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부주무위(不住無爲)

장백산-1 2016. 10. 23. 17:59

유마경 강설 456 / 보살행품 /부주무위(不住無爲) 

 

何謂菩薩(하위보살)의 不住無爲(부주무위)오 謂修學空(위수학공)하되 不以空(불이공)으로 爲證(위증)

하며修學無相無作(수학무상무작)하되 不以無相無作(불이무상무작)으로 爲證(위증)하며 修學無起(수학

무기)하되 不以無起(불이무기)로 爲證하며 觀於無常(관어무상)하되 而不厭善本(이불염선본)하며 

觀世間苦(관세간고)하되 而不惡生死(이불오생사)하며

 

무엇이 보살이 無爲에 머물지 아니한 것인가? 이를테면 空을 공부하지만 空으로 깨달음을 삼지 아니하며,

無相과 無作을 공부하지만 무상과 무작으로 깨달음을 삼지 아니하며, 無起를 공부하지만 무기로 깨달음

을 삼지 아니하며, 無常을 관찰하지만 善의 根本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세상의 고통을 관찰하지만 생사를 

싫어하지 아니한다.

 

강설 ; 무위에 머물지 아니 한다는 말은 불교의 궁극은 無爲法이지만 보살이 오로지 무위법에만 머물면 

有爲法, 즉 現實世界에만 집착하고 사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해탈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 끊어지고 만다. 

그래서 유위법을 없애지도 아니하고 무위법에만 머물지도 아니하는 것이 보살의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

中道이다. 유위의 길과 무위의 길, 현실세상의 길과 열반의 길이 조화를 이루어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수용하는 삶이 보살의 바람직한 삶이다.


無爲法, 즉, 본질세계는 空의 理致, 空性의 世界이다. 그러므로 空을 공부하지만 반드시 空으로 깨달음을 

삼지 아니한다. 즉 空에 머물지 아니한다(無住空). 無相과 無作과 無起는 무위법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공부하지만 반드시 그것들로 깨달음을 삼지 아니한다. 小乘 아라한은 보살과 달리 空과 無相과 無作과 

無起에 폭 빠져서 거기에서 나오려고 하지 아니한다. 또 무상(無常)한 도리를 잘 알지만 無常으로 돌아갈 

善法을 싫어하지 아니하는 것이 보살이다. 소승 아라한은 보살과 달리 無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보살은

세상만사의 고통을 잘 알지만 생사의 고통까지도 싫어하지 아니한다. 소승 아라한은 보살과 달리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   글쓴이 : 無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