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김 전 실장이 ‘청와대 2인자’로 군림했던 시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어떻게 버젓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유추해 보는 데 도움을 주는 단서는 적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을 극도로 억누른 유신시대를 거치며 ‘잘 나가는 검사’로 성장했고, 전두환ㆍ노태우 정권 때에도 검사장과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을 지내며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이력답게 그의 국가관과 역사의식은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군사정부 시절 국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골적인 반공의식, 편협한 정치적 시각도 여과 없이 표출돼 있다. 요컨대 ‘극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김 전 실장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라는 얘기다.
박정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유신시절부터 요직에 등용됐다.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인 김 비서실장이 군을 시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에 맹목적 충성 ‘박(朴)비어천가’
김 전 실장의 회고록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鄕愁)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61년 5월 16일 박 전 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를 시종일관 ‘5ㆍ16 군사혁명’또는 ‘5ㆍ16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3년부터 ‘5ㆍ16 군사정변’이 공식 명칭이 됐는데도 불구, 여전히 과거 용어를 고집했다. ‘5ㆍ16 혁명’은 현재 일부 보수진영에서만 통용되고 있는 상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김 전 실장의 칭송은 낯뜨거울 정도다. “역사의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와 소신, 그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겸비한 분”이라고 박 전 대통령을 평가한 그는 “우리 역사상 그 분만큼, 오로지 민족중흥에 대한 일념만으로 사심 없이 애국 애족하며 자기를 희생한 지도자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또, 박정희 정권 시절 자행된 수많은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억압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 없이 “그 분의 내면에는 소탈함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충만하고 있었다고 나는 회고한다”며 “세종대왕과 함께 그 분을 존경한다”고도 했다.
72년 10월 박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대해서도 그는 궤변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다. “국론을 통일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 “박 대통령의 이 조치는, 그 우국충정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등이라고 한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72년 당시 법무부 검사였던 김 전 실장은 외국 사례 연구 등을 통해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 했다.
이 같은 ‘맹목적 충성’은 그의 근무경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64년 초임검사로 임관한 김 전 실장은
10년 후인 74년 4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됐고, 같은 해 9월 대공수사국장이 됐다. 한 달 전 발생한 고 육영수 여사 시해사건 범인인 문세광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자 박 전 대통령이 “김기춘 검사가 수사실력이 탁월하니 대공수사국장으로 임명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는 “중정 역사상 최연소(만 34세 10개월) 수사국장으로 중책을 맡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79년 2월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이동, 같은 해 ‘10ㆍ26’ 직전까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그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총애와 가르침, 격려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정수장학회 친목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김 전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표 시절 여의도연구소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승만은 찬양, DJㆍ노무현은 ‘친북좌파’
“영웅적인 생애를 산 사람으로서 국부(國父)로 받들어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쓴 게 대표적이다. “집권 말기에 (1960년 3ㆍ15) 부정선거 등 오명을 남겼지만, 나라를 건국하고 공산당이 일으킨 6ㆍ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내었고,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세계 외교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거사를 이뤘다”는 이유였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사실상 호의적이다. 81년 자신의 검찰국장 보임과 관련, 박정희정권 때 경력이 논란을 빚자 “전두환 대통령께서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니 개의치 말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라고 하시오’ 하시며 쾌히 재가해 주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나의 검찰총장 임기 내내 검찰의 독자성을 지켜 주려고 배려해 주셨고, 총장 임기를 마친 후 6개월 정도 지나 개각 시에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해 주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김 전 실장의 ‘수구보수적 성향’은 다른 대목에서도 뚜렷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반면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북적ㆍ좌파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두 대통령의 집권시기에 대해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 헌법이념이 제대로 구현되는 올바른 자유민주정부를 세우려고 열심히 투쟁했다”고 기술했다.
특히 지금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그의 ‘소신’도 나온다. “(검찰)총장 재임 시절 나는 ‘공산주의자들은 무좀과 비슷하다. 약을 바르면 잠시 들어갔다가, 약을 바르지 않으면 또 재발하는 것이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언제 독버섯처럼 돋아날는지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끊임없는 사상 투쟁, 국민의 사상 무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도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윗선으로 의심받는 이유에 대한 간접적 정황인 것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회고록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