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이 내 의사(醫士)였다. 위의 글 제목은 오스트리아의 발명가이며 자연주의자, 철학자인 빅터 샤우버거(1885~1958)가 한 말이다. 오스트리아의 삼림(森林)지역에서 성장한 그는 청년시절에 산림감시인으로 근무를 하였었다. 벌목한 나무들을 강물에 띄워서 운송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손상이 많이 나는 것을 보고 연구해서 1928년에 설치한 노이베르그(Neuberg)의 목재 운송수로가 成攻的으로 作動했음에도 科學的으로 說明을 할 수 없어서 認定을 받지 못하였었다.그 原理를 설명할 공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그것을 항의 하면서 한 말이다. 현재는 그의 손자가 조부(祖父)의 연구를 과학으로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릴레이(Galilei, )는 1581년 (17살 때)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우연히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을 보고 자신의 맥박으로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였는데 줄이 긴 것은 느리게, 짧은 것은 빠르게 흔들리는 것을 발견 하였다. 집에 돌아와 연구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서 현대의 물리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진자(振子)의 주기(周期)’이론을 발표 하였다. 그의 이론에 의하여 시계가 발명되었다. ![](http://tv02.search.naver.net/ugc?t=470x180&q=http://thumb.photo.naver.net/exphoto02/2009/3/19/93/%C0%AF%C3%A4%B2%C9_nkk1105.jpg) 학문이 세분(細分)되기 전에는 哲學이 과학의 상당부분을 담당하였었다. 심지어는 철학자가 병자를 치료하기도 했으며 정치에도 개입하였었다. 철학이 과학의 영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발원(發源)이 관찰(觀察: Observation)에서 시작되는 動機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科學은 그 이론을 公式에 대입하여 논리전개가 되어야 하고 그 중간과정을 입증해야 하고, 같은 조건에서는 언제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철학은 공식이 아닌 槪念에서 이치(理致)적으로 설득이 된다면 그걸로 足하다. 世上엔 科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그래서 결과가 분명한 것에 대하여는 중간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실증과학(實證科學 )이라는 말로 일부는 인정하기 이르렀다. 아직은 그것을 설명할 만큼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문제는 현대의학에 의하여 ‘불치병(不治病)’으로 명명(命名)된 病에 걸린 患者들이다. 不治病이란 現代醫學으로는 治療가 안 된다는 말이지 그 病으로 틀림없이 죽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이 아닌 다른 方法을 찾는 게 道理이다. 그래야 산다.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낸 사람들은 대부분 6개월 혹은 3개월의 時限附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 理由는 藥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산으로 들어 간 사람들이다. 모든 藥을 끊고 오직 攝生에만 集中함으로 몸의 免疫體係가 그 活性化 되어 원상복귀를 해 준 결과이다. 自然에 順應하여 얻어진 것을 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病을 앓다 보면 그 病에 대한 傳門家가 된다. 問題는 그 知識들이 현대의학에 根據를 하는 것이니 醫四들 말이나 患者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를 리가 없다. 그건 올바른 解法이 아니다. 自然治癒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病 낫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藥 대신 뭔가를 해야 한다, 그게 藥보다는 돈은 안 들지만 그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하고, 점진적이 되기에 강인한 忍耐가 필요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죽는 것 보다야 낫다. ![](http://tv01.search.naver.net/ugc?t=470x180&q=http://cafefiles.naver.net/data27/2007/11/28/37/024587_leileho_flsk7737.jpg) 섭생(攝生)은 비싼 補藥을 먹는 게 아니라 成長期에 먹었던 飮食이 보약이다. 가난했던 이는 그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 부자였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그 때의 음식이 내 體質에서는 가장 흡수가 잘 되는 음식이고 그래야 체력이 유지되어 면역체계가 活性化 된다. 어느 경우든 걷기운동과 햇볕은 필수다. 자연(自然) 속에는 조물주(造物主)의 섭리(攝理)가 들어 있다. 自然 속 그곳에서 答을 찾는 게 當然하다. 투병(鬪病)에서의 자연(自然)이란 本人의 몸이 自然이다. 人間의 몸도 精神도 宇宙自然의 一部일 뿐 獨立된 個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眞理)는 實驗室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觀察에서 얻어 지는 것이다. 그 觀察의 요령은 매일 혈압, 맥박, 체온, 체중, 식욕, 배변/배뇨 횟수, 수면시간, 기분, 날씨 등등의 일지(日誌)를 써서 그래프를 그려 나가면 한눈에 그 變化를 읽을 수 있다. 식욕이나 기분 등등 수치화(數値化)가 안 되는 것에는 1~10의 구분을 두고 1은 최하, 10은 최상으로 하여 기록하면 된다. 동시에 그 날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해서 비교해 보면 몸의 반응이 좋은 음식을 찾을 수 있다. 단 몸의 콘디션은 그 날의 날씨(기압)에 영향을 받기에 그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 變化에서 肯定的인 것이 發見된 後에는 그 治僚 速度가 倍速된다. 그게 觀察이고, 그 觀察이 자신의 病을 이기는 秘訣이다. 해서, 患者들이 後日에 ‘自然이 내 醫士였다(Nature was My Doctor.)’라고 간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김진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