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세월호 다이빙벨 이종인 "구조 안하고 못하게 한 행위 수사해야 한다"

장백산-1 2017. 4. 8. 17:49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 

세월호 다이빙벨 이종인 "구조 안하고 못하게 한 행위 

수사해야 한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입력 2017.04.08. 15:02


이종인 대표가 세월호 구조상황을 말하다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세월호 다이빙벨 이종인, 자유와 진실을 갈구하는 눈물 많은 구난자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는 ‘다이빙벨’을 처음 일반에 소개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에서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그 고유명사는 죽어가는 학생들을 구조하지 못한 (오히려 방해하는) 정부의 무능과 부정을 질타하는 ‘반정부’로 어의가 발전했다.

기자는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다이빙벨을 알고 있었다. 기자는 1904년 러일전쟁 때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 탐사과정, 즉 한국 수중고고학의 실체를 정리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라는 책을 썼다. 기자는 이 책 서문에서 “다이빙벨은 해저탐사에서 가장 초보적인 첨단장비였으며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과학장비”라고 썼다.

이 대목을 읽은 이종인 대표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다이빙벨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그런 반가움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곧 노한 표정, 아니 원망스런 표정으로 바뀌면서 “알면서 그때 기자로서 왜 말하지 않았나, 기자로서 의무를 방기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대표의 이런 추궁에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오래 취재해 나름 ‘재난전문기자’ 소리도 들어본 기자는 세월호 참사에서 품은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중대본으로부터 8번이나 보고를 받고도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뭘 했느냐다. 이는 특별검사를 통해 일부 진실이 드러났지만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와 국가정보원 관계다. 이는 세월호를 둘러싼 음모설의 주요 기반이다. 사실 이는 세월호에 부과된 재산세와 그 납부내역만 따지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국정원 직원의 공제회(양우공제회)가 투자한 배라면 공제회 예·결산 내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결산 내역은 공제회원에게 공개된 것으로 국정감사와 조사, 세월호 조사특위가 이를 밝히지 못하는 것도 의외다.

마지막 의문은 왜 신속한 구조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나이다. 물론 이는 해경과 구조업체(언딘)의 계약 혹은 유착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이빙벨 구조작업을 방해한 행위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종인 대표를 만난 것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침수다” “수심 30m이면 기압은 4배로 늘어난다. 산소가 4분의 1로 압축됐다는 얘기다. 대기중 21%의 산소로 호흡하다 배가 침몰하면서 갇힌 아이들은 4배로 압축된 산소를 마신다. 나중에 시신이 인양돼 대기 중에 나오면 압축된 질소가 팽창하면서 시신이 불어난다. 부모들은 부패로 훼손됐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훼손된 시신은 수중에서 압축된 공기로 호흡했다는 증거다. 이것은 과학이다.”

그런 학생이 몇 명이나 되나.
“학부형이 확인한 시신 중 부풀어 오른 시신이 200여구다. 얘들은 마지막까지 숨을 쉬었다. 엄마·아빠를 기다리며 살아있었다. 구조 안 하고, 못하게 한 것 이것은 굉장한 범죄다.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구조문제가 나오자 흥분했다. 슬픔을 머금은 눈에서 노기 어린 분노의 눈빛이 발광했다. 3년 전 다이빙벨을 철수해 팽목항으로 나오면서 “한마디로 개 같다, (작업을) 막는 놈들 개 같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울면서 소리치던 바로 그때 표정이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자비를 들여 다이빙벨을 싣고 팽목항에 갔지만 해경은 구조작업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겨우 한 귀퉁이에서 구조작업에 동참했다. 해경 11분, 해군 26분, 민간잠수사가 33분 작업할 때 다이빙벨을 이용한 수색작업은 1시간 넘게 계속했다. 그러나 해경의 고의적인 충돌 등 구조 방해와 위협으로 그는 다이빙벨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3년 만에 처음 말하는 얘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해군 소장이 배를 빼라고 해서 나오면서 난 걱정을 안 했다. 너희들 겨우 5~7분 바닥에서 작업했지만 나는 70분 작업했다. 이 엄청난 가능성을 유족들도 다 봤다. 그래서 장군이 쫓아내면 유족들이 말릴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유족 대표가 내 멱살을 잡고 패대기 치더라. 유족 대표는 ‘아이들을 못 데리고 나왔으니 실패 아니냐’고 따졌다. 나는 ‘다이빙벨은 성공했고 구조는 지금부터다’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 유족 대표는 ‘다이빙벨은 실패’라고 강요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렇게 말하기를 원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더라.”

그 유족 대표는 정부 측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나.
“유족 중 일부는 정부 입장을 강요했다. 나는 그 유족 대표에 쫓겨 나왔다. 게다가 다이빙벨의 성과를 확인했으면서 거두절미하고 실패했다고 쓰는 언론들…. 나는 죽일 놈, 국민 사기꾼이 됐다. 그래서 철수한 것이다.”
세월호 조사특위에서 구조를 방해한 세력에 대해선 조사를 받지 않았나.
“그런 거 안 했다. 나중에 특조위 간사가 상하이셀비지에 가서 뭘 봐야 하나 물어보기 위해 자문을 구해 온 적이 있다.”

■다이빙벨 구조작업에 1억 2000만원 써 의외였다. 세월호 특조위는 침몰과정은 물론, 구조과정의 적정성도 조사할 권한이 부여돼 있었다. 구조과정에서 위협을 받은 이 대표를 조사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업자로부터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한 달간 숨어 지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무엇으로 보나.
“침수다. 어떤 원인이든 초기부터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말했다.

물론 사고는 하나의 요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배를 불법 증축하고, 과적하고, 평형수를 빼고, 고박을 부실하게 해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고, 조류가 센 곳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조타도 미숙하고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그 순간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C데크 벽을 비닐로 개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의 얘기는 말이 안 된다. 화물선이 과적을 했어도 실을 만해서 실었을 것이다.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물이 들어와 메인 엔진이 물에 잠겨 침몰한 것이다. 닻을 내린 것은….”
닻을 이용한 고의 침몰설 말인가.
“앵커(닻)를 내린 것은 배의 속도를 통제하지 못하니까 앵커로 슬로다운(감속)시킨 것이다. 배를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승객 증언에 따르면 배가 갑자기 제동이 걸리며 사람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확 쏠렸다고 하는데, 그 정도 관성이 발생했다면 충돌 아니면… 앵커가 확 잡힌 것이다. 침몰 원인을 따지는 것은 내 분야가 아니다. 내 전문분야는 ‘왜 배가 뒤집힌 후에 구조를 안 했냐’는 것이다. 그게 내 분야다.”
그렇다. 잠수함 충돌설 역시 기자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길이 145m, 폭 22m, 무게 7000톤이 나가고 2000톤이 넘는 화물과 평형수를 실은 세월호와 충돌해 침몰시킬 잠수함은 세계적으로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미국 최대 핵잠수함도 세월호보다 조금 길지만 폭은 훨씬 작다. 게다가 수중에서 빠른 속도를 내기 어렵다. 에너지는 질량보다 가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E=mc²로 속도가 중요한데 잠수함의 속도는 시속 수십㎞ 수준이다.
“(허~ 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나오네.”

이건 중학교 2학년 물리시간에 배우는 기본 상식이다.

“맞다. 맞다. 만약 잠수함이 해저에서 충돌했다면 세월호 이상 데미지(손상)를 입었을 것이다.”

이런 각종 설이 난무하는 것은 정부가 진실을 숨긴 탓이다.
“그렇다.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가 사실을 밝히지 않으니 이런 각종 설이 나오고 통제도 안 된다.”

그의 말대로 구조전문가에게 침몰 원인을 묻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는 다이빙벨을 싣고 팽목항에 달려가 구조작업에 1억2000만원을 썼다.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 앞에서 당시 구조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원희복 선임기자
독점 계약한 구난업체가 올 때까지 구조를 안 했다. 그래도 구조작업 방해는 말아야지. 왜 방해했을까.
“아니까. 다이빙을 하는 놈이면 다이빙벨의 효용을 안다. 자기들 능력으로 구조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구조하면 안 되니까. 새 정부에서는 구조를 안 하고 못하게 한 것을 조사해야 한다.”

그는 한국해양구조협회가 설립될 때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해양구조협회에 가입한 업자에게만 일자리를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정부가 일감을 나눠주겠다는 것으로 불공정 거래”라며 “협회는 관료들의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하는, 결국 국민의 세금을 뜯어먹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 대목에서 왜 그를 구조에서 배제했는가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해경은 해양구조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그를 구난업체 대상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천안함 참사는 좌초”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만약 그의 다이빙벨이 세월호 구조에 효과를 거뒀으면 천안함 구조 문제도 다시 제기될 것이다. 이종인과 다이빙벨은 세월호를 넘어 천안함으로까지 이어지는 뇌관이었던 셈이다. 이런 추론은 해군 소장이 겁박하며 다이빙벨 철수를 요구했던 이유도, 집요하게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저지한 이유도 설명된다.

■해난 구조와 배의 안전분야에 전념 그는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중·제물포고·인하대 조선공학과를 나온 온전히 인천 토박이다. 대학 졸업 후 네덜란드 요트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다 잠수회사에서 8년간 잠수를 배웠다. 미국에 두 번이나 가 해양구조 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1990년 이 회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잠수분야에서 돈이 되는 토목·설비공사는 않고 해난구조와 배의 안전점검 등 안전분야만 했다. 그는 “해난사고는 사건마다 달라 현장에서 즉시 해결해야 한다”면서 “배가 침몰하는 순간 구조하는 것아 기술”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평범하게 말하는 이 대목도 재난사태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 때 수없이 나온 말이 컨트롤타워다. 사실 조정·관리라는 의미의 컨트롤은 재난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정부 관료적 발상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참사가 나면 컨트롤타워만 높였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나자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 재난관리과가 생겨 본부장급인 민방위재난통제본부로 커졌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차관급인 소방방재청으로, 박근혜 정부에서는 장관급인 안전행정부로 커졌다. 2015년 세월호 참사가 나자 정확한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무총리 소속 국민안전처로 키웠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재난상황에서 컨트롤타워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분초를 다투는 현장의 대응이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그 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안전은 컨트롤타워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재난 발생 현장에서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세월호 참사와 현장을 중시하는 이종인은 안전에 대해 컨트롤타워에 매달리는 지금까지의 관료적 발상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공무원들은) 조금만 해먹어라. 그리고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라”면서 “나는 해병대를 나와 말하는 것이 무식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식한 것이 아니다. 무서움이 없는 것이다. 칠흑 같은 바닷속에서 사람을 구조하는 일로 평생을 산 그가 무엇이 무섭겠나. 그는 강자에게 굴종하지 않는 자유인이며, 불이익이 있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눈물도 많은 그런 남자일 뿐이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