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명박은 사찰공화국의 대통령이었나
입력 2017.09.26. 20:53
[경향신문]
이명박 정부 때 광범위하게 진행된 여론공작 실태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이번엔 국가정보원이 유력 정치인들과 정부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상대로 대규모 심리전을 펼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지원 · 정동영 의원 등 당시 야권 인사들뿐 아니라 홍준표 · 정두언 · 원희룡 등 여권 인사에 대해서도 온·오프라인에서 비판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돈 전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을 대상으로도 소셜미디어와 포털사이트에 비난 글을 게시하는 등 심리전 활동을 펼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행태다.
같은 시기인 2008년 7월부터 3년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치권, 시민단체, 문화계, 금융계 인사 등 사회 각계를 망라하고 민간인을 사찰했다. 사찰의 목적은 단순한 사회동향 파악보다는 탄압, 보복 등 정치적 이유에 맞춰져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사찰공작을 21세기 대명천지에 버젓이 기획하고 자행한 것이다. MB정권 5년은 총체적 사찰공화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사찰과 비난 공격을 퍼부었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쓰레기 수준의 여론조작을 일삼았고, 공무원 사정기관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의 뒤를 캐고 인생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뿌리째 뒤흔든 명백한 헌정 유린 행위다.
그런데도 보수야당과 수구세력은 블랙리스트와 언론장악 및 정치공작 실태 등에 대한 진상 조사활동을 ‘정치보복’으로 폄훼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7년 9월 26일 “정치보복에 목매는 게 이 정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640만달러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의 참으로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다. 이미 유죄판결이 난 댓글공작만으로도 시민 앞에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국정원 개혁은 과거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본연의 역할과 임무로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작업이다. 털끝만 한 양식이라도 있다면 늦게나마 곪아터진 적폐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 ‘전 정권 죽이기’ 운운하는 수구세력의 행태는 진저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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