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소매와 손목

장백산-1 2016. 3. 18. 13:02

 

나눔뉴스님(www.nanumnews.com) 향기메일입니다.

소매와 손목

소맷부리를 걷어붙인 손이 소매 없는 생닭을 탁 탁 쳐준다

소매 올린 시간만이 유일한 힘
손을 씻고 나면 손목은 얌전히 옷 속에 숨는다
마지막 시간을 떨이한 단추 없는 밋밋한 무늬 속엔 뻐근한 팔목이 있다

화사한 소매를 보면 감추어진 손이 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손목을 쓰지 않는 그 손은 언제 휘두를지 모를 권력
소매 밖으로 점점 자라는 거대한 손을 가리기위해 옷은 더욱 화려해지고
손목단추마저 채운다

칼자루는 칼의 손목
작업과 상처 사이에는 아슬아슬한 각도가 있다
시장입구부터 불빛 소매가 내려지기 시작하면
소매를 내린 칼이 둥근 도마를 물고 잠이 든다
아침이 다시 시원스럽게 소매를 걷어붙이면
손목을 드러낸 손이 소맷부리를 올린 칼의 손목을 잡는다

힘은 손목에서 나오지만 소매를 걷어 올린 손은 권력이 없다

- 시, '소매와 손목'


살면서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것을 실감합니다.
손목 한번 쓰지 않고 그 위력을 발휘하는 권력.
권력에 맛을 들일수록 노동과는 멀어집니다.
소매를 걷어 부친 손목과 소매로 가린 손목의 역할은 확실히 구분됩니다.
노동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권력을 동경하니, 삶은 늘 이율배반입니다.


- 최연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