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뜻있는 선비들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腹背受敵)’이라고 표현했다. ‘배(腹)와 등(背) 양쪽에서 敵이 몰려오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한반도 역사는 늘 그랬다.
배와 등을
敵에게 내보이면서 살아야 하는 ‘끼인 운명’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얼마 전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병자호란 : 역사평설’(한명기 저)이라는 책이었다. 2권짜리 책을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된 건 책 앞부분에
등장하는 가슴 아픈 사연 때문이었다. 1675년 봄. 만주 벌판을 달려온 한 老人이 압록강변에 도착한다. 老人의 이름은 안단(安端).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가 노비로 살다 40년 만에 탈출한 조선인이었다. 베이징을 출발해 산해관을 거쳐 선양을 지나 의주에 다다른 安端은 국경을
관리하는 조선인 관리들에게 고향에 돌아가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 허망했다.
당시 의주부윤으로 있던 조성보는
때마침 의주에 와 있던 청나라 칙사들에게 안단을 넘겨버렸다. 칙사들은 안단을 포박해 청나라로 압송했다. 끌려가면서 안단은 절규한다.
“고국을 그리는 정이 늙어 갈수록 더욱 간절한데 왜 나라는 나를 죽을 곳으로 내모는가.”
정황상 안단은 청나라에
끌려가 비참하게 처형됐을 것이 분명하다.
국권을 가진 독립국의 결정이라고는 보기 힘든 이 어이없는 상황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 결정이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 체결된 치욕적인 조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의주부윤의 한심한 판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바로 조선이라는 국가의 민낯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혹, 청나라가 침략적이고 야만적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진화생물학이나 동물행동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생명체의 역사는 개인과
개인 간, 집단과 집단 간 생존을 놓고 싸워야 했던 투쟁의 무대였다. 생존이 걸려 있을 때 ‘선과 악’은 양자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허구의
개념에 불과하다. 생명체의 가장 큰 목적은 생존이고 존속이다. 필자 생각에 국가는 그나마 가장 성공한 공동결사체다. 국가만큼 생존과 존속을 잘
지켜주는 공동체는 불행히도 아직 발명되지 못했다.
‘병자호란’을 재현한 책을 읽으며 필자는 약한 국가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을 만들어내고, 또 얼마나 많이 인권을 유린하는지 목도할 수 있었다.
병자호란은 처참한 역사였다. 국왕이 끌려나가 오랑캐
수장이라며 멸시했던 홍타이지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국토는 파괴됐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청나라에
끌려간 백성만 50만명이었다. 당시 조선 인구를 900만명 선으로 추산하는 이론을 대입해보면, 대가족 사회였던 당시 집안마다 1명 정도씩은
고국을 떠나야 했다는 단순 계산이 가능하다.
스피노자를 비롯한 근대 철학자들은 유럽의 혼란상을 보며 ‘국가가 최종 목적지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렇다. 국가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 국가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지 이미 목적지에 와 있는
‘완전체’는 아니다. 수많은 욕망과 이해관계, 각기 다른 삶의 목표와 처한 상황, 각기 다른 이념과 종교 등이 하나의 도가니에 담겨 있는 것이
국가다. 하지만 이 도가니는 생존하고 존속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선(善)’이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판단과 노력에 따라 국가는
병자호란의 그날처럼 약골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강골이 될 수도 있다. ‘끼인 운명’에 처한 한반도는 체질상 약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가 더
쉬워 보인다.
요즘 중국의 굴기와 일본의 야욕, 러시아와 미국의 행보 등 대외 상황과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해충돌을
바라보며 문득 고국에서조차 버림받은 안단의 운명이 생각났다면 지나친 걸까.
[허연 문화부장]
[ⓒ 매일경제 &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