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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관련된 '修心訣'

장백산-1 2013. 7.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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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심결 [ 修心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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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결 [ 修心訣 ]

  • 유형

    문헌

  • 시대

    고려

高麗 중기의 승려 지눌(知訥)이 지은 책. 불교의 마음을 닦는 방법 마음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하여 저술한 책이다. 1권 1책. 목판본. 집필 연대와 장소는 미상이나, 저자가 41세로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있을 때 열람했던 ≪대혜어록 大慧語錄≫을 인용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1198년(신종 1) 이후의 저술로 추정된다.

체제는 불경의 일반적인 내용 구분방법인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종분은 다시 9문9답(九問九答)으로 구성되어 있다.

序分의 내용을 보면, 이 世界가 불타는 집과 같이 뜨거운 煩惱로 가득 채워져 있고, 人間은 그 속에서 긴 苦痛을 받고 있음을 想起시킨 뒤 輪廻를 벗어나는 唯一한 方法은 부처가 되는 길임을 强調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리석어  自己의 몸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自己 性稟이 참 법(法)임을 알지 못한 채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고 性稟 밖에서 法을 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眞理를 구하려는 사람은 밖으로 向하는 눈길을 안으로 돌려 마음을 밝힐 것을 가르쳤다. 마음의 본바탕은 물듦이 없고

本來부터 圓滿히 이루어진 것으로, 사람들이 虛妄한 分別만 여의면 곧 어엿한 부처가 됨을 强調하고 있다.

유통분의 제1문답에서는 만일 불성(佛性)이 이 몸 가운데에 있다면 어찌 佛性을 보지 못하는가를 質問한 데 대하여, 지눌은 佛性이 몸 안에  있지만 스스로 보지 못할 뿐이며, 사람이   목마르고  배고픈 줄 알며, 차고 더운 줄 알며, 성내고 기뻐할 줄 아는 그것이

佛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佛性이 부처님의 법인(法印)이요, 사람들의 本來 마음인 만큼 佛性을 헛되이 밖에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비추어 볼 것을 강조하였다.

지눌은 이에 관하여 옛날 이견왕(異見王)과 바라제존자의 문답 등을 예로 들어 詳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2문답에서는 自己가 바로 부처임을 깨달으면 부처로서의 永遠性과 無限한 能力이 나타나야 할텐데 어찌 오늘날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신통(神通)을  나타내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答辨이다.   지눌은 이러한 疑心이 앞뒤를 알지 못하고  道를  배우는 헛된 見解에서 비롯된 잘못이라고 꾸짖고,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와  神通의 關係로 이를 說明하였다.

지눌은 여기서 도(道)에 들어가는 門은 結局 頓悟와 漸修의 이문(二門) 밖에 없다는 것과 모든 聖人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선오후수(先悟後修)를 행함으로써 부처가 된다는 해탈론(解脫論)을 제시하였다.

이를 根據로 하여 神通이란,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아서 단박에 깨달은 뒤 다시 점차로 익히고 닦아감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附隨的이고 枝葉的인 한 現狀이라고 하였다.

제3문답에서는 돈오와 점수의 뜻을  분명히 規定지었다.  頓悟는 凡夫가 한 生覺에 本來부터 煩惱가 없고, 智慧가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本性을 보아 단박에 깨닫는 것이라 하였다.

漸修는 비록 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지만, 끝없이 익혀온 버릇은 한瞬間에 없애기 어려우므로, 頓悟에 依持하여 聖人의 境地에 이를 때까지 점차로 닦아 익히는 修行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지눌은 解脫의 方法에는 돈오後점수(頓悟後漸修)라는 한 가지 길밖에 없음을 示事하여 종래의 점수후돈오(漸修後頓悟)의 입장을 去否하였다.

제4문답과 제5문답은 頓悟의 方法을 설명한 것이다.

제4문답에서는 지눌이 “頓悟는 곧 그대의 마음이다. 만일 마음을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마음을 보는 것이고, 그것이 견성(見性)이다.”라고 한 것을 더욱 자세히 풀이하였다. 지눌은 공적영지(空寂靈智)의 마음이 곧 本性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空寂靈智를 ① 망념[妄念]은 本來 고요함(寂),  ② 客觀世界는 本來 공(空)함,  ③ 모든 법(法)이 空한 그곳에 神靈한 앎이 있음[靈智]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6문답에서는 공적영지심(空寂靈智心)을 더 具體的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고 옳고 그르다 하는등 온갖 行爲를 하는 것이 곧 凡夫의 마음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되돌려 비추어 보면  어떤 소리도 分別도 얻을 수 없고, 범부와 성인, 더러움과 깨끗함, 옳고 그름을 찾을 수 없으며,  온갖  이름과  말을  붙일 수 없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붙을 수 없는[空寂]한  그곳에 靈智가 恒常  밝게 있어서,  스스로  모든 것을 分明히 分別할 줄 알기 때문에 空寂靈智心이라고 하였다.  이어 지눌은 이 空寂靈智心이  聖人이라 하여 더하지 않고  凡夫라 해서 덜하지 않은 것이지만, 聖人이 凡夫와 다른 점은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이라고 하면서,  만일 믿어 疑心이  단번에 없어지면 곧 頓悟한다고 가르쳤다.

제7문답은 돈오 後에 점수를 해야만 하는 理由와 漸修하는 方法을 설명하였다. 점수하는 방법으로는 ① 妄念을 다스리고, ② 禪定과 智慧를 고루 닦는[定慧等持] 것으로 요약하였다. 제8문답에서는 점수문(漸修門)의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定慧等持의 뜻을 具體的으로 설명하였다.

지눌은 佛敎의 修行 方法에 8萬 4000가지 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요강을 간추려 보면 정혜(定慧)·체용(體用)으로 집약되고, 다시 정(定)은 체(體)로, 혜(慧)는 용(用)으로 묶을 수 있으며, 定과 慧는 또한 떨어질 수 없는 關係이기 때문에 結局은 定과 慧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定慧修行을 지눌은 자성정혜(自性定慧)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善惡의 境界에 影響을 받는 사람들은 虛妄한 因緣을 다스리는 工夫方法을 취해야만 한다. 따라서 散亂한 煩惱가 盛한 사람은 먼저 禪定을 닦고 다음에 智慧를 닦아야 하며, 졸음이 많고 멍청한 狀態에 잘 빠지는 사람은 智慧를 먼저 닦아 空의 道理를 觀察한 뒤 禪定을 닦을 것을 권장하였다. 이렇게 사람의 소양에 따라 수행을 달리 하는 정혜법을 지눌은 수상정혜(隨相定慧)라고 하였다.

제9문답에서는 제8문답의 自性定慧와 隨相定慧를 더욱 分明하게 설명하였다. 自性定慧의 頓悟門은 공(功) 들임이 없이 功을 닦는 무공지공(無功之功)으로 定慧雙修하여 成佛하는 法이고,  隨相定慧는 原來  아직 깨닫기 前의  劣等한 근기(根機)가  煩惱를 억지로 끊어서 고요한 데로 들어가는 점수문(漸修門)의 工夫 方法이다.

그러나 돈오 後의 수행에 이 隨相定慧法을 둔 것은 單純히 교문(敎門)에서 말하는 점수의 수상정혜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方便上 이 方法을 말한 것 뿐이다. 깨달은 뒤에 닦는 수상정혜는 점수문의 수행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汚染되지 않고 하는 것이 없는 무위(無爲)의 立場에서 닦는 것이므로,  비록 相을 따라 닦는다고 하여도 마침내 定慧를 함께 닦아서 천진자성(天眞自性)에 契合하게 된다고 하였다.

유통분에서는 이 冊을 올바로 이해하여 부지런히 道를 닦는 것과 이러한 法門이 가지는 功德을 누누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中心思想인 頓悟漸修와 定慧雙受 思想은 뒤에 지눌이  ≪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지어  主張한  간화경절선(看話徑截禪)의  思想과 함께 지눌의 代表的인 思想이 되었고, 이러한 思想은 한국불교禪宗의 修行指標가 되었다.

우리 나라 불교의 禪宗 뿐 아니라 敎宗에서도 重要한 傳籍으로 傳受되어온 이 冊은 明나라 대장경인 명장(明藏)과 ≪빈가대장경 頻加大藏經≫·≪대정신수대장경 大正新修大藏經≫ 등 높은 권위를 가진 여러 나라의 대장경 안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눌의 생존 당시 이래 수십 차례에 걸쳐 판본이 발간되고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중요한 고간본(古刊本)은 다음과 같다.

① 비현각(丕顯閣)이 結하고 신미(信眉)가 言解한 것으로 1467년(세조 13)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② ≪선종유심결 禪宗唯心訣≫에 합간된 것으로, 1493년(성종 14) 고성 벽운사(碧雲寺)의 개판본을 1499년(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복간하였다.

③ 1500년 가야산 봉서사에서 개판한 것으로 해인사 사간장경에 소장되어 있다.

④ 1799년(정조 3) 송광사(松廣寺)에서 개판한 것으로 장서각도서에 있다.

⑤ ≪선문촬요 禪門撮要≫에 수록되어 있으며, 1908년 금정산 범어사 개간본에도 수록되어 있다.

현대판으로는 1934년 방한암(方漢岩)이 현토하고 이종욱(李鍾郁)이 번역한 ≪고려보조국사법어 高麗普照國師法語≫와 김탄허(金呑虛)의 ≪고려국보조선사어록≫, ≪한글대장경≫ 153권, 이기영(李箕永) 역 ≪한국의 불교사상≫, 심재열(沈載烈) 강설 ≪보조법어≫(보조문화사, 1979) 등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普照法語」(法寶院, 金呑虛譯, 1963)
「韓國의 佛敎思想」(李箕永 譯, 三省出版社, 1976)
「佛日普照國師」(金渭石, 『佛敎學報』2, 1964)
「知訥의 禪思想」(, 『韓國佛敎思想史』, 197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