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흐르는 물처럼 늘 새롭게---/ 법정

장백산-1 2014. 7. 19. 23:09

 

 

 

 

 ▒ 흐르는 물처럼 새롭게 | 법정스님의 글


 

 

우리 옛 시조에 이런 노래가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푸른 산도 自然이고 흐르는 물도 自然이다.

산도 自然이고 물도 自然,

이 산과 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또한 自然 그것이다.

이런 自然 속에서 自然스럽게 자란 몸이니

 늙기도 自然에 맡기리라는 노래다.

 

 自然을 읊은 수많은 시조 중에서도 含縮美가 뛰어난 노래다.

 요즘처럼 自然과 그 自然의 調化와 秩序를 背反하고

反自然的으로 살아가는 現代人들에게는 날이 선 시퍼런 法門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되찾으려면 이와 같은 自然의 順理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산이 깎이어 허물어지고 숲이 사라지고 강물이 말라붙고 들짐승과 새들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 사람만 달랑 남아서 살 수 있을 것인가?

自然이 消滅된 황량한 空間에서 컴퓨터와 TV와 가전제품과

자동차와 휴대전화와 오락기구만을 가지고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푸른 生命體는 없고 無表情한 道具만이 들어선 環境에서

우리가 自然스럽게 늙고 제 명대로 살다가

익은 열매가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自然스럽게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5백년 전 이 땅에서 살다 가신 옛 어른의 노래를 되새기는 뜻이 여기에 있다.

이 시조는 조선조 현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하서(河西) 김인후가 지은 것.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송시열의 작품이라고 했지만

 ‘하서집’에 「자연가(自然歌)」라는 한시가 실려 있는 걸 보아도

김인후가 읊은 노래임이 분명하다.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90년만의 가뭄이라고 해서 저수지마다 바닥을 드러내고

댐의 물이 줄어 그 저수량이 얼마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불안했다.

먹을 물이 달려 차로 실어나르고 밭작물이 타들어가고 갈라진 논바닥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을 대느라고 농촌마다 땀을 흘렸다.

물 귀한 줄을 거듭 실감하게 되었다.

이런 精誠에 感應이 있었는지 방방곡곡에 단비가 고루 내렸다.

채소와 벼포기가 기운을 되찾고 산과 들녘에 생기가 넘친다.

自然은 스스로를 調節하는 能力을 지니고 있다.

가물면 비를 내리고 瀑雨가 내려 洪水가 나면 날이 개인다.

사람들이 자신의 분수를 알고

自然의 恩惠를 잊지 않는 한 自然은 절로절로 되어간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온 자취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地球 곳곳에 氣象異變이 일어나

절로절로의 그 흐름이 끊어진 것은 地球를 依持해 살아가는 人間들 탓이다.

한 마디로 人間들이 無知해서, 너무도 영리하고 영악해서다.

地球를 끝없이 허물고 착취하고 더럽혀

절로절로의 自淨能力마저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번 가뭄 때 우리는 實感할 수 있었다.

물이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生命 그 自體라는 事實을.

물이 얼마나 所重한 것인지 그 恩惠를 잊어버리고

함부로 퍼쓰고 흘려보내고 더럽혔던 것이다.

90년만의 가뭄은 물의 恩惠에 대해서 고마움을 일깨우고

함부로 물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宇宙的인 配慮라고 生覺된다.

老子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겸손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딱딱한 것, 사나운 것에 떨어질 때는 물보다 더 센 것은 없다.

이와 같이 弱한 것이 强한 것을 이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댐을 이루어 動力을 일으킨다.

弱한 것이 强한 것을 이긴다는 이 말은 自然이 지닌 母性的인 그 저력을 뜻한다.

개울가에서 나는 인간사를 배우고 익힐 때가 더러 있다.

깊은 산 속이라 어지간한 가뭄에도 개울물은 그리 줄지 않는다.

개울물은 밤이고 낮이고 항상 흐르고 있지만 언제나 그곳에 그렇게 있다.

항상 그곳에 있어 어느 때나 같은 물인것 같지만 每瞬間마다 새로운 물이다.

時間도 흐르는 개울물과 같은 것이라고 生覺된다.

어제도 나는 이 개울가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어제 그 때는, 그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또한 그 때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은 새로운 나다.

개울물이 항상 그 곳에서 그렇게 흐르고 있어

어느 때나 같은 물 같으면서도 每 瞬間마다 새로운 물이듯이

우리들 自身의 ‘있음’도 그와 같다.

그러니 흐르는 물처럼 늘 새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어 ``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삶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흰눈이 되어 얼어붙은 人間의 大地를 포근하게 감싸주고

서리가 되어 歲月의 變化를 미리 알려 주기도 해야 한다.

비와 이슬이 되어 목마른 大地를 적셔 주면서

풀과 나무와 곡식과 과일들을 보살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물의 德은 萬物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道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가뭄 끝에 내린 단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물菩薩의 恩惠를 生覺했다.

 

 

음향;글쓴이 : 바다정경

        글쓴이 ; 法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