화장장 직원에게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냐고 물으니

곤란한 표정을 짓드니 내가 재차 부탁을 하니 안으로 들여 보내주었습니다.

내화성耐火性유리를 통해서 그 사람이 타는 모습이 그대로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屍身을 기름으로 태우는데, 관이 이내 타버리고 사람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가 불룩하게 일어나더니 이내 푹 꺼져버렸습니다.

지인知人은 활활 타오르는 기름 불 속에서 반듯이 누워서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살아있을때는 고급승용차에다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 멋이라는 멋은 다부리면서 살던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自尊心은 强해가지고 누가 自己한테 손가락으로 삿대질만 한번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던 사람인데, 自己 몸뚱이를 불가마에 넣고 기름으로 태워도 꼼작 못하고 타는 모습은 나에게는

너무나 큰 衝擊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因緣 맺은 스님에게 나의 괴로운 심경을 토로吐露했는데 出家를 권유하며

“순치황제 출가시”를 읽어 주셨습니다.

 

황금 백옥만 귀한 줄 알지 마소

世上 일 百年이 하룻밤 꿈 같구나

곳곳이 叢林이요 도처에 밥이거늘

발우 들고 가는 곳에 밥 세 그릇 걱정하리!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 알지 마소.

가사장삼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렵다네!

내 自身 이 國土의 主人 노릇 하느라고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만 더욱 시끄럽네.

 

百年을 산다해도 사는 날 三萬六千

風塵 밖 이 山 속의 반나절에 비교하리!

당초에 부질없는 한 生覺의 貪慾으로

가사 장삼 벗어 치우고 곤룡포(袞龍袍)를 감게 됐네

 

이 몸은 그  옛적에 西天竺 스님인데

그 어떤 因緣으로 帝王家에 떨어졌나!

이 몸을 받기 前에 무엇이 내 몸이며

 世上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자라서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 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런가

世上 일 百年間은 하룻밤 꿈과 같고

數萬里 산과 들은 한판의 바둑일세!

 

대우씨는 9주 긋고 탕임금 걸을 치며

진시황이 6국 먹자 한태조 새터 닦네!

子孫은 제 스스로 살아갈 福 짓고 받나니

後孫을 위한다고 소와 말 노릇 그만 하소

 

유구한 歷史 속에 많고 적은 英雄들이

산과 언덕 사방 위에 한줌 흙 되었다네!

올적에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나

덧없는 人間 世上  한 바퀴 도는 걸세

 

애당초 안 왔으면 갈 일도 없을 텐데

기쁜 일없을 진데 슬픈 일인들 있을 손가!

나날이 한가로움 스스로 알 것이니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苦痛 여의고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경계

몸 위에 입는 것은 누더기 한 벌뿐 이로다!

四海와 五湖에서 가장 높은 손님 되어

부처님 도량에서 마음껏 노닐 적에

 

世俗을 떠나는 일 쉽다고 하지 마오.

숙세에 쌓아놓은 善根 없인 아니 되네!

지나간 18년간의 일 自由라곤 없었는데

땅 뺏는 큰 싸움을 어느 때 그치려나.

 

내 이제 손을 털고 山 속으로 돌아가니

千萬가지 근심걱정 아랑곳 할 것 없네!

 

그 後 스님과 出家에 對해서 相議하고 海印寺로 出家 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