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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스웨덴에서 출마한다면 나는 찍지 않겠다"

장백산-1 2017. 2. 1. 02:03

한겨레

"그가 스웨덴에서 출마한다면 나는 찍지 않겠다"

이정훈 입력 2017.01.31 21:16 수정 2017.02.01 01:46 



전 유엔 감찰실장 알레니우스 전자우편 인터뷰
"내부적으로 유엔 투명성·책임성 제고 실패"
"외부적으로 미국 등 눈치 보느라 유엔 역할 못해"

[한겨레]

알레니우스 전 유엔 감찰실장이 2011년 스웨덴 기자 니클라스 에크달과 함께 펴낸 
<미스터 찬스: 반기문 재임 기간 중 쇠퇴한 유엔>의 표지.

“그가 스웨덴 대통령으로 출마한다면 나는 절대 찍지 않을 것이다.”

스웨덴 출신인 잉아브리트 알레니우스 전 유엔 감찰실장은 31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반기문 전 사무총장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유엔에서 2003년부터 7년간 감찰실장(OIOS)으로 일하다 2010년 7월 반 전 사무총장 앞으로 50쪽에 이르는 비판 보고서를 남기고 사퇴한 바 있다. 이듬해에는 스웨덴 기자 니클라스 에크달과 함께 <미스터 찬스: 반기문 재임 기간 중 쇠퇴한 유엔>(Mr. Chance: The decay of the UN under Ban Ki-Moon)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은 내부적으로는 유엔 헌장 제97조가 밝힌 ‘사무국 수석행정관’(Chief Administrative Officer), 즉 내부 총책임자로서 유엔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실패한 것은 물론 유엔 헌장 제99조의 사무총장으로서 외부 역할에도 충실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제99조는 ‘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어떤 사안이라도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P-5)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이 유엔의 내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지 못해 최근 발생한 ‘콤파스 사건’ 등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이사인 안데르스 콤파스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7월까지 프랑스에서 파견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유엔평화유지군이 어린이를 상대로 성적 학대를 했다고 내부고발을 했지만, 보호받기는커녕 물러나야만 했다.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반 전 총장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투명성·책임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콤파스 사건은 그가 재임 시절 유엔의 투명성을 높이지 못해 발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비판이 2009년 당시 모나 율 유엔 주재 노르웨이 차석대사가 본국에 보낸 문건에서 밝힌 반 전 총장 비판과 궤를 같이한다고 밝혔다. 율 차석대사는 스리랑카 내전 방관, 미얀마 방문시 아웅산 수치 면담 실패 등을 예로 들며 반 전 총장을 ‘줏대없고’(spineless), ‘보이지 않는’(invisible) 인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내 보고서가) 반 전 총장에게 직접 전달돼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썼다는 것만 다를 뿐 비판의 내용은 (율 대사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어 “율 대사가 그를 ‘다혈질’(choleric)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도 내 보고서에서 그런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당신의 비판이 유럽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냐’는 질문에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중요한 아시아 국가 상주 대표들이 반 전 총장을 ‘재앙’(disaster)으로 간주했다. 또 주요 회원국들은 반 전 총장이 토론 과정에서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를) 적절한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화제가 된 반 전 총장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도 “상당히 형편없다”(rather poor)고 평가했다. 반면 반 전 총장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대통령이 없어 안타깝다”는 말로 자신의 영어 실력에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반 전 총장의 대통령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내가 답변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 다만 그가 스웨덴에서 출마한다면 나는 그에게 절대로 투표하지 않겠다는 말밖에 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책 제목을 <미스터 찬스>로 정한 배경에 대해 영화 <찬스>(원제 Being there)를 패러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평생을 바깥출입 없이 티브이(TV)만 보며 살아온 정원사 찬스가 고령인 주인이 숨지자 세상 밖으로 나와 엉뚱한 일로 현인 대우를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알레니우스 전 실장은 “반 전 총장의 취임이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생소한 환경에 노출된 정원사 찬스와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요직에 어울리지 않지만 주요 자리에 자격 있는 사람을 앉히고 조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했다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2010년 알레니우스 전 실장의 보고서에 대해 “유엔의 내부 부패와 싸우는 감찰실장이 반 사무총장을 겨냥해 감찰실의 노력을 폄훼하고 유엔을 쇠락으로 이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유엔 내부 관계자는 이런 비판에 대해 “반 총장의 기후변화, 여성 인권 신장 등의 노력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