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고요속의 외침

장백산-1 2015. 8. 25. 11:16
|몽지와 릴라

   

 

 

<종용록>, 고요 속의 외침

제1칙 세존이 법좌에 오르다

<시중>

문을 걸어 잠그고 잠만 자는 것은 가장 뛰어난 부류를 상대하는 것이고, 돌아보고 살펴보며 몸을 움츠렸다

펴는 것은 나머지 부류를 대접하기 위한 것이다. 어찌 구부러진 나무로 만든 법상 위에 올라 귀신의 눈동자

를 굴리겠는가? 긍정하지 못할 사람이 있거든 나오너라!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示眾云。閉門打睡接上上機。顧鑑頻申。曲為中下。那堪上曲䚄木弄鬼眼睛。

시중운   폐문타수접상상기   고감빈신   곡위중하   나심상곡목록농안청

有箇傍不肯底。出來。也怪伊不得。
유불방불긍저   출래   타괴이부득

<본칙>
세존께서 어느 날 법좌에 오르셨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목탁을 치며 말했다.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곧장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舉。世尊一日陞座。文殊白槌云。諦觀法王法。法王法如是。世尊便下座。

<송고>

한 자락 참된 풍광을 보았는가?
끊어짐 없이 조화옹은 베틀과 북 다스리네.
옛 비단에 봄의 모습 담아 베를 짰건만
봄 신령이 미리 누설한 것을 어찌하랴.

頌云:一段真風見也麼。綿綿化母理機梭。織成古錦含春象。無柰東君漏泄何。

[사족]

어째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잠만 자는 것이 가장 뛰어난 부류를 상대하는 것일까?

이 일(깨달음, 불법, 진리, 도 등등)은 입을 열면 이미 그르쳤고, 생각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자마자 어긋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럴까?

이미 입을 열고 생각을 움직였으니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어찌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

하겠는가? 부디 분명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께서는 이 사람의 가벼운 혓바닥을 탓하지 마시기 바란다.

곧장 가리켜 보이자면, 이 글이 눈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있는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것이 불법이요,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도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이것이다.

이것은 생각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일 뿐이다.

이것은 생각 이전의 것, 생각이 일어나는 바탕이기에 결코 생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부류는 입을 열기 이전에, 한 생각 일으키기 이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잠만 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찌 나머지 부류를 위한 자비의 방편이 없을 수 있겠는가?

법상 위에 올라가 때로는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탁자를 두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고

어깻죽지를 때리기도 하며, 때로는 이런 말 저런 말을 가지고 자질구레 이 일을 설명하는 모든 것들이

나머지 부류를 위한 것이다.

본래 아무 거리낌 없이 주어져 있는 사실을 스스로 돌아보고 살펴볼 수 있도록 이렇게도 해 보이고

저렇게도 해 보이는 것이다. 웅크린 사자가 몸을 움츠렸다가 활짝 펴는 것처럼 이것을 쓰는 가운데

스스로 깨달을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가? 이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이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긍정하는 일과 부정하는 일은

서로 다른 것인가? 말을 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 깨어있는 것과

잠을 자는 것이 같은가, 다른가?

긍정은 어디서 나오는가? 부정은 어디서 출현하는가? 말과 침묵, 움직임과 멈춤, 깨어있음과 잠의

참다운 근원은 어디인가? 그곳에서 나를 비롯한 삼라만상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대는 지금 어디 있는가?

세존께서 어느 날 법좌에 오르셨다. 세존과 그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신

어느 날과 지금 이 순간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는 행위와 그대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다른가?

여기서 분명하게 이 일을 꿰뚫어 보았다면 문수보살과 문수보살이 목탁을 치며 말하는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문수보살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법왕의 법이 바로 이 일이다. 법왕의 법이 바로 지금 이와 같다. 세존이 입을 열어 법을 말하기 이전에

이미 법왕의 법은 만천하에 公開되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법왕의 법을 안다면 입을 열어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상관이 없다.

세존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문수보살의 말을 듣자마자 곧 법좌에서 내려왔다.

법좌에 올라가는 일이나 법좌에서 내려가는 일이나 결코 다른 일이 아니다.

세존께선 법좌에 오르신 적도 없고 내려가신 적도 없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세존마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알겠는가? 이 한 자락의 참된 風光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눈앞에서 온갖 조화가 끊어짐 없이

벌어지고 있다. 세존께선 법좌에 오르시고, 그대는 이 글을 읽고 있다.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라.

법왕의 법은 이와 같다.

봄을 비단에 수놓아 보여주기 이전에 이미 봄은 그대 앞에 와 있다. 깨달음이 무엇이라고,

불법이 이런 것이라고, 진리가 어떻고 도가 어떻다 말하기 이전에 그것은 이미 폭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가 알고 모름에 상관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어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