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가 사라질 때 행위는 사라진다 / 이뀨선사 강의 - 법의 연꽃명상의 세계
行爲者가 사라질 때 行爲는 사라진다
삼계(三界)에 지은 모든 罪들, 나와 더불어 스러져 가리. 삼계란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 즉 시간의 세계이다. 이 경문에는 혁명적인 의미가 있다. 삼계에 지은 모든 罪들, 自身이 存在하지 않는다는 事實을 아는 瞬間, 過去에 行한 모든 것들과 現在 行하고 있는 모든 것들, 未來에 行할 모든 것들은 사라져버린다. 行爲者가 사라질 때 行爲는 사라진다. 東洋에서는 사람들이 카르마나 行爲에 지나치게 마음을 써 왔다. 그들은 過去에 行한 잘못된 行爲들 때문에 몹시 두려워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代價를 치러야 한다고 生覺해 왔다. 그것들로 因해 苦痛받아야 한다고. 이뀨는 그대에게 귀중한 열쇠를 주고 있다.
“두려워 마라, 그대는 存在하지 않으니. 그러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뭘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그대가 存在하지 않는데.“ 그는 그대 발밑의 바로 根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 삼계에 지은 모든 罪들, 나와 더불어 스러져 가리. 따라서 唯一한 길은 自身 안에 沈潛하여 自身의 ‘무(無)’를 보는 것이다. 그대가 行爲한 잘못의 무게에 對應하여 좋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가 좋은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行爲함은 그것이 惡하건 善하건 行爲者라는 幻影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差異点을 보라! 一般的인 宗敎들은 그대에게 道德的이 되라고, 착한 일을 하라고, 罪를 삼가라고, 그리고 십계명을 명심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하지 말고 저것은 하라는 것은 平凡한 宗敎의 主張이다. 非凡한 宗敎는 말한다. “ 行爲者가 사라지라. 좋은 일 혹은 나쁜 일을 하는 것에 神經 쓰지 말아라.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누가 아는가? “ 實際, 아무것도 좋지 않고 아무것도 나쁘지 않다. 存在는 '하나'임으로, 어떻게 거기 둘이 있을 수 있는가? 一切가 하나이다. 善은 惡이 되고 惡은 善이 된다. 人間은 결코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事物들은 끊임없이 서로 뒤바뀌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라...... 그대는 어떤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좋지 않은 일이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자식을 세상의 모든 惡에서 保護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 保護 때문에 자식이 그 惡에 빠지게 만든다. 그녀는 자식에게 誘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神은 아담에게 이 果實은 먹지 말라고 말했다. 神은 이담에게 誘惑을 일으켰다. 자식을 파멸시켰으나 그는 좋은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智慧의 나무에서 果實을 따먹지 말라.”고 아담에게 말함으로써 神은 誘惑과 欲望을, 저 나무에서 果實을 따먹어야겠다는 抵抗할 수 없는 아담의 欲望을 불러일으켰다. 原罪가 發生했다. 줄곧 좋은 일만 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는 아주 害롭다는 것이 드러났다. 좋은 行爲者는 世上에서 가장 害로운 사람들이다. 世上은 그들 때문에 苦痛받았다. 그들은 意圖는 좋지만 理解力은 제로이다. 단지 좋은 意圖만 갖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 理解에 이른 사람들, 그들은 좋고 나쁘고의 問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行爲者의 사라짐에 관한 문제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行爲者로서 남는 것은 나쁜 것이고 行爲者가 사라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存在하지 않는 것은 德이고 存在하는 것은 罪다. 이 이야기를 들어 보라. 옛날에 커피를 몹시 싫어하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 事實을 몰랐다. 그가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침마다 그에게 도시락과 함께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채워 싸 주기를 무척 즐겨했다. 그는 직장에 갈 때마다 항상 도시락과 보온병을 가지고 갔다. 그 알뜰한 남자는 저녁에는 다시 그것들을 집에 가지고 왔지만 커피 보온병은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가 커피를 혐오하는 만큼이나 그의 아내는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보지 않을 때 자바 커피를 도로 커피 주전자에 부었다. 이브닝 커피는 그의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면제받았다.
어느 날 밤 아내는 남편이 부정한 짓을 하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밤도 그녀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녀는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일주일쯤 후에 세 번째 같은 꿈을 꾸면서 그녀는 질투와 불안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事實이야.’하고 그녀는 生覺했다. ‘그건 틀림없이 事實일거야. 벌레 같은 사람. 바람을 피우는군.‘ 그래서 그녀는 복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일 아침 그의 보온병에 비소를 조금씩 넣으며 스스로를 죽일 때까지 복수를 계속했다. 남편의 無罪 석방 공판에서 판사가 말했다. “恒常 똑같다. 꿈을 믿는 사람들은 自己 自身을 殺害한다.“ ‘나’라는 것은 가장 巨大한 꿈이다. 그 꿈은 우리의 自殺이었다. 지금 이 말이 굉장히 逆說的으로 들리나 그 ‘나’라는 生覺은 곧 自殺과 같음이 證明됐다. 自我로서의 그대가 사라진다면, 靈的인 自殺을 한다면, 그대는 처음으로 眞正한 삶을 살 것이다. 처음으로 그대는 窮極의 삶을 향해 태어날 것이다. 처음으로 그대는 時間에 속하지 않는 어떤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나면 아무것도 좋지 않고 아무것도 나쁘지 않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물으면 대답한다. 그때는 어떻게 사는가 걱정하지 않는다. 그때는 마음 없이 산다. 그때 사람은 無로써 사는데, 이것이 佛敎의 目的이다. 무(無)로써 사는 것, 이것이 니르바나이다.
-오쇼 라즈니쉬 이뀨선사 강의, 법의 연꽃(Take It E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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