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촛불, 한국정치의 새판을 짜다

장백산-1 2016. 12. 11. 00:31
경향신문

촛불, 한국정치의 새판을 짜다

박송이 기자 입력 2016.12.10 17:28 수정 2016.12.10 18:15 댓글 66
[경향신문]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이었다. 
탄핵뿐만이 아니다. 6차에 걸친 촛불의 힘은 한국 정치의 기존 문법들을 바꿔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촛불민심의 승리였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날 국회는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열흘 전 박 대통령이 시도한 ‘11·29 반동’을 뒤집는 쾌거였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문을 발표할 때만 해도 탄핵의 흐름은 꺾이는 듯했다. 여야가 합의해 퇴진 시점과 방식을 정하면 이를 따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으로 당론을 정했다. 탄핵으로 기울던 비박계는 돌아섰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제안한 ‘4월 퇴진’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탄핵 찬성에서 한 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무성 전 대표와 회담에서 ‘1월 퇴진’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로 정치권에서 탄핵 논의는 급속도로 식었다. 정치권은 각자의 유불리를 따지며 다음 국면에서 어떻게 하는 게 유리할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촛불민심은 정치권의 셈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232만명이 모였다. 사상 최다였다. 각 정파들은 각자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촛불의 뜻을 따라 탄핵으로 다시 입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은 전적으로 촛불의 힘이었다. 탄핵뿐만이 아니다. 6차에 걸친 촛불의 힘은 한국 정치의 기존 문법들을 바꿔가고 있다.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김지영씨(가명·45)는 퇴근 후 촛불을 들고 국회의사당 앞을 찾았다. 비박계를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탄핵 표결에 이르기까지 비박계는 매번 말을 바꿨다. 지난주만 해도 김씨는 탄핵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깊이 실망했다. 정치권이 여론을 안 듣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화가 났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권력만 연장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분노와 우려가 뒤섞인 속에서 3일 6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였다.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내일 가결된다고 끝이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한 발짝은 나아갔다는 생각이다. 또 내가 집회에 참여하면서 바뀌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가 느낀 ‘자신감’은 곧 ‘정치효능감’이다. ‘정치효능감’은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을 뜻한다. ‘정치효능감’은 한국 사회에서 유권자들이 잃어버렸던 감각이다. ‘정치효능감’보다는 무관심과 정치혐오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분위기였다. 2015년 8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조선일보가 실시한 ‘광복 70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관심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66.3%,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33.7%의 두 배에 달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영향도 주기 어렵다’는 체념이 59.6%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12.0%에 비해 훨씬 높았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그간 한국 사회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로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을 꼽았다. “그간의 촛불집회를 분석해 보면 선거를 앞두고 있던 촛불집회와 그렇지 않은 촛불집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이후에는 16대 대선이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후에는 17대 총선이 있었다. 촛불이 자연스럽게 ‘선거’라는 제도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제도적으로 흡수할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100만명이 모인 2008년 촛불의 기억이 촛불집회 참여자들에게는 승리보다 실패의 느낌으로 남았다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정 교수는 “사실 그동안 촛불집회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 많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패배감의 영향으로 불꽃이 안 튀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모두 눌렸다가 이번에 폭발을 한 것이다.” 이번 탄핵 가결로 유권자들의 정치효능감은 높아졌다. 정 교수는 “탄핵 가결로 거리로 분출된 에너지가 제도로 흡수됐다. 시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탄핵 가결로 이는 승리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촛불집회 현장조사를 통해 참가자들의 정치효능감이 높아졌음을 분석했다. “5차 촛불집회 당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내일신문과 함께 집회현장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굉장히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물음에 75%가 넘는 사람이 그렇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는 게 가능했던 배경에는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규모라도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통해 승리를 경험하고 나면 이 승리감은 다음 단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높아진 정치효능감으로 이후에도 한국 정치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시민들이 늘었다. 8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권진영씨(56)의 말이다. “이제까지 동료들과 정치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서로 그런 얘기는 모르는 척했는데, 주위 동료들끼리 이제 터놓고 이야기한다. 울분에 차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인터넷에서 정치뉴스 등을 찾아보는 게 늘었는데, 앞으로도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가면 계속 압박할 것이다. 이 국면이 잘 마무리됐을 때 한국 정치도 많이 바뀔 것이라고 본다.” 조성호씨(39)는 “내일 탄핵 가결이 아슬아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촛불집회에 나왔다”면서 “아무래도 비박계가 돌아선 이유도 촛불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결이 될 때까지 국민이 원하는 바를 가르쳐줘야 저들이 알아들을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인 만큼 꾸준히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라진 유권자를 좇아 정치권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치권의 셈법은 유권자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11월 29일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와 12월 3일 6차 촛불집회 사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2월 3일 집회는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회에서 탄핵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민들이 대통령 권력 회수에 이어 국회의 권력까지 회수한 것이다.” 시민들이 정치권의 셈법을 앞질러 이들을 돌려세울 수 있었던 것은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유승찬 대표는 “소셜미디어가 아랍 민주화 때는 단순히 소식을 퍼나르는 기능을 했다. 언론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언론이 통제되지 않은 한국 사회는 소식을 퍼나르는 데 그치지 않고 공론장 역할도 했다. 소셜미디어가 공론장 역할을 하고 집회 공간이 다시 공론장 역할을 한 셈이다. 전 세계에 없는 새로운 모델이다. 소셜미디어와 광장이 선순환하면서 집단지성이 최대한으로 발현하는 형태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 3일 횃불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 일대를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광장에서의 빠른 정보유통도 집단지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서복경 선임연구원은 “보통 때 뉴스가 전국단위를 도는 데 보름이 걸린다면 지금은 토요일마다 지역별로 광장에서 정보가 교환된다. 정보가 유통되는 사이클이 굉장히 빠르다. 일상적 시기에는 퇴진하고 탄핵하고 뭐가 다르냐고 하면 잘 모른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탄핵이 되면 대통령이 연금을 절반만 받고 퇴진하면 다 받는다는 이런 정보가 굉장히 빠르게 교환된다. 사실에 관한 정보와 해석에 관한 정보가 있는데 광장에서는 해석에 관한 정보가 빨리 교환된다. 광장에 다녀온 사람들이 또 일상의 공간에서 이를 계속 퍼뜨린다.”

민심보다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인의 전략이 더 이상 집단지성을 앞지를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6차 촛불집회가 있은 다음 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더 이상 기존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낫다’는 오만함과 폐쇄성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박근혜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상입니다. 과거에 배우고 경험한 모든 ‘정치 네트워킹 기술’과 ‘정치 선동술’은 잊고 버리십시오. 솔직하고 진지하게 있는 그대로의 의도와 생각을 밝히십시오.” 표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 3차 담화 후, 정치권이 탄핵이 아닌 퇴진으로 기울어졌던 상황들이 ‘야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측면이 있다. 나 자신도 국회의원이지만, 국회의 핵심에는 못들어가 있다. 주변인으로 바라봤을 때도 한국 정치가 흘러가는 모습이 국가적 위기상황임에도 관성적으로 밀실야합에 의해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정치권이 여론을 읽는 방식이 실제 여론과는 괴리가 있다. 정치권은 대통령이 퇴진하겠다고 하면 촛불이 약해질 것이라고 읽었다. 정치권이 읽는 민심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유불리를 개입시켜 보기 때문에 실제 여론보다 낮게 본 것이다.” 정치권이 여론의 본질을 읽지 못하는 현상을 분석한 책 <분노한 대중의 사회>를 쓴 김헌태 상상정치센터 센터장은 정치권이 촛불민심을 기술적으로 읽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촛불민심을 오히려 야당에서 못 읽는 측면이 있다. 야당은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분노한 민심을 기술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오히려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촛불여론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유권자층이 있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촛불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분노 자체가 보수 쪽에서도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야당의 시각에서는 전반적인 흐름을 놓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정파 간 이해득실 때문에 여론을 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 어느 정파든 정략적인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국면을 장악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수싸움이다. 그러나 여론 자체는 여론이 항상 그런 측면을 가지는 경향이 있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정치권과 어긋난다. 이러한 수싸움이 탄핵 가결 이후 여론과 어떻게 부딪힐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

표창원 의원은 유권자가 달라진 만큼 정치권도 기존의 ‘네트워크에 의존한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어떤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있느냐가 정치를 하는 데 있어 관건이 됐다. 당내 어떤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져 있는지가 중요했다. 여당은 대통령과의 거리, 야당은 야당 지지세력인 노조나 시민단체와의 관계, 또는 언론과의 관계 혹은 대기업과 관계를 잘 맺어야 유력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각 상임위 위원장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치공학적인 구도 하에서 그들만의 합의를 보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국민들이 주시하고 하나하나 평가하고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현재 유력 정치인들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친박은 오직 권력자와의 의존관계로 정치를 하는 네트워크에 의존한 대표적인 정치인들이다. 표창원 의원은 유권자들의 변화가 단순히 이번 탄핵국면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변화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국회의원들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하던 사람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던 유권자의 모습이 아니다. 당내에서도 권리당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차에 걸친 촛불집회는 정치환경 자체를 바꿨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세대투표, 지역투표에 기댄 콘크리트 지지율의 붕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교수의 말이다. “이번에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생각보다 이탈이 크다. 쉽게 안 돌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50대와 PK(부산·경남)가 스윙보터(부동층)라고 이야기됐는데, 촛불집회 이후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렸던 TK(대구·경북)와 60대가 스윙보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11월 26일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15.4%, 60세 이상은 31.5%였다. 정한울 교수는 “이미 지난 20대 총선에서 상당수가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이탈했다. 한 번 이탈해 본 사람들과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다시 모으는 게 중요했던 시점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새누리당은 예전과 같은 콘크리트 지지율을 회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하고 새누리당이 당 해체를 포함해 전면적인 쇄신을 한다면, 새누리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50대 유권자들은 69.4%가 ‘없다’고 응답했다. 60세 이상은 41.8%가 ‘없다’고 응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구·경북의 55.8% 응답자가 ‘없다’고 응답했고, 34.2%가 ‘있다’고 응답했다. 정한울 교수는 “정당 지지층의 재편이 이루어질 여건은 충분히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도 위기의식을 말했다. “여론이 안 좋더라도 대구·경북은 새누리당을 믿고 따랐는데, 이제 여론 추이가 많이 돌아섰다. TK도 전국 여론과 비슷한 흐름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TK의 구심점이었는데, 구심점 자체가 무너졌다.”

콘크리트 지지율의 붕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패배의 ‘알리바이’로 삼았던 야당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태섭 의원은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글에서 “정권 초기를 제외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집권 중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우세한 시기가 오히려 더 길었다. 지난 대선기간에도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꾸준히 60%를 웃돌았다. 야당은 이런 여론을 현실화하는 데 실패해서 진 것이다…‘기울어진 운동장론’의 근본적인 오류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는 데 있다. 야당이 매번 지는 이유는 야당에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심각하게 헤매서 사람들이 염증을 느낄 때도 표는 야당으로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면에서 야당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이탈한 새누리당 지지층을 야당은 흡수하지 못했다. 정한울 교수의 말이다. “야당에서 강하게 친박에게 책임을 묻거나 친박을 공격하지 않았다. 야당끼리 싸우는 게 부각될 뿐 공범인 친박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크게 비판받지 못했다. 야당은 협상 대상으로 애초에 친박 지도부는 배제해놨어야 한다. 이번에도 야당은 전형적인 2등 싸움을 반복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전멸 수준으로 망해야 할 세력으로 낙인 찍혔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대안은 아니라는 상당수 유동적인 유권자층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을 어떤 세력이 잡아챌지는 향후 민심의 농도를 누가 더 잘 읽고 추진하느냐에 달렸다.

6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냈다. 그간의 경험은 유권자들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유권자들은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 가결 이후 정치권은 빠르게 대선국면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셈법에 따라 지금의 국면을 장악하기 위한 수싸움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든 촛불을 경험한 유권자들의 여론에 따라 변화하지 못한다면, 변화하는 유권자의 큰 줄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