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4·16과 4·3, 진실과 기억 / 허호준
허호준 입력 2017.03.28. 18:36 수정 2017.03.28. 19:06
[한겨레]
허호준 호남제주팀장
3년 전, 나는 무기력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세월호의 모습을 본 뒤로는 더는 그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는 세월호가 텔레비전 화면이나 신문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외면했다. 뒤집힌 세월호가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랑하는 아들딸, 그리고 엄마 아빠, 남편의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 모른 척해 왔는지 모른다.
1073일 만에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우리의 무관심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심하게 녹슬고 긁히고 곳곳에 구멍이 뚫린 세월호의 모습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집었다. 그러나 세월호의 인양은 그로부터 멀어져가던 국민을 다시 끌어당겼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입 밖에 꺼내는 것을 꺼리고 감추려 했지만, 진실은 드러나게 돼 있다.
우리는 이미 과거사 정리를 통해 이러한 경험을 해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5년 동안 광주5·18항쟁, 거창양민학살사건, 제주4·3사건, 의문사사건 등 과거사를 정리, 청산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실행해 왔다. 핵심은 진실 규명이었다. 그 과정은 더디고 한계도 있었지만,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청산 작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사실상 ‘과거사 지우기’로 퇴행했다. 그러나 멀리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물론 가까운 대만의 2·28사건 진상 규명에서 보듯이 역사는 진실을 향해 나아갔다.
지난 1월 국회에서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재개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고, 지난달에는 한국전쟁기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이 학살된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작업이 민간단체에 의해 이뤄졌다.
세월호의 최종 목적지 제주. 벚꽃과 유채꽃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맘때가 되면 제주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에 갇힌 비극적인 4·3 희생자들을 기리는 여러 추모행사가 4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월1일 이른바 ‘3·1사건’에서 평화시위를 구경하던 초등학생에서부터 40대의 장년까지 6명이 미군정의 발포로 희생됐다. 그러나 미군정은 진상을 공개하지도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커녕 오히려 물리적 탄압으로 맞섰다. 3·1사건에 이어 일어난 4·3 희생자들은 오랜 세월 이념의 굴레에 덧씌워졌다.
3·1사건 희생자 유족 가운데 한 명인 송영호(82)씨는 오는 31일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제주4·3연구소가 마련한 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이날의 진실을 말할 계획이다. 복부에 총상을 입고 “물을 달라”고 애원하던 아버지(당시 48살)를 잊을 수 없다는 그는 “후손들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4·3 추념식이 열리는 날이면 제주4·3평화공원의 각명비와 행방불명인 표지석 앞에서 주름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실과 기억의 대상인 과거사가 70년 전의 일이었다고 유족들의 슬픔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3년 전의 세월호 참사는 생생한 현재의 일이다. 세월호 인양과 함께 참사의 진상 규명과 정의를 위한 기억하기는 이제 시작이다.
지난달 28일 ‘대만판 제주4·3사건’이라는 대만 2·28사건 추념식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 규명 없이는 화해도 없다. 진실을 밝혀내고 가해자가 사과하며 피해자와 유족이 용서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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