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이것! 눈앞에 이 글이 보이고 자동적으로 글을 읽고 그 의미가 이해가 됩니까? 너무나 當然한 事實을 왜 묻냐구요? 사람들의 가장 사소하면서도 치명적인 失手가 바로 이 自然스럽고 當然한 性稟, 이 깨달음의 性稟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 性稟에서 일어난 生覺, 觀念, 槪念, 느낌 감정, 욕망 욕구 의지 의도, 의식의 찌꺼기에 불과한 虛想들을 쫓아가면서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어리석어서 눈앞의 現象世界 이것이 자기 바깥의 客觀世界라 믿고 있을 뿐입니다. 보이는 客觀世界와 그것을 보고 있는 나라는 主觀 모두 이 當然한 性稟, 지금 여기 이 글을 읽고 자연스레 이해하는 그 性稟의 作用을 通해 드러난 것입니다. 알아차림의 性稟, 텅~비어있지만 惺惺하게 깨어있는 性稟, 모든 감각, 감정, 지각 작용을 판단 없이 수용하고 있는 텅~빈 虛空 같은 純粹意識 自體가 지금 여기 이렇게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이것을 客觀的으로 確認하려는 허망한 그 어리석음만 멈추어 보십시오.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탁자를 치고, 어깻죽지를 때리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무엇을 傳達하려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至極히 當然하고 당연한 이 텅~빈 意識 自體, 이 살아있음, 이 텅~빈 意識의 作用을 스스로 깨닫도록 자극을 주는 方便일 뿐입니다. 感知되는 이 눈앞의 텅~빈 空間, 認識의 場, 이 깨어있음, 살아있음의 텅~빈 空間意識은 아무런 變化도 없지 않았습니까? 生覺으로 이해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生覺이란 이 텅~빈 空間 안에서 안개 처럼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虛想일 뿐입니다. 感覺과 理解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지 못하는 이것을 生覺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려니 그렇게 힘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라는 存在 本然의 狀態, 本性(本來性稟)이란 이미 이렇게 完全하게 지금 여기 눈앞에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本性은 새롭게 얻거나 成就하거나 開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임, 인정, 판단중지, 無爲, 놓아버림.... 하고 체험하고 획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虛妄한 生覺의 어리석음에서 풀려나 이 텅~빈 性稟 이것 自體로 돌아오는 것, 그것을 일러서 깨달음, 契合, 證得, 해탈,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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