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는 박 대통령..'사실'은 적나라하다
구교형·유희곤 기자 입력 2017.01.26 21
[경향신문]
ㆍ인터넷 방송서 쏟아낸 주장 보니…
탄핵 반박 못하는 ‘호소형 변명’ 일색
박근혜 대통령이 설 연휴를 이틀 앞두고 “오해와 허구, 거짓말, 터무니없다” 등의 표현으로 최순실씨(61·구속 기소)의 국정농단 행위를 부정했다. 직무정지 중인 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인터넷 방송 <정규재TV> 인터뷰에서 내놓은 해명은 국회의 탄핵 사유를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호소형 변명’이란 지적이 많다. 더구나 특검·검찰 수사 결과나 언론의 취재 보도와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서도 근거는 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씨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연설문의 표현과 홍보적인 관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의 박 대통령과 최씨 간 회의 녹음자료에 따르면 2013년 2월17일 두 사람은 취임식을 앞두고 만나 정부 국정기조를 협의했다. 이 가운데 ‘문화융성’은 토의 끝에 함께 고안했고, ‘경제부흥’은 최씨가 먼저 제안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확정됐다. 또 최씨는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자료뿐 아니라 주요 시설 부지 선정안,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들의 단독 면담 계획안 등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문건들을 사전에 건네받아 자신의 의견을 반영했다.
박 대통령이 최씨 딸 정유연씨(21·개명 후 정유라)를 마지막으로 본 시점을 “정씨가 어릴 때”라고 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 정씨는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다른 선수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최씨 수행비서 역할을 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6·구속 기소)은 특검 조사에서 “2015년 1월 청와대 별관에서 박 대통령을 김종덕 문체부 장관(60·구속)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면서 “박 대통령이 저희들에게 ‘정유연이와 같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을 정책적으로 잘 키워야 한다. 왜 이런 선수를 자꾸 기를 죽이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보다 앞서 2013년 4월 정씨가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준우승한 뒤 심판 판정 시비가 일자 박 대통령은 그해 7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체육계 비리 척결’을 지시하기도 했다.
최씨의 정부 부처 인사개입 혐의에 대한 질문에는 그 대상과 범위를 두고 “ ‘문화 분야’에서만 ‘조금’ 있었다”고 답변했는데, 이 역시 특검·검찰 수사 결과와 판이하다. 일단 최씨의 추천으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8·구속 기소)이 공직에 입문한 뒤 차 전 단장의 ‘은사’인 김종덕씨가 문체부 장관에, ‘외삼촌’인 김상률씨(57)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차례로 임명돼 문화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박 대통령이 주요 공직 후보자 명단을 구두로 불러주면 정호성 전 비서관이 그 내용을 문서화해 최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례로 2013년 4월5일 국가정보원 2차장과 기획조정실장 인사를 할 때 최씨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고 개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예술인 지원배제 명단인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51)이 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직권남용)로 특검 수사를 거쳐 구속됐는데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2014년 1월과 7월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블랙리스트 지시는 당초 ‘반대파를 포용하겠다’는 약속과 다르다”고 항의했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61)의 헌법재판소 증언과도 충돌한다. 되레 박 대통령은 “장관으로 재직할 때의 말과 퇴임한 뒤 말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유 전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태극기 집회 참석 인원이 촛불집회의 2배라거나 촛불집회에서 나온 국민의 목소리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반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처럼 ‘10배는 뻥튀기된 것’이라고 폄하한 것을 두고는 보수진영 내부에서조차 “턱없는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형·유희곤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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