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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대통령 퇴진’만이 아니다, 이참에 한국 사회를 바꾸자

장백산-1 2016. 11. 9. 11:04

[표지이야기]‘대통령 퇴진’만이 아니다, 이참에 한국 사회를 바꾸자

지금 여론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열망하는 목소리들이 담겨 있다. “퇴진” 구호에는 한국 사회에 쌓여있던 구조적인 모순의 개혁까지 담겨 있는 셈이다.

“지금은 만인의 주판이 돌아가는 시기다.”(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각자가 자기 보따리를 차고 있는 상황이다.”(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

대통령 지지율 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여론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모든 제도권력이 자신의 보따리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다. 서복경 연구원의 분석이다. “지금은 모두가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한 끗만 잘못했다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새누리당은 새누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국정원은 국정원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머리를 굴릴 것이다. 지금 오만 가지가 다 움직이고 있다. 모두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 파워게임 단계다.” 파워게임의 결과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날은 예측불허다.

하지만 이들 움직임의 방향과 보폭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있다. 바로 여론이다. 서 연구원의 말이다. “열쇠는 여론이 쥐고 있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만 도려내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며 빠져나간다고 가정하자. 그때 여론이 ‘너희들은 뭐냐’라고 나오면 새누리당은 거기서 또 일부를 잘라내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여론이 어느 정도 묵인하고, 새누리당에 대한 TK지역 여론도 다소 누그러져 돌아오게 되면 새누리당의 책임은 그 정도에서 끝나게 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 상황에서 예측불허인 한국 사회의 내일을 결정하는 열쇠는 여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여론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대통령 지지율 5%. 일상적인 수습책으로는 결코 반등할 수 없는 수치다. 여론의 상당수는 퇴진을 가리키고 있다. 11월 3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응답자는 55.3%에 달한다. 현재 정의당과 야권의 일부 대선주자는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과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대통령의 퇴진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 또한 여론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에 대한 TK 지지율이 빠졌었다. 보통 선거 때는 결집하게 마련인데, 당시의 지지율 하락은 TK가 새누리당에 경고를 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번 경고를 준 상태에서 지금 다시 큰 실망을 준 셈이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대책이 나와야 한다. 지금 제도권에서는 퇴진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지는 않고 있는데, 청와대가 야당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식으로 가면 여론이 더 악화돼 야당도 지금의 입장을 계속 고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월 3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학생의 날 서울대 시국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자유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일반 수습책으로 반등할 수 없는 지지율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지금의 여론으로는 현실적으로 대통령 퇴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중권력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비롯한 실정법이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보장해주고 있다. 대통령이 검·경을 비롯해 군대에 대한 지휘권도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2선으로 물러나서 2~3개월도 아니고 남은 임기 14개월을 간다는 건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시민권력이 지금 실정법이 보장한 대통령 권력에 대한 승인을 철회한 형국이다. 이 상황이 14개월간 유지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된다. 퇴진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대해 대통령과 내부 서클은 반격을 하겠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게 윤 교수의 전망이다.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비롯한 내부 서클은 기득권을 순순히 내려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반격을 하려고 하겠지만 그들의 계산대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슈와 관련해 거의 절대적인 국민통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세대, 지역을 불문하고 한국현대사에서 이렇게 국민들의 의견이 한 사항에 대해 일치한 때가 있었나를 복기한다면 현 정권의 계산대로는 안 될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호영씨(31)의 말이다. “오늘 구미에서 퇴근하자마자 올라왔다. 집회 끝나면 바로 내려가야 한다.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 한 나라의 대표가 알지도 못하는 민간인에게 눌려서 국민들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세월호 사건부터 수많이 의혹이 있었는데, 그런 의혹들이 다 풀렸으면 좋겠다.” 박정훈씨(38)는 “집회 참가는 사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뉴스 등을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퇴근하자마자 바로 왔다. 진보·보수를 떠나 모든 국민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많이 미안했다. 사실 전 국민이 다 속은 셈이지 않나. 어떤 정치논리나 진영논리를 떠나서 화가 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박건호씨(20)는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건데, 최순실이라는 일반인이 권력을 휘둘렀다. 민주국가의 정체성이 훼손됐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연히 퇴진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권력을 준 것인데, 지금의 상황은 일반인에게 위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자격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지연씨(27·여)는 “직장이 근처이기도 하고 뉴스가 보기 싫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 나 한 명 나온다고 해서 티도 안 나겠지만, 한 번 나와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나왔다. 집회는 세월호 참사 때 한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는 못 나오다가 오늘 퇴근하면서 들렀다.”

현 사태의 추이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이런 민감한 여론에 기름을 붓듯 퇴진 여론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장본인인 박근혜 대통령이다.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내정자로 지명하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박정훈씨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낸 것을 보고 계속 우리를 속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한 참가자는 “며칠째 퇴근하면서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오늘, 총리를 지명했다는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 조사를 받아야 할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먼저 당연히 야권의 목소리를 듣고 국회와의 논의를 거쳐 중립내각을 구성해도 될까말까인데, 단독적으로 뭘 한다는 것은 아직도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내정은 카드를 국회가 아닌 광화문에 던진 셈이라고 진단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지명했는데, 야당이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카드 아닌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거부하면 참여정부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거야 말로 절차고 합의고 무시하고 흐름을 호도하는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카드를 던진 셈인데, 야당이 못 받으면 제도정치권에서 소화를 못 시키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광화문 촛불집회에 받으라는 셈이다.”


여론을 더 악화시키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내려와라’는 말 속에는 대통령의 교체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열망하는 목소리들이 담겨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현재 여론은 최순실 사건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그동안 갑을 문제든 불평등 문제든 금수저 흑수저 문제든 기득권 질서의 문제들이 녹아 있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집회에 참석한 계기도 단순히 ‘최순실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촛불집회 참가자 김민지씨(25)의 말이다. “오늘 처음 집회에 참석했다. 난 비정규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3년차다. 이번 사건은 사회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라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 150만원을 못 벌고 근근이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호의호식한다는 게 제일 마음이 불편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퇴진’의 구호는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기득권 구조를 겨냥하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 최종원씨(41)의 말이다. “직장이 근처라 요즘 끝날 때마다 들른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여당을 비롯한 권력층들은 대선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르는 것처럼 계속 덮으려고 하다가 지금 밝혀진 것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반기문 후보든 누구든 다른 후보를 세워 다시 살아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들이 그런 내용을 몰랐을 수도 없고, 알면서 묵인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을 계속 보다 보니 참을 수가 없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검찰이 기득권의 한 축으로 작동한 것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진웅씨(43)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검찰권력에 대한 감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불신이 깊다. 최순실 사건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점점 부정의가 득세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조직도 위에서부터 물갈이가 되어서 개선이 돼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검찰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시민들의 감시와 국회의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검찰이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이야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나라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런 걸 알아내 잡으라고 검찰에게 수사권, 수사개시권, 수사종결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다 준 것이다. 몰랐으면 인지수사해서 찾아서 밝혀내라는 것이다. 만약 그 권한을 다 줬는데도 못했다면 능력이 없는 것이고, 알고도 수사를 안 했다면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검찰에 대한 사회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세우고, 이후에 대한 개혁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찰은 폭탄주 마시면서 배운 것 말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된다. 김수남 총장이 수사팀에게 먼저 검사로서 기개를 보이라고 힘을 실어주면 된다. 신임 최재경 민정수석이 청와대 카운터파트인 셈인데,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검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청와대도 수사에 협조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번에 수사 잘한다고 검찰이 면책받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도 이번 건에 대해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미리 사인을 줄 필요도 없다. 이번 수사는 이번 수사대로 잘하고 지금까지 4년 동안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감시견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국회가 추후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돌아서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은 여론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에는 ‘퇴진’ 너머 한국 사회에 쌓여 있던 구조적인 모순의 개혁까지 담겨 있는 셈이다. 이 열망대로 한국 사회는 바뀔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정치가 달라지고 경제·외교·안보·통일과 관련한 실정들이 개혁이 되고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자는 것이다. 정치권이 자기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어떤 게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타개책인가를 제시해야 하는 그런 임무가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그러한 의지와 실력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있다. 이병훈 교수의 말이다. “사회 변화의 아우성이나 요구들이 이번 기회에 더 절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가는 유동적이고, 그것이 어떻게 풀릴지에 대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사항이 얽혀 있어 아직까지 내다보기가 쉽지 않고 우려스렵다.” 이택광 교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엘리트들의 자리바꿈’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전했다. “이후에 한국 사회가 변하려면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해야 하는데, 기득권이 이를 해결할 생각이 있을까. 이번에도 엘리트들의 자리바꿈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밑에서 변화에 대한 열망이 올라오더라도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새로운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고민이다. 지금 김병준 교수가 총리로 가겠다는 것을 보면서 이는 일단 감투만 쓰면 된다는 기득권의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미 다 기득권화됐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란 어렵다.”

정치권에 기대를 하기는 어려워도 결국 변수는 시민과 여론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시민들이 이게 단순한 박근혜-최순실 개인비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 기득권 전체와 관련된 것인가를 얼마나 인식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은 시민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권력이 여론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지금 결국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은 여론이라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통령 퇴진’과 함께 모두 한국 사회의 ‘변화’를 요구했다. 김민지씨는 “하나하나 모이면 정말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호영씨는 “이 나라의 상태를 바꾸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한 명이라도 모이면 힘이 더 생길 것 같아서 나왔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50대의 한 남성은 “법부터 경제·종교·정치 다 썩었기 때문에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대통령, 측근, 재벌, 검찰 등 기득권 세력이 모두 연결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참담해진 국민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퇴진 구호 속에는 단순히 퇴진만이 아닌, 박근혜 정권 이후의 한국 사회의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바람이 응축돼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