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묘용(妙用)이 그지없구나” - -현정선원, 2018년 3월 25일 (일) 정기법회
< 질문 > 지견(知見)을 갖는 것도 진리(眞理)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 답변 > 그렇게 묻는 것도 전부 지견(知見)으로부터 나오는 질문이요. 지금 묻고있는 말은 지견(知見)
은 나쁜 거니까 지견(知見)을 제거(除去)해서 쓸어버리고 맑고 순수한 마음자리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는 그런 말이 아니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지금 처럼 본 바도 있고 들은 바도 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하는 행위가 전부 있기는 있는데,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시끄럽고 조용하고 하는 그런
모든 행동(行動)과 행위(行爲)의 주재자(主宰者)가 없다는 점을 깨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행위를 하는 자가 있어서 행위를 하는 게 아니고, 보는 행위를 하는 자가 있어서 보는 행위를 하는게 아
니오. 이같은 이치를 터득한다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말하는 자가 없고 거기 앉아서 듣는 자
여러분도 실체가 없는 거요. 말을 하는 행위의 주체가 없고 듣는 행위의 주체가 없는데도 여전히 말함이
있고 들음이 있으니, “말하고 듣는 그 묘용(妙用, 오묘한 작용)이 그지없구나” 하는 옛 고인(古人)들의
말이 있는 거요.
결국 참으로 설법(說法)을 듣는다는 것은 설법을 들음 없이 설법을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진정으로
설법을 듣는 거기에는 들은 바, 본 바를 ‘나의 것’으로 삼아 ‘나’의 지식(知識), ‘나’의 지견(知見)으로 챙겨
간직할 주체가 본래 없기 때문이오.
마음공부하는 사람에게 허망한 분별심(分別心)인 지견(知見)을 가지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 당연히 ‘지견
(知見)이 없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런 말은 전부 방편(方便)으로 하는 말이요. 세상 모든 것의 실상(
제법실상 諸法實相), 즉 우주만물은 텅~비어 공한 것이라는 제법공상(諸法空相)임을 제대로 안다면 내가
하는 그런 말은 전부 군더더기 말에 불과한 거요. 보고 들음에 즉해서 본래 보고 들음이 아니기 때문이오
―제법의 실상, 즉 제법의 공상을 알기도 전에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지견을 가져도 괜찮다고 알아들을까봐
걱정이오―. 우주만물, 제법, 이 세상 모든 것, 만법이 무유자성(無有自性)이기에 전부 꿈같고 환(幻) 같은
것이니, 그런 허깨비 같은 우주만물이 무슨 지각(知覺)을 하고 무슨 작용(作用)을 일으킬 수 있겠소...
보는 자도 없고, 보는 대상도 없고, 보는 행위도 없는 것이 틀림없는 진실이지만, 그러나 근본성품과 인연
(因緣) 닿으면 여전히 꽃은 화려하고 잎은 푸르니, 근본성품은 스스로를 고집하지 않고 인연 따라 ‘업(業)
을 따라 잘도 나타난다’는 말을 하는 거요. 성품 없는 성품이, 중생들이 자신들의 업(業)을 따라 인연을 따
라 생각 하나 마음 하나 일으키는 대로 그대로 응현(應現, 응해서 나타냄, 응해서 나타남)하니, 그 응현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 앞에 펼쳐진 세상사(世上事)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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