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고비 두 가지 선병(禪病)
청원(淸遠) 스님이 말했다. “禪(禪=法=道=心(마음)=佛(부처)=眞理=깨달음)을 공부하는 데에는 다만
두 가지 病이 있다. 첫번째 禪病은 말(馬)을 타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말(馬)을 찾는 어리석음, 無智,
無明이고, 두 번째 禪病은 말(馬)을 다 탓으면 말에서 내려와야 되는데 말을 탄 후에도 말에서 내리지
않는 執着心이다. 지금 말을 타고 있으면서도 또 다시 딴 말(馬)을 찾는 어리석음이 아주 큰 禪病이다.
산승(山僧)이 너희들에게 분명하게 말하노니,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찾지 말라! 영리한 사람은 당장
금방 아무것도 찾지 말라는 내 말을 알아듣고서는 무엇을 찾는 病을 없애서 어리석고 虛妄하고 미친
是非 分別하는 생각 망상 번뇌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식 이해 견해
지견을 지금 당장 여기 이 자리 이 순간부터 마침내 푹 쉬게 할(휴식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말(馬)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서도 타고 있는 말(馬)에서 내려오려고 하지 않으니, 이 病이
가장 치유하기가 힘들고 어려운 아주 큰 禪病이다.
산승이 너희들에게 다시 말하노니,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찾거나 구하지 말고 타지도 말라! 왜냐하면
너희들이 바로 그 말(馬)이고, 이 세상 온갖 것이 전부 다 바로 그 말(馬)인데, 도대체 말(馬) 自體인
너희들이 어떻게 말(馬)를 타겠다고 하는 것이냐? 말(馬)이 말(馬) 자신을 탄 것을 보았느냐? 그것이
가능키나 한 일이냐? 事實이 眞實이 이렇기 때문에 만약 너희들이 말(馬)을 찾거나 탄다면 절대로 두
가지 禪病을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너희들이 말(馬)을 찾지도 않고 타지도 않는다면 시방세계(十方世界) 卽, 이 世上, 이 宇宙
全切가 아무 막힘도 없이 확~트이고 뻥~뚫려서 너희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느 것에도 아무런 걸림
이나 집착이나 장애가 없기 때문에 自由自在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禪病이 일시에 동시에 사라지면 마음속에 아무 일이 없으니 그것을 일러 한가한 도인(道人)
이라 이름하나니 더 이상 다시 무슨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조선의 만공(滿空) 스님이 후학들에게 남긴 訓戒 중에, “깨닫기 以前이나 깨달은 以後나 한 번씩은 죽
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禪을 공부하는 데 있어 깨닫기 前에도 한 번 죽을 고비,
하나의 病痛이 있고, 깨닫고 난 後에도 다시 한 번 죽을 고비, 또 하나의 病痛이 있습니다. 眞實로 이
禪공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두 번의 죽을 고비, 두 가지 病痛을 겪지 않는 이가 없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깨닫기 이전의 죽을 고비, 病痛은 깨달음을 깨달음 眞理 自體인 나 自身 바깥에서 달리 찾고 求하려는
허망하고 어리석은 시비 분별하는 생각 의식 마음, 무지, 무명 卽, 알음알이(識) 分別識 분별의식 分別
心 지식 이해 지견 견해입니다.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나 자신에게 갖춰져 있는 깨달음 眞理인
데 깨달음 眞理 自體인 나 自身이 이 세상에 없는 것으로 錯覺해서 眞理 깨달음 自體인 나 自身 바깥
에서만 헤매고 방황하면서 진리 깨달음 자체인 나 자신을 찾고 구하는 어리석고 허망하고 헛된 시비
분별하는 생각 망상 망념 잡념 상념 번뇌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知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이해
지견 견해가 깨닫기 전의 죽을 고비 즉, 큰 重病입니다.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다는 말,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물을 찾는다는 말, 서울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에 앉아서 서울 가는 길을 묻는다는 말, 이 모든 말들이 이러한 알음알이(知識) 분별의식 분별심
분별식 이해 지견 견해가 나 자신이 바로 진리 깨달음 그 자체인 사실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큰
病痛임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나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 진리 깨달음이 나 자신 바깥에 별도로
특별난 것으로 따로 있다고 여기는 生覺 바로 그 幻想 그 錯覺이 禪病입니다.
分別하지 말라, 妄想하지 말라, 찾지 말라, 구하지 말라, 공부하지 말라, 눈앞을 떠나지 말라는 등등 안
타까운 마음에 이런 저런 方便으로 가르침의 말을 하지만, 이런 방편의 말들이 禪病에 걸린 사람들에
게는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이상한 말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眞理 깨달음 自體인 나 自身 바깥에서
미친 듯이 眞理, 깨달음, 禪, 法, 道, 佛, 心, 本性, 眞性, 自性, 佛性, 神性, 法性, 空性, 진심, 본심, 본래
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나 자신, 진짜 나, 근원의 나, 본래의 나, 스스로 보는 자, 주시자, 관찰자, 관세
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의 모든 부처와 모든 보살을 찾고 구하는 허망하고 어리석은
是非 分別하는 생각 망상 망념 잡념 상념 번뇌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知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이해 지견 견해가 완전하게 쉬어졌을 때, 그때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갖춰져 있었지만 是非 分別
妄想에 가려져있었기 때문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眞理 깨달음 自體인 나 自身의 本來
性稟 本性 본래의 나가 스스로 저절로 自然스럽게 드러나는 것 그것을 일러 이른바 소위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是非 妄想 分別하기를 즐기고 좋아하는 알음알이(知識) 분별심 분별식 분별의식
이해 지견 견해를 푹~쉬게 해서 휴식을 했을 뿐이지 特別한 能力이나 고차원의 의식의 경지를 얻게되는
것이 깨달음 眞理 본래의 나 진짜 나가 아닙니다.
너무나 평범한 것, 본래의 자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선(禪), 도(道), 法, 진리, 부처(佛), 마음(心),
진리, 깨달음, 본성, 眞性, 自性, 佛性, 神性, 法성, 空性, 진심, 본심, 본래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스스로 보는 자, 주시자, 하느님, 관찰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事實을 알아차리가 그동안 몸과 마음에 習慣으로 굳어진 시비 분별
비교 판단하는 習性 때문에 쉬운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病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뭔가 그럴 듯하고 特別한 眞理, 깨달음, 나 自身, 진짜 나, 본래의 나라는 특별하고 신통한 어떤 것이
따로 있을 거라는 虛妄한 生覺, 幻想을 그려내는 自我意識, 에고의식, 분별의식의 幻想에 속아서 살
고 있는 限은 계속해서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한 진리 깨달음 나 자신이라는 말(馬)를 타고 있으면
서도 진리 깨달음 나 자신이라는 말(馬)을 타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기의 시비 분별 비
교 판단 해석 헤아리는 허망한 생각 망상 망념 잡념 상념 번뇌 의식 마음 卽, 알음알이(知識) 분별의
식 분별식 분별심 지견 견해 이해에 자신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헤아리는 허망한 생각 망상 망
념 잡념 상념 번뇌 의식 마음 즉, 알음알이(지식) 분별의식 분별심 분별식 지견 견해 이해에 홀딱속아
자기 자신만 괴로워 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음, 무명(無明)이요, 무언가에 홀라당 홀딱 홀려
방황하는 미혹(迷惑)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중생(衆生)이 삶을 사는 過程인 迷惑 - 業(생각 마
음 뜻, 말, 행동이라는 세 가지 行爲 즉, 三業, 業報, 原因) - 苦(고통의 果報, 結果)라는 三道입니다.
그러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마음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어떤 因
緣에 의해서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있었던 自己, 언제나 눈앞을 떠나지 않고 있는 한 물건을 깨
닫는 事件이 벌어집니다. 문득 스스로 本來의 나, 한 물건, 진리, 깨달음, 그것을 確認하는 순간, 이 기
가 막힌 역설, 거대한 코미디에 헛웃음이 절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본래의 나, 한 물건, 진리, 깨달음이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 단 한 순간도 이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거늘 어째서
그렇게 나 자신 자체인 진리 깨달음 바깥에서만 나 자신 자체인 진리 깨달음을 찾고 구하면서 헤매었
던가! 하면서 커다란 安心과 희열을 만끽하지만 아직도 한 번의 죽을 고비가 더 남았습니다.
어렵게 돌고돌아 제 집으로 돌아왔고, 나 자신 자체인 진리 깨달음 바깥에서 찾아 구하는 시비 분별 망상
마음을 쉬고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갖춰져 있는 나 자신, 본래의 나, 진리, 깨달음을 發見 確認 깨
달았지만, 그 意識狀態 거기에 執着해서 머무르려 하거나 그것을 내것으로 所有하려고 하는 순간 다시 길
을 잃어버리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진리 깨달음 자체인 나 자신, 본래의 나를 확인 발견 깨닫기 以前에
진리 깨달음 자체인 나 자신, 본래의 나를 外面하고 나 자신, 본래의 나 바깥의 虛妄한 꿈 신기루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對相 境界 즉, 온갖 精神的 物理的 現象으로 현시되어
드러나 있는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에만 執着하던 옛날부터 버릇이 된 習性이 진리, 깨달음,
나 자신, 本來의 나를 발견 확인 깨달았다고 해서 한 순간에 갑자기 탁하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내가 발견 확인 깨달은 ‘무엇’, 진리, 깨달음, 나 자신, 본래의 나에 執着하기 시작합니다. 이같은 執着心이
야말로 정말 治療 방법도 없고 藥도 없는 重病 중에서도 아주 큰 중병입니다. 우리 人間의 虛妄한 幻想인
分別心 是非심 망상 번뇌 망념 분별의식 알음알이(知識) 이해 지견 견해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입니다.
깨달음의 과정을 그림과 시로 표현한 十牛圖를 보면 소를 찾아 헤매던 목동이 소를 발견하고, 소를 붙잡
아, 소를 길들이고,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는 문득 소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깨달음의 초기에는 자칫
마음이니, 道니 하는 ‘무엇’, 어떤 대상 경계가 微細하게나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法에 대한
집착, 법집(法執)이니, 깨달았다는 견해 각견(覺見)이니, 혹은 法身 가장자리의 일 법신변사(法身邊事)라
칭합니다. 한 마디로 진리, 깨달음, 나 자신, 진짜 나, 본래의 나라는 이름 말은 是非 分別 妄想일 뿐입니다.
진리, 깨달음, 나 자신, 본래의 나를 발견 확인 깨닫기 前에는 진리, 깨달음, 나 자신, 본래의 나를 발견
확인 깨닫지 못했다는 是非 分別 妄想을 한 것이고, 그것을 발견 확인 깨닫고 난 뒤에는 그것을 깨달았
다는 또 다른 시비 분별 망상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본래 말(馬)은 없었습니다. 본래 소는 없었습니다.
本來부터 마음, 道, 眞理, 깨달음, 나 자신, 본래의 나, 진짜 나, 근원의 나, 空性, 본성, 진성, 자성, 신성,
불성, 법성, 진심, 본심, 본래마음, 본래면목, 주인공, 스스로 보는 자, 주시자, 관찰자, 부처, 관세음보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一切가 실체가 없는 허망한 시비 분별 망상이었습니다. 나아가 말을 타고 있는
사람, 소를 타고 있는 사람, 진리 깨달음 진짜 나를 발견 확인 깨달은 사람 또한 없었습니다. 微細한 알
음알이(知識), 槪念, 觀念, 분별의식, 분별심, 분별식, 지견, 이해, 견해까지 그 정체가 환히 드러나 그것
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모양도 없고[無相], 아무 생각도 없고[無念], 어디에도 집착하여 머물 데가 없습니다[無住].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고[無所得],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無所有], 아무 맛도 없습니다[沒滋味]. 나도 텅
~비었고 이 세상 모든 法(것, 존재, 현상)도 비었습니다[我空法空]. 둘이 아니고[不二] 하나도 아닙니다
[非一]. 이 세상 모든 것, 우주삼라만상만물, 온갖 정신적 물리적 현상이 단 하나의 마음[一心]일 뿐이므
로 따로 마음이 없습니다[無心]. 억지로 말을 해보자면 날마다 쓰는 마음[日用心], 즉 평소의 마음(平常
心) 그대로일 뿐입니다.
언제나 본래의 그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 몽지- /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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