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판결로 되짚어본 역대 국정원장 흑역사
임종명 입력 2017.09.02. 10:01
초대 중앙정보부장 JP(김종필), 권력2인자에서 외유 떠나
남산돈가스 김형욱, 정권에 쫓겨나 망명···끝내 살해
장세동, 원세훈과 비슷···잇따라 수차례 구속 돼
권영해, 국정원법·선거법 위반으로 옥살이
전문가 "국정원 중립성은 대통령 의지에 달려"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30대 수장이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이 확정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실세'로 통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2013년 처음 불구속 기소됐다. 이후 4년 간 구속과 불구속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최근 2017년 8월 30일 법원 판결로 3번째 구속을 맞았다.
대한민국 역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살펴보면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비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경우처럼 흑역사를 겪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비극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불법 탈취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김종필 전 국무총리 주도로 창설됐다. 이후 명칭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뀌며 이어져왔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김종필 전 국무총리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일으킨 5 · 16 쿠데타와 맞물려 정치 전면에 등장한 뒤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으면서 '권력의 2인자'로 올라섰다.
그후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앞서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은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 해외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초대 중앙정보부장 직책을 맡은 지 1년 반 정도 밖에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때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은 외유의 목적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이란 말을 남겼다.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 이후에는 '남산 돈가스'라 불렸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들어서는데 김형욱 2대 중앙정보부장은 무려 6년3개월이란 기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일했다. 인혁당 사건, 동베를린 사건 등이 김형욱의 재임기간 일어났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부장은 박정희와 공화당이 주도한 3선 개헌이 통과되고 불과 3일 뒤 해임됐고 1973년 망명길에 오른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 부장은 'DJ 김대중 납치' 등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폭로, 비판을 이어가고 '회고록'까지 준비했다가 돌연 실종됐고 법원에서는 사망으로 결론내렸지만 아직도 의문사로 남아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만찬을 하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 등을 사살했다. 이른바 1979년 10 · 26 사태를 일으킨 인물인 김재규는 결국 '내란 목적 살인'과 '내란 미수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 제5공화국 들어 중앙정보부라는 명칭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었다. 전두환은 1979년 12 · 12쿠데타의 주역인 '하나회' 소속 장성들을 안기부 수장으로 임명했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 줄줄이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당시 전두환 안기부 10대 부장, 유학성 11대 부장, 장세동 13대 부장, 안무혁 14대 부장 등이 군사 반란과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에 연루돼 법정에 섰다.
특히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처럼 잇따라 구속되는 수모를 겪는다. 각기 다른 혐의였으나 권력남용 등이 맥락에서 보면 범죄사실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987년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당시 통일민주당 지구당 창당대회를 방해한 배후세력으로 밝혀져 징역 1년6월을 확정 받았고, 은폐 ·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수지 김 간첩' 사건으로 국가가 유족들에게 45억여원을 배상하게 되자 국가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9억여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확정받았다.
다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공소시효가 지나 이 사건으로 형사 처분을 받지는 않았다.
이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 시절 권영해 안기부장은 원세훈 전 원장과 비슷하게 '공무원은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85조1항을 위반해 김대중 정부에서 사법처리를 받았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미리 준비해 간 면도칼로 자해를 시도하는 등 소란을 벌이기도 했으며, 불법 대선자금 모금 등 혐의 등이 추가로 밝혀지며 4차례 더 기소된 끝에 1999년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이같은 사건 등을 계기로 김대중 정부는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정권안보기관'에서 '국가정보기관'으로 새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신건 원장과 임동원 원장도 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 감청을 주도한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구속 기소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장이었던 김만복 원장은 2006년에 공채 출신 첫 국정원장이 됐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에 동행하는 등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는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면담 자리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테러 현장 등에서 직접 브리핑에 나서는 등 '튀는 행동'으로 주변의 신망을 잃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는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들의 흑역사는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 정보기관이 국가를 위해 일한다기 보다는 집권자 성향에 맞춰 일하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정권이 끝난 뒤에는 집권 당시 저질렀던 불법적인 일들에 대한 법적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국가정보기관이 본연의 업무인 정보수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독립해야한다는 것뿐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전망이 따른다.
한 정치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국가정보기관의 업무는 필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며 "안보상황 등 모든 정보가 취합되는 환경은 같은데 그걸 국가지도자나 국가정보원장이 정권 연장수단이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기 때문에 흑역사가 반복돼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국가정보원의 시스템이나 제도 혁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정원의 중립성을 시스템화하려는 것은 무지몽매"한 발상이라며 "결국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은 대한민국 통수권자가 어느 정도 정치적 중립 보장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부연했다.
jmstal0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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