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하성용 '언터처블'이었나..
朴정부 핵심인사로 수사확대 주목
입력 2017.07.20. 10:54 수정 2017.07.20. 10:58
"뻣뻣했다" 평가..朴정부 핵심 인사들과 유착관계 의혹 증폭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박근혜 정부의 주요 사정기관들이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을 둘러싸고 불거진 각종 비위 의혹 앞에서는 고개를 돌리거나 눈 감은 게 아닌지 의문이 드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 사장이 전 정부의 실력자들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세간의 의심에 힘을 더하는 지점으로, 방산비리를 고리로 삼은 검찰 수사가 이전 정부 핵심 인사들로 확대될지 이목을 끈다.
20일 정치권과 사정 당국 등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3년 4월 하 사장이 KAI 경영관리본부장 시절 회사 자금을 횡령해 십억여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관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 확인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 사장이 KAI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런 내용의 제보가 이듬해에는 경찰로 흘러들어 갔고, 경찰도 제보자 등을 조사했으나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서 2015년 10월 발표한 감사 결과에는 한국형 헬기 수리온의 개발 과정에서 자행된 '원가 부풀리기'와 이에 관여한 인사 관계자의 용역대금 편취 의혹 등이 담겨 있었다. 감사원에도 하 사장의 개인 비리 첩보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내용은 결과에서 빠졌다.
검찰 역시 2015년 초 감사원에서 처음으로 수사 참고자료를 이첩받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이달 14일에야 KAI의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참고자료로는 곧바로 강제수사에 착수하기엔 부족해 전·현직 KAI 임직원에 대한 자금 추적을 했고, 2015년 6월에는 핵심 인사 관계자의 혐의와 금액이 특정돼 체포영장을 받아 검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실·감사원·검찰·경찰 등 정부의 주요 사정기관에 하 사장의 비리 제보가 거듭 들어갔음에도 본격적인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 사장이 이전 정부 실세의 비호를 등에 업고 사정기관의 칼날이 접근치 못하는 '성역'처럼 행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방산업계에서는 감사원 감사 발표 이후에도 2년 가까이 검찰의 본격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부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먼 친척 관계인 하 사장이 정권의 비호를 받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입수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도 친박 실세 의원이 "KFX 사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도 잘 아는 하성용 대표를 만나보라"고 조언한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서 과거 KAI의 자금 비리를 포착했으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영향으로 수사를 보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사정 당국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하 사장의 경우 다른 공기업 사장이나 기관장들과 태도가 좀 다르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상당히 '뻣뻣하다', '지적해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고, 그래서 뭔가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하 사장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그가 재임하던 때 KAI가 국산 고등훈련기 T-50의 미국 등 수출을 추진하고 있었던 점도 사정의 칼날을 무디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T-50의 미국 수출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사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계약을 앞둔 회사를 흔들면 안 된다'는 논리 때문에 사정기관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 사장이 지난해 5월 연임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현재 검찰은 하 사장이 협력업체들에 일감을 몰아주고 원가를 부풀려 리베이트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연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을 파헤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 사장이 KAI와 대우중공업 시절 함께 일한 인맥으로 엮인 측근들의 업체를 키워줘 회사를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수사 대상으로 꼽힌다.
지난 18일 검찰이 압수수색한 협력업체 5곳 가운데 T사는 하 사장 측근으로 알려진 조모(62)씨가 대표이고, 함께 압수수색을 받은 Y사의 대표가 T사의 실질적 소유주다.
Y사는 하 사장이 대우중공업 재무파트에서 근무하던 때 협력업체였다.
인맥으로 엮인 업체들을 '밀어주는' 과정에서 배제된 협력업체들에 대해서는 불법 행위를 압박하는 '갑질'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KAI의 주요 협력업체이던 D사는 지난해 KAI가 페루에 훈련기를 수출하는 데 필요한 격납고 수리비 7만9천달러를 대신 송금해달라고 압박해 이를 들어줬다고 폭로한 바 있다.
KAI와 D사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과태료를 받았고, D사는 이후 KAI의 협력업체 자격을 잃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정권의 비호 아래 사정기관들마저 무력화시킨 하 사장이 측근들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비자금 등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실세들에게 연임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난다면, 검찰의 수사망도 더욱 넓어질 수 있다.
하 사장은 이날 대표이사직 사임 의사를 밝히며 "그동안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쌓아올린 KAI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지금의 불미스러운 의혹과 의문에 대해서는 향후 검찰 조사에서 성실히 설명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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