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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 일렬 배웅..김기춘 24년전 검찰 출석하던 날

장백산-1 2016. 11. 29. 20:03
한겨레

검사들 일렬 배웅..김기춘 24년전 검찰 출석하던 날

입력 2016.11.29 16:36 수정 2016.11.29 17:16 댓글 52

[한겨레] 

부산지역기관장 대선 논의 ‘초원복집 사건’으로 서울지검 출석
8시간 조사 받고 나갈 때 검사 등 20여명 1층 로비에서 배웅
얼마전 우병우 전 수석 검찰서 팔짱 낀 채 웃는 모습 떠올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1월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 업무보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 회의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곧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비서실장 재임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을 묵인 또는 비호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이 언제 김 전 실장을 부를지, ‘김기춘 몸통설’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입니다.

김 전 실장은 24년 전인 1992년에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바로 ‘초원복집 사건’ 때문인데요, 그가 검찰총장에 이어 법무부 장관까지 지내고 갓 퇴임한 1992년 12월11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언론들은 이 사건을 ‘부산지역 관계기관장 대선대책회의’로 불렀습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경남 부산 한 식당에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도록 “우리가 남이가” 하며 지역감정 조장 등을 논의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은 김 전 실장이 전날 부산 사직운동장에서 열린 김 후보 유세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가 김영환 시장 등에게 지역기관장들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1992년 12월22일치 <한겨레>에 실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검찰 출석 장면.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사건 발생 열흘 만인 12월21일 김 전 실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합니다. 그의 출석을 둘러싸고 여러모로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가 모임을 주재한 ‘몸통’이라는 점과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지내고 유신 당시에는 가장 ‘잘 나가던’ 검사로 검찰조직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후배’ 검사들이 그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 것인가 두고 의문이 생긴 게 사실입니다.

오전 9시55분께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한 김 전 실장은 사진기자들에게 3~4차례 포즈를 취하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지만, 얼굴은 다소 굳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진 촬영 뒤 바로 기자실에 들러 자필로 쓴 11쪽 분량의 ‘사과의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그는 ‘부산지역 관계기관장 대선대책회의’는 “나의 퇴임을 위로하고자 순수한 우정으로 열린 아침식사 모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역감정 발언은 “애향심을 강조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살 발언”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쯤에서 초원복국에서 김 전 실장의 발언을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앞으로 내 판단으로는 YS(김영삼)가 되고 경남은 경남대로 부산은 부산대로 중앙과의 관계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는 남들이 TK 뭐 하지만 단합, 애향심의 방법을 안다. 그건 뭐 배울 점이 아닌가.(…) 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하여간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일동 웃음) 어제 어디 갔다 나오는데 어느 아줌마하고 어느 옷도 남루한 사람이 서로 수근거리더라고. 가서 들어보니까 본때를 보여야 된다는 이런 얘기를 하더라. 부산을 깔봤다 그거지. 과연 그런 어떤 감정이 우러나게 불붙여야(…) 이번에 부산사람들 단결 못한다고 하면 이것은 인간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반응이…. 역사적 중요한 시기에 기관장 하시니까 어렵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훗날 보람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아침 시간에 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사과의 말씀’에 대해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전직 검찰총장까지 지낸 분이 (모임의 성격을 ‘사석’으로 규정한 것은) 수사를 맡고 있는 후배검사들에게 부담만 주는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오후 5시40분께 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 전 실장이 청사를 나가는 순간, 1층 로비에서 검찰청 직원과 검사 20여명이 늘어서 그를 배웅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인데요, 당시 ‘살아있는 권력’으로서의 김 전 실장의 위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됩니다. 1993년 4월15일치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검찰은 신문을 하면서도 김 전 실장에 깍듯이 예우를 갖췄습니다. 그가 퇴정할 때는 검찰직원 등 10여명이 예우를 갖춰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고 김 전 실장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총총히 법원청사를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우병우(왼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1월6일 밤 9시25분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1층 특수2부장실 옆에 딸린 부속실에서 팔짱을 끼고 웃는 표정으로 비스듬히 서 있다. 오른편엔 우 전 수석 담당 수사검사와 수사관이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조선일보〉 제공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그로부터 24년이 지나 올해 11월6일 이번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같은 건물 11층 조사실에서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사진이 보도돼 큰 논란을 불렀습니다. 우 전 수석 역시 검찰조직 곳곳에 이른바 ‘우병우 라인’을 두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1992년 12월29일 검찰은 김 전 실장을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합니다. 재판에서는 ‘징역 1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김 전 실장이 법의 심판을 받았냐고요?

그는 대통령선거법 제36조 1항과 제162조 1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신청’을 냅니다. 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의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과잉제한한다는 겁니다. 이로써 사건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김 전 실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는 취소되고 맙니다.

1992년 5월24일치 <동아일보> 25면. 가운데줄 맨오른쪽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 전 실장의 ‘명예회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1995년 5월24일치 <동아일보>를 보면 전직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등 24명이 현직 법무부 검찰간부들을 초청해 격려하는 자리가 열렸는데요, 김 전 실장도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같은 해 12월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중국관에서 열린 ‘법무행정에 관한 간담회’에도 역대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참석합니다. 간담회를 주최한 안우만 당시 법무부 장관은 “선배 장관들의 조언과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는군요.

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김 전 실장을 일컬어 ‘법률 미꾸라지’라고 평하며 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24년 전 검찰 수사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까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