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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우주이자 생명 그 자체다

장백산-1 2017. 1. 20. 22:49

경향신문

[책과 삶] 정보는 우주이자 생명 그 자체다

정원식 기자 입력 2017.01.20 20:09 



[경향신문] ㆍ인포메이션
ㆍ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김태훈 옮김 |동아시아 | 656쪽 | 2만5000원

(왼쪽 위)‘정보이론의 아버지’ 섀넌이 로봇 생쥐가 미로를 찾는 실험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2차 미분방정식을 기계적으로 푸는 데 사용된 1930년대 MIT의 미분해석기. 도서출판 동아시아 제공. (오른쪽 아래)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생성기 에니그마.

19세기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였던 윌리엄 앨런은 니제르 강을 탐험하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원주민들은 북소리로 아주 상세한 내용의 메시지를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구체적이었느냐 하면, 예를 들어 부락에 신생아가 태어났을 경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적들이 둘둘 말리고, 우리는 힘이 솟네. 한 여인이 숲에서 나와 탁 트인 마을에 있네. 이번에는 이걸로 족하네.”

‘말하는 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단순히 북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 그러니까 미리 약속한 규칙에 따라 북소리의 장단을 조절하는 걸로는 불가능하다. 비밀은 원주민들의 언어 특성에 있었다. 아프리카 언어는 자음과 모음의 차이뿐만 아니라 성조(높낮이)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발음은 같아도 성조가 달라지면 “그는 강둑을 바라봤다”는 문장이 “그는 장모를 삶았다”의 뜻을 지닐 수도 있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말할 때처럼 북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해 복잡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기신호를 점과 선으로 조합해 정보 전달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던 19세기 새뮤얼 모스의 전신 또한 기본적인 원리는 ‘말하는 북’과 동일했다. 다시 말해 자연언어를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기호로 대체한 것인데, 역사적으로 정보의 양과 속도는 이 기호의 추상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인포메이션>의 저자 제임스 글릭이 보기에 정보란 “세상을 움직이는 혈액이자 연료이자 필요불가결한 본질”이다. 책은 정보, 통신, 수학, 암호, 언어, 심리, 철학, 유전, 진화, 양자역학을 아우르며 5000년에 걸친 정보의 역사를 서술한다.

직관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보는 단순히 통신망에 담겨 돌아다니는 데이터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보이론에 따르면 정보는 우주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모습 그 자체다. 숫자 ‘0’과 ‘1’의 배열(비트)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정보다. 우주의 본질이 정보라고 믿었던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1911~2008)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정보의 역사 앞머리에는 문자가 자리 잡고 있다. 문자 이전에도 인간은 언어를 사용했지만, 논리는 문자의 발명과 함께 탄생했다. 구술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논리적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1930년대 한 러시아 심리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눈이 내리는 북쪽 지방에는 모든 곰이 하얗다. 북극은 먼 북쪽에 있다. 북극에 사는 곰들은 무슨 색일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구술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요. 검은 곰은 봤지만, 다른 곰들은 본 적이 없어요.” 반면 문자문화에 속한 사람은 “말한 대로라면 그 곰들은 흰색이겠네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북극에 흰곰만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구술문화에는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의 영역을 벗어나는 추상화 능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형식 논리에 의한 추론은 문자문화 이후에 가능해졌다는 것으로, 이 같은 추상화와 형식 논리야말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보의 속성이다. 情報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화자의 경험으로부터 분리(分離)되어 버린다.” 추상화되고 논리를 갖춘 정보는 끊임없이 가지를 치며 늘어난다. 배열과 분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제임스 머리가 모든 영어 단어를 싣겠다며 편찬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방대한 정보 창고였으며, 사전편찬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보 분류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찰스 배비지(1791~1891)는 복잡한 연산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계산 기계를 고안해 정보 생산 방식을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 올려놨다. 크기 4.5세제곱미터, 무게 15t, 부품 2만5000개에 설계도의 크기만 37㎡에 달하는 이 기계는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구체적 물질세계에서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었다. 계산 기계의 존재는 결국 인간의 사고 작용은 일종의 정보 처리이며, 그렇다면 그것을 기계로 대신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분기점은 모든 정보를 ‘0’과 ‘1’로, 다시 말해 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認識의 출현이다. ‘정보이론’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수학자이자 디지털 정보통신 이론의 기초를 놓은 수학자 클로드 섀넌(1916~2001)은 1940년대 말 벨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는 동안 정보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어 놓았다. 섀넌은 정보에서 ‘의미(意味)’를 제거하고, 정보가 순수하게 수학적인 형식 논리만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로봇 생쥐 이야기가 흥미롭다. 1951년 섀넌은 자석이 부착된 생쥐 모형을 사용해 머신러닝의 기초 개념을 실연했다. 생쥐는 25칸으로 구획된 미로를 돌아다니도록 설계됐다. 미로 아래에는 전기식 릴레이 회로를 배치했는데, 이 회로를 통해 생쥐가 돌아다닌 경로가 저장됐다. 생쥐는 장애물이 나오면 역회전하는 방식으로 시행착오 끝에 길을 찾아나갔다. 그러나 두 번째 시도에서는 목표 지점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출발 지점이 바뀔 경우에는 “정보의 완전한 패턴을 구축하고 어느 지점에서든 바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알파고가 인상적으로 보여준 머신러닝의 초기 형태다. 섀넌은 실제로 체스 두는 기계를 프로그래밍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한 엔지니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생각한다는 발상은 결코 우리 모두가 꺼림칙해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인간의 두뇌 자체가 무생물로 그 기능을 재현할 수 있는 일종의 기계라는 역발상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이론의 관점에 서면, 생명 자체가 정보가 움직이는 하나의 네트워크가 된다. 저자는 “생물학도 메시지, 지시문, 코드를 다루는 일종의 정보공학이 되었다”면서 도킨스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생물의 핵심에는 불이나 따스한 숨, ‘생명의 불꽃’ 같은 것이 아니라 정보, 단어 지시문이 놓여 있다. 生命을 이해하려면 활기차고 약동하는 점액질이나 분비물이 아니라 정보기술을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나비효과’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베스트셀러 <카오스>로 잘 알려진 저술가다.

6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은 수학적 기초 소양이 부족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면도날로 얇은 가죽을 베어내듯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이 전진하는 저자의 필력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