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惺惺寂寂(성성적적)한 자리

장백산-1 2015. 10. 27. 19:12

 

 

[문]가까운 도반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한 자리를 체험하고 난 후, 모든 걸 내려놓게 되었답니다.

 

[답] 그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한 자리를 도대체 ‘누가’ 체험을 한다는 말이오?

또 어떻게 체험을 할 것이며. 그렇게 뭔가를 체험했다고 하는 者의 얘기는 전혀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는 헛소리요. 늘 하는 소리지만, 체험한 바가 있으면 체험한 者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질 않소?

그렇게 환화공신(幻化空身)이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해도 그 체험의 주체인 ‘나’는

요지부동이요 도무지. 그 모든 사고의 주체, 행위의 주체로서의 ‘나’가 계속 곤댓짓 하고 있는 限

깨닫기는 요원하오.

 

그가 체험한 바가 또렷또렷하고 오묘하고 신비로우면 신비로울수록 옆으로 그만큼 샌 사람이오.

귀신굴 속에서 살림 차렸다는 얘기요. 소위 眞理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에 홀려 헐떡헐떡 그 자리를

證得하겠다고 冥想이니 參禪이니 하는 온갖 有爲의 노력을 총동원해서 훌륭한 功德을 바라는 것은

典形的인 生死法이오. 惺惺寂寂한 그 자리는 學人에 의해 證得되어지는 자리가 결코 아니오.


참된 수행자라면 무엇보다 먼저 어디를 찾아봐도 '나'라고 할만한 '나'가 도무지 없다는 事實을

철저히 사무쳐야 하오. 수행을 포함한 모든 일이 다만 因緣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림자나 메아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實體가 없는 虛妄한 幻化空身

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봐야 하오. 이 말 幻化空身은 修行의 主體가 도무지 있을 수 없다는 얘기요.

수행의 主體가 없으니 當然히 수행의 果報를 기다릴 것도 없는 거요.


수행 끝에 성성하고 적적한 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예전에는 시끄러웠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에야 고요한 마음을 얻었다는 것이니,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곧 끝날 것이므로 그것은

참된 고요함이 아닌 거요. 그러니 제대로 된 수행자라면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황홀한

境地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다만 제 마음에 비친 業의 그림자일 뿐임을 分明히 알아서 그것을

좇는 일은 없어야 하오. 시끄러움도 고요함도 그 모두가 오직 마음뿐임을 철저히 사무친다면

시끄러움이 곧 고요함이요, 고요함이 곧 시끄러움이라는 事實을 훤히 알 테니 그 사람은 다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좇고 하는 일은 영원히 쉬는 거요.

 

현정선원     해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