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法界緣起 , 十玄緣起 (법계연기 십현연기)

장백산-1 2015. 2. 22. 19:00

 

 

 

 

 

 

                                                                                                                                                                                         

 

 

法界緣起,   十玄緣起門

 

                                                                        

법계연기(法界緣起)

中國 華嚴宗에서는 華嚴이 別敎一乘圓敎이며 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華嚴世界를 法界緣起의

世界라고 보고 있다. <華嚴經>의 佛菩薩世界를  因果緣起 理實法界의 法界緣起로 나타낸 것이 華嚴宗의

宗聚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法藏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法界緣起說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대에 와서

四種法界說로 確定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四種法界의 意義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法界關門>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法界三觀을 설하고 있다. 먼저 眞空觀은 모든 法은 實性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執着을 떠난 眞空인 줄을 함이다. 다음 理事無碍觀은 差別있는 事法과 平等한 理法은 分明하게

存在하면서도 서로 融合하는 것임을 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宇宙間의 온갖 事物이

서로서로 一切를 含容하는 것으로 함이다.

 

지엄은 法界緣起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緣起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緣起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五敎藏>에서 法界緣起를 果分不可說과 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十佛自境界와 普賢境界라 한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四種法界說로 發展하게 된다. 여기서 法界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緣起現前하는

宇宙萬有이다. 이 法界의 體는 一心인데 圓明俱德의 一心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一心이다. 따라서

法界란 一心體相에 緣起하는 萬有이다. 그래서 宇宙萬有의 낱낱 法이 自性을 가지고 各者의 領域을 지켜

調和를 이루어가는 것을 法界라 한다. 이 法界를 설명하는데 事와 理의 區別을 세워 論한 것이 四種法界이다.

 

四種法界事法界, 理法界, 理事無碍法界, 事事無碍法界이다. 이 네 가지 法界說은 모든 宇宙萬有는 一心에

統攝되고 있으며, 이 統攝되는 것을 現象과 本體의 兩面으로 觀察하면 四種法界 意味로 解釋된다는 것이다.

이 中에서 華嚴의 重重無盡法界는 事事無碍法界를 말한다. 事法界는 모든 法이 差別있는 世界를 가리킨다.

 

事法界란 現象, 事物, 事件, 事故, 사람, 環境 等을, 界란 分을 뜻한다. 낱낱 事物은 因緣에 依해 和合된 것이므로

諸各己의 限界를 가지고 區別되는 것이다. 個體와 個體는 共通性이 없이 差別的인 面만을 본 것이다.

 

理法界는 宇宙의 本體로서 平等한 世界를 말한다. 理는 原理, 本體, 法則, 普遍的 眞理 等을, 界란 性을 말한다.

窮極的  理는 總體的  一心眞如이며, 空이며 如如이다. 宇宙萬物은 그 本體가 모두 緣起空性라는 것으로 個體와

個體의 同一性, 共通性을 본 것이다.

 

理事無碍法界는 理와 事, 卽 本質界와 現象界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걸림없는 하나의 相互關係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金이라는 금속은 理의

未分化된 本體를 像徵하며, 獅子라는 加工品은 分化된 사(事) 혹은 現象인데 사자가 金에 依存하여 表像되고

있음이 바로 理事無碍의 境界라는 것이다.

 

事事無碍法界는 個體와 個體가 自在融攝하여 現象界 그 自體가 絶對的인 眞理의 世界라는 뜻이다.

諸法은 서로서로 容納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圓融無碍한 重重無盡緣起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事事無碍法界 이것이 곧 華嚴의 無盡法界緣起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法界는 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意志의 轉換이 있어야 可能한 直接的인 깨달음의 世界이다. 直接的이고 構體的인 體驗과 實踐行을

通해 現顯하는 世界이다. 있는 그대로의 世界, 늘 그렇게 있는 世界이나 理解나 檢證의 問題가 아니라

直接的이고 構體的인 體驗을 通해 現實化해야 하는 世界이다.

 

 

십현연기(十玄緣起)

 

事事無碍의 重重無盡 法界緣起를 體係的으로 觀察한 構體的 說明이 十玄緣起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十玄緣起는 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한다. 십(十)은 圓滿具足의 만수(滿數)이고, 현(玄)은 玄妙, 門은

事事無碍法門이다. 10가지 深奧한 神秘의 無碍世界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十玄門이 설해지고 있는

中國 華嚴專籍으로는 지엄의 <華嚴一乘十玄門>, <수현기>와 법장의 <華嚴五敎藏>, <화엄경문의강목>,

<金獅子藏>, <탐현기>와 징관의 <화엄경소>, <현담>, <화엄약책> 그리고 종밀의 <원각경대소> 등이

대표적이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탐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탐현기> 以後에 보이는 十玄說을 新十玄이라 하고

그 利前의  十玄說을 古十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新十玄을 中心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新十玄緣起門은

 

同時具足相應門, 廣狹自在無碍門, 一多相容不同門, 諸法相卽自在門, 隱密顯了俱成門,

微細相容安立門, 因陀羅網境界門, 託事顯法生解門, 十世隔法異成門, 主伴圓明具德門이다. 이 가운데

광협자재무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古十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과 유심회전선성문을 고친 것이며,

은밀현료구성문은 古十玄의 비밀은현구성문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十玄緣起說의 總說이다.

同時는 先後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具足은 모두 攝受하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一切 諸法이 열 가지 뜻을 同時에 具足해서 相應하여 圓滿히 造和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뜻이란?  敎義, 理事, 境地, 行爲, 因果, 依正, 體用, 人法, 逆順, 感應이다.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은 緣起 諸法에 各各 廣狹이 있으면서도 無碍하다는 것이다. 이는 間隔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存在들이 아무런 障碍가 없다는 뜻이다. 廣은 밖이 없다는 無外의 뜻으로, 넓음이란

限界를 갖고 있지 않아 밖이 없는 것이다. 狹은 안이 없다는 無內의 뜻으로, 가장 좁음이란 그 自體 안에

空間을 갖고 있지 않아 안이 없다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에 自性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抱攝하는 것이다. 좁은 것과 넓은 것은 하나와 全切로 말할 수 있으므로 서로 自由롭게 拘碍됨이 없이

서로 交換될 수 있다. 이는 古十玄에서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이다. 純粹한 것과 雜된 것이 本分位를

保存하면서 同時에 一念에 具足하여 圓融無碍하다는 意味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섞여 있으니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全切가 서로 容納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全切에 들고 全切는

하나에 녹아 있어 圓融하고 無碍自在하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全切이고 全切 속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各己 나름대로의 個性으로 本來의 面目을 保有하고 있다. 하나와 全切가 混亂되지 않는 相入을 말한다.

相入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容納하고 받아들여 걸림없이 融合하는 것이다. 하나란 하나라는 自性을 가진

確定的인 하나가 아니라 緣起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 가운데 全切이고 全切 속의 하나이지만, 하나는

하나로서 全切가 아니고 全切는 全切로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全切가 아니고 全切도 하나가 아니다.

하나와 全切가 各各 제 나름대로의 個性으로 本來의 面目을 保有하고 있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要素들이 서로 同一視되는 것을 말한다. 窮極的인 差別로부터의

自由이며 自身을 否定하고 스스로를 他者와 同一視함으로써 綜合的인 同一化가 이루어진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同一視한 結果 함께 調和하여 움직인다. 相入이 이것 저것이 서로 걸림없이 融合하는 妙의 側面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自己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의 側面이다. 두 가지가 하나로 融合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物件의 體 그대로가 다른 物件인 뜻으로 말하는 ‘卽’이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은 古十玄에서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秘密隱’과 ‘顯’으로

된 것을 ‘隱密’과 ‘顯了’로 整理한 것이다. 隱密 卽, 숨은 것과 顯了 卽, 드러난 것이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금사자장>에서는 우리가 金獅子를 接할 때 사자로서 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고 金은 없으며, 金을 볼 때는

단지 金뿐이고 사자는 없으나, 金獅子는 金과 사자를 合하여 成立된 것이라고 한다. <화엄현담>에서는 반달의

예를 들고 있다. 半달은 半은 빛나고 半은 어둡다. 그러나 감춰진 半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을 地球에서 보면

큰 공만하게 보이지만 實際는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 自體가 늘어났다 줄어들지 않는다.

 

그 半달은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밝음 속에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 밝음이 있다. 하나로 많은

것을 攝受하면 하나는 드러나고 많은 것은 가리워진다. 많은 것이 하나를 거두어들이면 많은 것은 드러나나

하나는 가리워진다. 한 터럭이 法界를 攝受하면 곧 나머지 터럭의 法界는 모두 가리워지고, 나머지 낱낱

터럭의 가리워지고 드러남도 또한 그러하다. 한 편은 보이고 한 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둘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가 成立되면 다른 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微細한 것의 神秘를 말하는 것이다. 微細란 人間의 理解가 닿는 곳을

넘어서 超高度로 작고 精密하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能히 많은 것을 含容하므로 상용(相容)이라고 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섞이지 않으므로 안립(安立)이라고 한다. 無限世界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存在하며,

이들 世界의 一切 먼지 속에 또다시 無限世界가 存在한다는 의미이다. 一念 중에 모든 것을 具足하여

가지런히 나타나 明了하지 않음이 없음을 겨자씨를 담은 甁에 비유하기도 하고 화살이 빽빽히 꽂친

화살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해 相互 反映의 理論을 말하는 것이다.

帝釋天 宮殿에 걸린 보배網의 各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一切 구슬이 비쳐 無盡한 것처럼 法界의 一切도

重重無盡하게 緣起相由하여 無碍自在하다.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은 모든 緣起된 存在가 그대로 法界法門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存在는

그 當體가 그대로 緣起 顯前한 것이므로 山河大地 頭頭物物 草草花花가 다 毘盧遮那佛 淸淨法身 緣起空性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比喩는 곧바로 法의 象徵이고, 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法이다.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은 時間에 體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十世가 相卽, 相入하여 하나의 總合을

이루지만 그러나 前後 長短의 區別이 뚜렷하여 秩序가 整然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에

各各 三世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그 九世는 한生覺, 一念, 卽, 한 瞬間에 抱攝되므로 십세(十世)이다.

또 一念을 열면 九世가 되므로 合하여 十世가 된다. 그래서 一念이 十世無量劫이고 無量劫이 一念이지만

十世는 낱낱이 서로 混雜함이 없이 完然히 區別되어 있는 것이다.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은 主體와 客體가 調和롭게 함께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存在도

獨者的으로 홀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宇宙法界에는 어느 한 事物도 홀로 생겨나 存在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主人이 되고 客이 되어 모든 德을 圓滿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古十玄의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

을 바꾼 것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

 

十玄緣起와 더불어 六相圓融 또한 華嚴無盡緣起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다른 側面으로 중시되고

있다. 六相이란 總相 別相, 同相 異相, 成相 壞相(총별 동이 성괴)을 말한다. 이는 總別, 同異, 成壞라는 세 쌍의

對立되는 槪念이나 모습이 서로 圓融無碍한 關係에 놓여 있어,어느 하나가 다른 다섯을 抱含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法界緣起가 成立한다는 論說이다.

 

모든 存在는 다 총상, 별상, 동상, 이상, 성상, 괴상의 六相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 六相은 서로 다른 相을

防害하지 않고 全切와 部分, 部分과 部分이 一切가 되어 圓滿하게 融和되어 있다는 것이다. 緣起로써 이루어진

모든 存在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緣)이 모여 成立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成立된 총상(總相)은 部分을 總括하여

全切를 만들고 있다. 또 별상(別相)은 全切를 構成하고 있는 部分과 部分을 말하는데 이 別相이 總相에 依持하여

全切를 圓滿하고 完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總相이 없으면 別相이 없고 따라서 總相 밖에 別相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總相과 別相이 서로 有機的인 關係에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동상(同相)이란 別相의 하나하나가 서로 調和되어 모순되지 않고 成立되는 힘을 均等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別相이 서로 混同되지 않고 있으면서 諸各己 相을 잃지 않고 調和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別相이 各各 다르기 때문에 總相을 이루는 것이다. 成相은 部分이 다만 集合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別相 異相이 有機的인 關係性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全切를 成立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別相이 總相을 成立시키면서도 別相  諸各己의 資格을 갖추고 있으면서 總相의 모양으로

混融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六相을 집에 比喩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總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지붕, 바닥, 벽 등을 總括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別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지붕, 바닥, 벽 등 그 自體를 말한다.

同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지붕, 바닥, 벽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造立시키고 있는 것이다.

異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지붕, 바닥, 벽 등은 各各 가로와 세로로 되어 있어 다른 類形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成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지붕, 바닥, 벽 등이 各各 因緣이 되어 집을 完成시키고 있는 것이다.

壞相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造立하여 成立시키고 있으면서도 諸各各의 본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六相의 關係를 체상용(體/相/用)의 關係로 나누어 보면 總相과 別相은 緣起의 體라 하고,

同相과 異相은 緣起의 이라고 하고, 成相과 壞相은 緣起의 用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