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의 프리즘] 친일파 후손 이인호는 ‘언론적폐 1호’ | ||
역사학자로서 한국사 왜곡, 조부 친일 계승… 공영방송 KBS이사장 자격없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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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세월 이미/죄수로 몸져 누웠으나/나의 본 자세를 지킴은/나쁘지 않았어라/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으라니/어찌 차마 말하랴/분통의 눈물이/창자를 찢는구나'
독립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1933년 대전교도소에서 전옥(典獄·교도소장)의 절하기 강요를 거부한 뒤 처절한 심정으로 지은 ‘옥리(獄吏)에게 절하기를 거절하며’라는 옥중시다. 심산의 ‘스스로 비웃음’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때로는 전기로 혼을 앗아 갔고/때로는 쇠사슬로 걷어 올렸네/고문은 비록 참혹하고 독하였지만/담소하는 정신은 명랑하였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존경받는 심산은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 끝에 두 다리가 마비돼 앉은뱅이로 삶을 보내 ‘벽옹(躄翁)’이란 별호까지 얻었다. 김삼웅은 ‘심산 김창숙 평전’에서 “그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추호의 타협도 없이 항일 구국의 길을 걸었으며, 해방 후에는 통일조국수립운동과 반독재투쟁을 벌이는 한편, 유림(儒林)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성균관(成均館)을 수호하였다”고 평가했다.
성균관대는 600만 유림의 자금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산의 피눈물과 땀이 젖어 있는 대학이다. 심산이 없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성균관대는 없었을 것이다. 성균관대는 심산의 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친일파 이명세 (李明世, 일본명 春山明世 1893~1972년)가 1956년 2월 이승만 정권의 사주를 받아 심산을 몰아내고 성균관대를 장악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이명세가 심산을 축출한 뒤 재단법인 성균관대 이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김삼웅은 ‘심산 김창숙 평전’에서 “심산은 이승만이 종신 집권을 위해 벌이는 정치놀음에 동원된 친일세력에 의해 성균관대학 총장직과 유도회를 강탈당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그 친일세력으로 이범승·윤우경·이명세를 거론하며 “이명세는 일제 말에 경학원 사성, 유도연합회 상무이사 등 요직을 지닌 골수 친일파다”고 비판했다. 600만 유도회의 지도자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연일 비판했던 심산을 제거하지 않으면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승만은 이명세에게 사주, 경찰과 정치깡패들을 동원해 심산을 성균관대와 유도회에서 몰아냈던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704인 명단에 기재된 이명세는 1939년 11월 1일 조선유도연합회(조선유림들을 모아 만든 친일단체) 상임참사, 1941년 6월 1일에는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1941년 9월에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해 여러 단체들이 통합돼 조직된 연합 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4년4월 22일 경학원(성균관을 일왕의 하사금으로 바꾼 친일교육기관) 사성(司成)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이런 골수 친일파 이명세의 손녀가 바로 이인호 KBS이사장이다. 심산이 성균관대와 유도회에서 밀려나 여관, 친척집, 월세방을 전전하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인호는 조부 이명세가 보낸 돈으로 미국 명문 웨슬리대,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인호가 유학을 떠난 1956년이 바로 심산이 부당하게 총장직을 박탈당했던 해다.
이인호는 2014년 국정감사에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소위 역사를 공부했다는 이인호의 발언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친일(親日)’을 공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망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친일파 조부 이명세로부터 어떤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뉴라이트의 원로로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적극 지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인호는 조부 이명세의 친일 행각에 대해 “당시 일제가 요구하는 협력의 글을 쓰실 수밖에 없는 위치에 계셨지만 본인 목표는 서양 사조에 맞서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자는 데 있다”고 변명했다. 조선유도연합회가 사회지도층인 유림을 앞세워 조선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란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심지어 이인호는 친일청산까지 적극 반대했다. 2004년 11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친일청산에 대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지요”라며 “역사학자들이 친일청산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니,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4·19였고 건국 헌법을 만든 제헌의회 의장, 건국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라고 강변했다.
단순히 이명세가 친일파라서 그의 손녀 이인호를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인호에 대한 비판은 그가 역사학자로서 한국사를 왜곡할 뿐 아니라 조부의 친일정신을 계승하고도 공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마땅하다고 본다. 그냥 초야에서 친일을 외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친일파’의 돈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옹호해온 그가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이기 때문에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친일과 독재를 비호하는 사람에게 국민 정신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공영방송 KBS이사장 자리를 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그 뿐이 아니다. 그는 KBS이사장이 된 이후 고대영의 사장 선출을 앞장서 지지하고, 공영방송 KBS를 박근혜 정권 옹위에 바치도록 동조, 묵인한 부역의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그는 KBS 대다수 구성원들의 사퇴 요구에 “나는 용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인호는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해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고대영 체제의 KBS 위상을 정말 모르는가. 학자와 지식인으로서의 양식과 염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는 하단 말인가.
촛불혁명은 더 이상 이 땅에 친일적폐와 독재부역을 용인하지 않는다. 민족정기를 발양하고 국민정서를 함양하며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대개혁·대혁신·대청산을 주창한다. 동시에 대동(大同)과 통일(統一)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따라서 5000만 겨레는 무엇보다도 먼저 친일적폐와 독재잔재가 국민정신을 좀먹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망국적인 적폐를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언론적폐의 청산이다. 그리고 ‘언론적폐 1호’는 이인호 KBS이사장이다. 8.15광복절 이전에 언론적폐를 청산하라.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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