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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직수 申稙秀

장백산-1 2016. 11. 26. 11:24

신직수 申稙秀


생애 1927년 3월 21일 ~ 2001년 9월 9일 (75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평산(平山)

별명 호(號)는 인강(仁崗)

종교 천주교(세례명: 요셉)

배우자 김순아

자녀 슬하 3남 2녀

친척 신현성(손자)

신은지(손녀)

홍석현(사위)

조혜진(자부)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52년 ~ 1961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소령

지휘 법무장교

주요 참전 한국 전쟁

기타 이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 부장

대통령 비서실 법률담당 특별보좌관



요약 1927∼2001. 대한민국의 관료·법조인


충청남도 서천 출생으로 1947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53년 졸업하였다. 1951년 3월부터 1960년 6월까지 군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전역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원용덕 중장이 김성주 살해사건으로 재판받을 당시 변호인을 맡았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7월 31일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법률고문에 임명되었다. 군정하에서 서울지검 검사에 임명되었으며, 헌법심의특별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3년 7월 중앙정보부 차장에 임명되었고, 같은해 12월 6일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


1966년 삼성의 사카린밀수사건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1971년 6월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었고,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대중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경질되자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중앙정보부장 취임 이후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정보부 제6국을 강화하고 공안사건을 조작하였다. 문인간첩단과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은 대표적인 사건이다.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조총련계 모국방문사업을 추진했다.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협박해 광고를 해약시키는 등의 언론탄압을 기획하였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발생하고, 중앙정보부 요원인 김상근이 미국에 망명하자 12월 4일 경질되었다.


중앙정보부장 퇴직후 1977년 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79년 1월에는 대통령 법률담당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12월 17일 윤보선 대통령에 의해 면직되었다. 1981년부터 일양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2001년 9월 9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앙정보부장 취임 이후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정보부 제6국을 강화하고 공안사건을 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