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깨달음이란...

장백산-1 2015. 10. 12. 17:44

 

 

깨달음이란... / 윤기붕

 

깨달음은 허구이다. 왜 깨달음이 허구인가?
굳이 부처님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삼라만상은 이미 다 깨달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깨달음이라는 말이 생겼고 그 말에 힘이 생겼는가?

부처님 이전에도 그랬었고, 부처님 이후에도 그러한 자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현재의 자신보다는 더 나은 어떤 상태를 부러워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 못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자신을 버려두고 잘나고 구족하고 완전해 보이는

그럴듯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꼭 도나 깨달음이 아니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환경으로 살기 보다는,
자신에게 없는 보다 나아보이고 편해보이는 것을 향해서 매 순간 여행을 떠나고 있다.
매 순간 그렇게 진짜 자신은 외롭게 버려두고 말이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뭔가 노력의 댓가는 따라왔다.
지식도 오고, 이해도 오고, 잠시나마 평안도 오고...그래서 그것에 만족하고 자신이 마치 무언가를 이룬

자처럼 여겨지고, 또 주위에서 그렇게 잠시나마 인정해주니까, 자신의 노력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고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듯이,시간이 지나니 다시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대단함이라는 효과는 사라져버리게 되니 노력의 댓가를 얻었을 때의 그 느낌과 만족을 다시

얻고 싶은 마음에 다시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와 평화라는 미끼가 있으니까...)
그래서 또 다시 노력을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것이 바로 깨달음에 대한 구함의 과정이다.

 

 

그런데, 현재의 자신보다는 더 나은 자신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왜 생겼을까?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사심없이 되돌아보면- 어릴 때의 모습부터..-
왜 내가 있는 그대로를 버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어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태어나서 젖을 무는 순간부터이

지만, 意識的으로 내가 아닌 내가 바라는 어떤 삶을 選擇하기 시작한 삶이 시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꼭 한번은 되돌아보라. 왜 내가 있는 그대로 살지 못하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했는지를...
道나 깨달음이라는 것을 求하기 始作한 理由를...주위의 바램과 기대, 그리고 그들의 바램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즉, 사랑받고 認定받기 위한 몸짓과 行動들이 그 밑바닥에 있었음을 돌이켜보라...
아니면, 자신의 처지나 환경과 다른 비교된 보기좋은 어떤 상태를 바라기 위해,자신의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얻기 위해서 떠나온 여행을..그러한 과정에서 더더욱 정교해진 것이 바로 깨달음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던가?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라...)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해도, 사람들 마음의 屬性이 처음은
노력의 댓가로 얻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대단하게 생각하지만,시간이 지나면 곧 늘 그런 것이지 뭐....
하는 시들함 속에 들어가게 되니, 스스로도 노력이라는 것에 대해 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새로운 것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얻으면 자신의 힘듦이 끝나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고통을 끝내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향해 다시금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재물을 향해...어떤 이는 권력을 향해...어떤 이는 명예를 위해...어떤 이는 사랑을 위해...등등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목적을 위해...

 

 

그 보다 좀 나은 이는(좀 낫다고 비교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의 상태는 똑 같기 때문에 오십보 백보일

뿐이다.) 얻어 봐야 사라질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사랑보다는 한번 얻으면 사라지지도 않고 다시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힘을 가진 어떤 상태를 바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그대가 깨달음을 구하는 처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태어나면서 깨달음을 구했던가?
아니면, 이것 저것 구하다보니, 이것 저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해주지 못하니까,결국에 종착역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고,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는 목이 마르지 않는 어떤 것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믿음으로 인하여 떠밀려온 것이 깨달음이 아니었

던가...하는 의문을 가져보라.

 

 

깨달음이란....비록 부족하고 못나고 모자라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하다보니, 수많는 구함과 좌절과 부딪힘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구하면 구할 수록 더더욱 깊은 나락으로 좌절을 하게 되니까,
그래도, 뭔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는 한 톨의 자각이 일어나면서,
그것에 대한 의문과 그것을 향한 몸부림을 일으키게 되고 그 몸부림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자들의(부처, 예수, 수많은 선지식들....) 삶이 있었다는 것을  지식으로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의 책과 생애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대입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부처도 사람이요, 그것에 기대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그것에 기대면서, 늘 보아도 보잘것 없어 보이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 여태껏 자신이 뭔가 구하려고 노력

했던 몸부림이라는 것이 참으로 가치가 없어 보이고 ‘진정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가야할 길이라면 저러한

길이다.’하고 도를 구하고 깨달음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것이 우리가 도를 구하는 모습이다.

 

사실 부처도 그렇게 구했다. 그렇게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하는 삶이 바로 6년의 고행인

것이다.부처님은, 그래고 그 고행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구함이 잘못됨을 알고, 고행을 멈추고

중도로 가셔서 그냥 자신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냥 자신이 되고보니, 삼라만상이 깨닫지 않는 존재가

없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本來 있는 그대로의 自身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現在에 살아 숨쉬고 있는 살아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 버려두고, 항상 존재하지도 않는 生覺속의

觀念的 自身을 향해 떠나는그 노력과 여행을 중지하는 것이다. 지금보다 잘나고 바람직하고 멋져 보이긴

하지만, 생각으로 바라고 노력해 나아가야 할 더 나은 자신은 實際로 존재하지 않는 虛想일 뿐이요, 비록

못나고 부족하고 모자라, 늘 덜떨어져 보이는 자신은, 매 순간 실재하는 자신인 것이다. 그 실재하는 현재

에 사는 것, 이것이 깨달음이다.

 

 

있지도 않는 자신을 향해서 그것을 이룰 것 같이 속아온 거짓된 삶이 아니라, 비록 못나고 부족하고 덜

떨어진 모습이지만, 매 순간 현재의 자신과 함께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미 우리는 모두 깨달아 있다. 진정한 우리의 모습, 즉, 眞我는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하고 바람직한 멋진 모습은 우리의 生覺으로 어떤 모양을 짓고 規定해 놓았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라는 것이 想像으로나마 그려볼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실재의 모습은, 단 한瞬間도 같은 모습이 없고 늘 變化하고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달마스님께서는, 양혜왕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대는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에, "나도 모르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양혜왕을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 모르는 것이 바로 나다. 그냥 나일 뿐이다.

하지만, 찾으려고 노력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그 여행을 그만두게 되면,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듯이 너무나 생생하게 진아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깨달음은 마음이 알기 쉽게 이해되는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알 수 없는 현재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냥 나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우리가 부족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주위에게 인정받고

싶고,교육에 의해서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고, 인기를 끌어서 사랑받고 싶고, 지금보다 더 좋은 어떤 것이

있지 않느냐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하는 바람에 부족하고

못나게 된 것이다. 아담이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따먹고는 낙원에서 쫓겨난 것처럼....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글쓴이 : 유당|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