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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로 살펴본 뇌물범죄 A부터 Z까지

장백산-1 2017. 1. 29. 17:00

한국일보

'최순실 게이트'로 살펴본 뇌물범죄 A부터 Z까지

안아람 입력 2017.01.29 12:13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전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 기간에도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염두에 두고 삼성의 뇌물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검은 지난 16일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측에게 433억원을 뇌물로 제공했다며 3가지 범죄사실을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 하나였지만, 뇌물을 받았다고 지목된 박 대통령과 최씨는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가 함께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3자 뇌물죄는 어떻게 성립하나

특검은 ▦2015년 8월 삼성전자가 대한승마협회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최순실씨의 독일 페이퍼컴퍼니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맺은 213억원 지원계약 ▦같은 해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삼성전자가 최씨 조카 장시호(38ㆍ구속기소)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 ▦삼성 측이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등 3가지를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뇌물로 간주했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 최씨 측에 거액을 제공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특검은 코레스포츠 지원계약 부분의 경우 뇌물죄로, 영재센터 지원과 미르재단ㆍK스포츠 출연 부분은 제3자 뇌물죄로 구분해서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법은 뇌물범죄에 대해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씨는 공무원이 아니지만 공무원 신분인 박 대통령과 공모한 것으로 입증되면 뇌물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특검은 최씨를 뇌물수수 공범으로 보고, 두 사람의 공범 관계를 입증할 증거와 진술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최씨의 딸 정유라(21)씨 지원 목적인 삼성-코레스포츠 계약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대가로 삼성이 제공한 뇌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기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삼성이 최순실씨 및 박 대통령과 직거래를 했다는 뜻이다.

특검은 그러나 왜 영재센터 지원과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 출연에는 단순 뇌물죄가 아니라 제3자 뇌물죄를 적용을 검토할까.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적용된다. 영재센터와 미르ㆍK스포츠는 별도의 법인격을 가진 단체이기 때문에 삼성의 금품지원을 박 대통령과의 직거래로 볼 수는 없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박 대통령이 삼성의 청탁을 들어주고 최순실씨 쪽에 지원을 하도록 요구했다는 의미다. 포스코 수사와 관련해 이병석 새누리당 전 의원이 포스코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로 처벌받은 게 대표적인 제3자 뇌물범죄다.

부정한 청탁과 경제공동체가 쟁점

뇌물 범죄의 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은 현재 삼성 측과 특검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부분이다. 삼성 측은 박 대통령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낸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도 구체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특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마무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공정거래법 개정,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등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대가로 삼성이 영재센터와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에 금품을 지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무 관련성도 뇌물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법원은 지난달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에게서 공짜로 받은 거액의 주식을 받은 부분에 대해 “직무 관련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진 전 검사장의 검사 직무에 김정주 대표나 넥슨의 현안이 없어 대가성을 짚을 대목이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직무범위는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직무 관련성을 문제 삼아 박 대통령이 면책을 받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예측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최근 동시 반격을 통해 부인한 ‘경제 공동체’ 개념은 뇌물죄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개인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 인터뷰하면서 자신과 최씨를 ‘경제 공동체’라고 보는 시각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했다. 특검에 강제 구인된 최씨도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너무 억울해요”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경제 공동체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 공동체는 두 사람이 같은 지갑을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동일하다는 의미로, 법적으로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두 사람이 사실상 같은 지갑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 대통령-최순실 관계가 그만큼 친밀하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므로, 대통령과 최씨 모두 이것만큼은 확실히 선을 그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입장에선 최씨와 경제 공동체로 규정되면 최씨와의 관계를 두고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지방검찰청 간부는 “법원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도 전적으로 한 쪽의 재산에 의존해 생활을 해나가는 정도가 아니면 경제 공동체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선 긋기는 특검이나 법원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검은 설 연휴 기간 지금까지 확보한 진술과 증거 등을 종합해 조만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특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수사로 뿌리 깊은 정경유착 비리가 확실히 끊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